2024.05.21 (화)
"얼쑤!" 네 명의 주방장이 양손에 칼을 들고 도마를 흥겹게 때린다. 칼과 칼이 마주치고, 도마 위 양배추를 잘게 썰어낸다. 이내 주방장 옷을 벗어던진 이들은 '고추장', '김치', '된장', '소금(솔트)', '설탕(슈가)'이 적힌 북을 시원하고 통쾌하게 타격한다.
넌버벌 퍼포먼스 '난타'가 돌아온다. 코로나19 여파로 지난해 3월부터 문을 걸어 닫은 지 21개월 만이다. 오는 12월2일부터 31일까지 매주 목~일요일 4일간 명동 난타 전용관에서 공연을 펼친다.
송승환 피엠씨(PMC)프러덕션 예술감독은 18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 난타 전용관에서 열린 프레스콜에서 "길어야 한 달, 두 달 정도면 되겠지 했는데 문을 열기까지 20여개월이 걸렸다"며 "'위드 코로나'가 되고 극장 문을 다시 열고 무대에 서게 돼 너무 반갑고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1997년에 초연해 365일 쉬지않고 쭉 공연해오다가 코로나19 때문에 처음으로 오랫동안 극장 문을 닫게 됐다. 메르스, 사스 때도 이런 적은 없었다"며 "제작사, 배우, 스태프들 모두 힘든 시기를 보냈다. 무대에서 연기해야 할 배우들이 택배, 대리기사, 식당에서 일하며 어려운 시기를 겪었다. 반가운 무대에서 제작진과 배우들 모두 열심히 두드리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난타는 외국인 관광객이 관객의 70~80%를 차지한다. 다음 달 막을 올리지만, 아직은 코로나19로 인해 외국인 관광객이 많지 않은 상황이다. 1월 공연의 연장 여부는 12월 관객 수를 지켜본 후 결정할 예정이다.
송 감독은 "공항이 완전히 열리고 외국인들이 자유롭게 들어오기 전에 문을 여는 게 조심스럽다. 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문을 닫고 있으면 난타가 잊혀질 것 같은 두려운 마음도 있다"고 밝혔다.
이어 "해외 공연도 슬슬 준비하고 있다. 내년에 미네소타를 시작으로 미국 투어를 할 예정이다. 해외 공연을 앞두고 배우들 트레이닝도 해야 하고, 임대료를 내면서 계속 문을 닫아두기엔 너무 답답한 현실이었다"며 "국내 관객들도 난타를 잘 알고 있지만 아직 안 본 분들도 많으니까 더 적극적으로 알릴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난타 전용관은 그동안 코로나19로 명동은 물론 홍대, 제주 등 국내와 해외도 일제히 문을 닫은 상황이었다. 이중 제주의 난타 전용관은 지난 6월에 다시 문을 열었다.
송 감독은 "태국, 광저우 등 해외 전용관 세곳이 비슷한 시기에 닫았다. 해외는 언제 문을 열지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 같다"며 "2년 전쯤에 하와이 난타 전용극장을 준비 중이라고 했고 당시 추진 막바지 단계였는데 코로나19로 중단됐다. 언제 종식될지 모르지만, 상황이 나아지면 해외 전용관도 문을 열고 하와이 전용관도 다시 추진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배우들도 난타 공연이 멈춰있는 동안 어려움을 겪었다. 배우 정민구는 "난타 자체가 고유명사이지 않나. 난타가 갖고 있는 자부심이나 작품성이 있는데 이 소중한 작품을 코로나19 때문에 2년 가량 못했다"며 울컥해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많이 속상했는데 다시 이 자리에서 할 수 있게 된 데 너무 감사하다. 많은 분들이 오셨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배우 고창환은 "많이 힘들었다. 배우를 포기하지 않는 이상 다른 곳에서 정규직으로 일할 수 없기에 물류센터나 배달 일을 하면서 생활비를 벌었다"며 "오랜만에 공연해도 몸 자체가 난타를 기억한다. 배우들이 10년 이상 하면서 난타의 피가 흐르고 있기에 다시 공연하는데 어렵진 않았다. 모두 함께 예전처럼 웃고 울고 박수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설호열 배우도 "연기 생활하면서 돈을 못받은 적은 있어도 공연을 못한 적은 없었다. 코로나19로 공연 자체를 못하게 되니까, 금전적 문제보다도 연기를 못한다는 것에 솔직히 힘들었다. 이렇게 버텨왔는데 이번 기회에 국내 관객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송 감독은 "난타의 힘은 사물놀이를 바탕으로 한 전통 리듬과 극 중 슬랩스틱 코미디가 융합된 매력에서 나온다. 웃고 즐길 수 있고 두들겨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건 변하지 않는다"며 "IMF 당시 초연이었는데 유독 관객이 많았다. 어렵고 힘든 시기에 난타를 보면 시원하고 후련한, 위안을 찾는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지친 분들께 기운과 희망을 드리고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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