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03 (월)
이규진(편고재 주인)
용인이 고향이다. 따라서 용인에 관한 일, 그중에서도 문화적인 일에 대해서는 남다른 애정과 관심이 가는 것이 사실이다. 도요지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내가 관심을 갖고 안 갖고는 상관없이 용인에는 중요한 도요지가 있다. 용인서리고려백자요지가 바로 그것이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면 서리 중덕 마을에 위치한 고려백자요지는 1930년대에 아사카와 노리다카(淺川伯敎)에 의해 처음 발견되었다. 노리다카는 일본인으로 우리나라 도요지를 최초로 체계적인 조사를 한 인물이거니와 청화백자추초문호(현재는 호가 아니라 호롱박병의 윗부분을 절단한 것으로 밝혀져 있다)를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에게 선물, 우리의 공예품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갖게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후 이 고려백자요지는 1960년대에 전 국립중앙박물관 정양모 관장에 의해 고려시대 초기 요지임이 확인되면서 학계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 중요성이 인정되어 1984~88년 호암미술관에 의해 3차에 걸친 발굴이 이루어졌으며 이에 대한 발굴조사보고서 1,2권이 발간된 바도 있다.
그렇다고 하면 용인서리고려백자요지는 왜 중요한 것일까? 발굴조사 결과 이 고려백자요지는 전축요 즉 벽돌 가마에서 시작 흙가마인 토축요로 바뀌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말하자면 고려 초기 도자기 가마의 변천 과정을 살필 수 있는 자료적 가치가 큰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곳 퇴적층에서 4개의 층위를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이곳에서 가장 많이 생산된 완의 형식을 보면 선햇무리굽 - 한국식해무리굽 - 퇴화해무리굽 - 윤형굽으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이를 통해 운영 시기를 살필 수 있는데 지금까지는 10~11세기로 추정되는 등 여러 가지 이견들이 존재하고 있다.
용인서리고려백자요지의 시작 단계에서 보이는 전축요는 중국 요업의 영향을 받은 서해안 일대의 초기 청자와 백자요지에서 주로 보이는 형식이다. 북한의 배천 원산리를 비롯해 시흥 방산동, 고양 원흥동, 양주 부곡리, 여주 중암리 등이 바로 그것이다. 용인서리고려백자요지는 전축요에서 시작 토축요로 바뀌는 것은 물론 청자로 시작되었으나 백자로 이행되어 이것이 주를 이루고 있는 것도 한 특징으로 볼 수 있다.
용인 시내에서 남쪽으로 안성 방면으로 난 길을 따라가다 보면 이동면 천리의 중심지역인 원천 마을이 나타난다. 이곳에서 다시 서쪽으로 난 소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서리가 나타난다. 서리의 자연마을 중 하나인 중덕 마을은 20여 가구가 소로 우측에 밀집해 있다. 이 부락 끝머리에 위치한 진입로 북편에 느티나무와 밤나무가 서 있는 야트막한 구릉이 바로 고려백자요지다. 구릉은 갑발편들로 M자형의 산을 이루고 있는데 이처럼 갑발편이 많은 것은 이곳에서는 초벌구이를 하지 않은 데다 한 점 한 점을 모두 갑발편에 넣어 소성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고려백자요지 주변으로 현재는 촘촘한 그물망의 철조망이 처져 있다. 하지만 과거에는 그런 것이 없어 쌓여있는 갑발편들이 혹간 무너져 내리고는 했었는데 특히 좌측의 축사 쪽으로 그런 경향이 심했다. 그런 갑발편들 속에서 오래전에 만난 것이 고려백자해무리굽완편이다. 접지면이 넓은 해무리굽에다 삿갓을 뒤집어 놓은 형태로 사선을 이루며 올라간 모양인데 재미있는 것은 갑발이 주저앉아 붙어 있는 모습이다. 입술 부위가 일부 달아나고 몸체에는 유가 더러 있을 뿐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귀한 자료인데 약간 푸른색을 머금은 유약 또한 고려 초기 백자로서는 상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곳에서 보이는 도자기들 중에는 유약으로 보아 청자와 백자의 색깔 구분이 쉽지 않은 것들이 있다. 그러나 이처럼 구분이 어려운 것은 분석 결과 백자인 것이 분명하다는 결론을 내린 자료를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다.
용인서리고려백자요지에서 가장 많이 보이고 있는 백자해무리굽완은 용도가 무엇이었을까. 크기나 모양으로 보아 다완의 일종이라고 보아 고려 시대에 번성했던 다도와의 관련성에 주목하는 경향도 많이 있다. 서리고려백자요지에서 만난 이 백자해무리굽완편을 내가 지니고 있는 지는 참으로 오래되었다. 청자가 주를 이룬 고려, 그것도 초기에 비록 불량품이기는 하지만 백자로 만든 다완 자료를 소장하고 있다는 것은 여간 흥미로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용인에는 서리고려백자요지만 있는 것도 아니다. 중덕 마을에서 산등성이를 넘어가면 상반마을에도 서리고려백자요지와 거의 비슷한 규모와 성격의 도요지가 있다. 발굴을 한지 몇 해가 지났건만 아직도 보고서가 안 나오고 있어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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