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03 (월)
당시 600만 신도였던 보천교는 불과 몇 십 년 만에 흔적만 남기고 사라졌다. '한국신종교대사전'(김홍철 편저, 2016)에 의하면, 1860년 수운 최제우의 동학 이후 창립된 신종교만 700여개에 달한다. 크지도 않은 나라에서 이렇게 많은 종교를 재구성하고 소비할 수밖에 없었던 필연적인 이유라도 있었던 것일까? 여기에는 응당 이단(異端) 논의가 뒤따른다. 굳이 표현하자면 가짜종교 논쟁이라고나 할까. 이단은 전통이나 권위, 세속적인 상식에 반하는 주장이나 이론을 말한다. 코로나19 사태로 논란의 중심에 서있는 '신천지'도 그 중 하나다. 신천지가 이단인지 아닌지는 보는 이의 입장에 따라 견해를 달리할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가 가지는 전통이나 권위와 상식에 반하는가 조응하는가다. 전체 공동체의 안위에 심각한 피해를 끼치는 종교집단이라면 그것이 신천지이든 개신교 일반이든 혹은 불교의 어떤 종파든 이단의 범주에 넣을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번에 무안군 현경면 물바위를 소개한 바 있다. 국가적 위난에만 바닷물이 넘친다는 신비한 바윗돌이다. 다시 한 번 가봤다. 아직 물이 넘치지는 않은 모양이더라. 안도의 한숨을 내쉬어야 할까? 세상이 어지럽고 균형이 안 잡히니 풍설(風說)만 요란하다.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데이터를 기반 삼아 판단하고 행동해야하는데 요설에 더 귀를 기울이거나 국가의 정책 결정에 불만을 토로한다. 고작 물바위 전설이나 바라보는 꼬락서니랄까? 하지만 중요한 것은 왜 사람들이 이 바위에 현실을 투사하는가에 있다.
내가 도참바이러스라 이름 짓고 현상을 훑어봤던 이유다. 도참(圖讖)은 설화나 루머로 유포되는 예언들이다. 앞날의 길흉에 대한 예언을 믿는 사상이다. 대표적인 것이 정감록(鄭鑑錄)이었다. 끊임없이 재생산되어온 유사본들이 있다. 주로 사회가 불안할 때였다. 위정자의 말을 인정하지 않거나 반발하는 것은 사회가 불안정하다는 얘기다. 전염병이 창궐하거나 빈부의 격차가 심할 때 융성한다. 이것이 극에 달하면 혁명이 일어난다. 백성(시민)이라는 이름의 배는 위정자들을 싣고 순항하다가도 어떤 격절(隔絶)에 이르면 태풍 불듯 배를 뒤집어 버린다.
지금 유행하고 있는 코로나19 여파를 보니 상황이 만만치 않다. 물리적인 병균만 문제가 아니라 루머에 현혹되는 도참 바이러스가 다시 소환되는 게 문제다. 가짜뉴스를 넘어 가짜 종교까지 소비하는 사회라고나 할까. 20세기 초입, 700여개의 종교를 만들면서까지 고군분투했던 우리네 조상님들을 그려본다. 처연(悽然)하다. 무엇이 그들의 심령을 그리 갈급하게 했던 것일까. 다시 21세기 초입, 우리는 1세기 전과 얼마나 달라졌거나 성숙했을까. 동학과 증산교, 그리고 보천교의 신종교들을 후천개벽으로 호명하는 시대정신의 응전이라 할 수 있다면, 지금 우리에게 일어나는 이른바 이단으로 호명되는 종교들의 준동 또한 정통종교와 정치 등 사회 시스템에 대한 고발일 수 있다.
정통이라 호명되는 종교가 그만한 역할과 권위를 갖고 있는지 혹은 이단보다 더 이단이지는 않은지 성찰하는 일이 중요해진 셈이다. 코로나19 진정국면이 오면 아마도 담론화 될 종교적 이단(異端)논의의 밑자락을 우선 신종교 증산교와 보천교를 예증삼아 깔아둔다. '신천지교'가 더 융성할지 '보천교'처럼 흔적만 남기고 사라질지는 모르겠지만, 전염병의 창궐 못지않게 가짜뉴스와 종교 이단의 소비에 대한 논쟁을 촉발시킨 것은 틀림없는 듯하다. 우리는 지금 코로나19에 기생하는 기생충, 가짜뉴스와 가짜종교에도 전염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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