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7 (화)

‘이건희 컬렉션’ 진수 135점, 오늘부터 실물로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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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컬렉션’ 진수 135점, 오늘부터 실물로 만난다

국립중앙박물관·현대미술관 전시
한 달치 관람 예약 하루만에 매진
전시 작품 중 국보 12건, 보물 16건
김환기·이중섭 대표작도 선보여

  • 이정하
  • 등록 2021.07.21 06:18
  • 조회수 229

무더운 더위에도 불구하고 단 하루 만에 한 달치 예약이 매진됐다. ‘이건희 컬렉션’을 하루라도 빨리 직접 보고 싶어 하는 관람객들의 경쟁도 뜨거웠다.

 

삼성가 유족이 국가에 기증한 고(故) 이건희(1942~2020) 회장의 주요 문화재와 미술품이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21일 동시에 공개된다. 고대 유물부터 현대 회화까지 고 이 회장이 수집한 미술품 중 일부가 일반 관람객에게 대규모로 공개되는 것이다.

 

 인왕제색도·붉은 간토기 등 시대·분야 대표 명품 77점 특별 공개

 

키워드는 ‘다양성’이다. 청동기시대부터 철기시대,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등 거의 모든 시기의 유물이 모두 포함된 것도 특징. 청동기시대 토기·청동기, 금동불, 전적(책)·사경(베껴 쓴 경전), 청자, 목가구 등 분야도 다양하다. 이건희 회장 유족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9797건 2만 1600여 점은 청동기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금속, 도토기, 전적, 서화, 목가구 등으로 폭넓고 다양하다.

 

유례없는 대규모 기증으로 높아진 국민의 관심에 부응하고자 신속하게 마련한 이번 전시에서 이건희 회장 기증품 중 시대와 분야를 대표하는 명품 45건 77점(국보·보물 28건 포함)을 특별 공개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이번에 기증받은 총 1488점 중 한국인이 사랑하는 작가 34인의 주요 작품 58점을 먼저 선보인다. 192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제작된 한국 근·현대미술의 대표작으로 한국 미술사 거장들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은 셈이다. 전시작은 크게 ‘수용과 변화’ ‘개성의 발현’ ‘정착과 모색’이란 세 가지 주제로 나눴다.

 

겸재 정선의 최고 걸작 <인왕제색도>(국보 제216호).
겸재 정선의 최고 걸작 <인왕제색도>(국보 제216호)

 

먼저 겸재 정선(1676~1759)의 최고 걸작 <인왕제색도>(국보 제216호), 삼국시대 금동불의 섬세함을 보여주는 <일광삼존상>(국보 제134호), 글씨와 그림이 빼어난 고려 사경 <대방광불화엄경 보현행원품>(국보 제235호), 현존하는 유일의 <천수관음보살도>(보물 제2015호), 단원 김홍도(1757~1806?)가 말년에 그린 <추성부도>(보물 제1393호) 등이 전시돼 기증 명품전의 의미를 높인다.

 

이번 전시에서는 청동기시대·초기철기시대 토기와 청동기, 삼국시대 금동불·토기, 고려시대 전적·사경·불교미술품·청자, 조선시대 전적·회화·도자·목가구 등 이건희 컬렉션의 다양성을 보여준다.

 

청동기시대 토기 <붉은 간토기>.
청동기시대 토기 <붉은 간토기>.

청동기시대 토기로 산화철을 발라서 붉은 광택이 아름다운 <붉은 간토기>, 초기철기시대 청동기로 당시 권력을 상징하는 <청동 방울>(국보 제255호), 삼국시대 배 모양을 추측할 수 있는 <배 모양 토기>, 삼국시대 조각의 유려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보살상>(보물 제780호), 삼국시대 뛰어난 금세공 기술 수준을 알 수 있는 <쌍용무늬 칼 손잡이 장식>(보물 제776호), 조선 백자로 넉넉한 기형과 문양이 조화로운 <백자 청화 산수무늬 병>(보물 제1390호)은 당대 최고의 기술과 디자인을 보여주는 명품이다.

 

이번 전시에는 고려불화 2점이 포함되는데, 고려불화 특유의 섬세한 미를 보여주는 <천수관음보살도>와 <수월관음도>이다. 또한 한글 창제의 노력과 결실을 보여주는 <석보상절 권11>(보물 제523-3호)과 <월인석보 권11·12>(보물 제935호), <월인석보 권17·18>을 전시한다. 이와 같은 귀중한 한글 전적으로 15세기 우리말과 훈민정음 표기법, 한글과 한자 서체 편집 디자인 수준을 확인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생활 속 거리두기’ 방침에 따라 30분 단위로 관람 인원을 20명으로 제한한다. 누리집에서 상설전시 예약과는 별도로 예약 후 입장할 수 있다. 전시 도록은 발간하지 않고 대신 전시품 이미지와 자료를 국립중앙박물관 누리집에서 제공한다.

 

 이중섭·김환기 등 한국인이 사랑하는 작가 34명 주요작품 58점

 

이번 국립현대미술관의 전시에서는 한국인이 사랑하는 작가 34명의 주요작품 58점을 먼저 선보인다. 세기의 기증이라 할 만한 이건희컬렉션은 1488점으로, 국립현대미술관은 소장품 ‘일만 점 시대’를 열게 됐으며, 7월 현재 소장품은 1만 621점이며 이중 약 55%가 기증으로 수집됐다.

 

고 이건희 회장 유족들이 기증한 이건희컬렉션은 미술사적 가치는 물론 규모에서도 미술관 역사상 최대 기록이다. 근·현대미술사를 아우르며 20세기 초 희귀하고 주요한 국내 작품에서부터 해외 작품까지 포함,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의 질과 양을 비약적으로 보강시켰다.

 

전체 1488점 중 한국 작가 작품 1369점, 해외 작가 작품 119점으로 구성돼 있다. 부문별로는 회화 412점, 판화 371점, 한국화 296점, 드로잉 161점, 공예 136점, 조각 104점, 사진 및 영상 8점 등으로 고루 분포돼 있다. 김환기, 박수근, 이중섭, 장욱진, 유영국, 변관식, 이응노, 권진규 등 한국미술사 거장들의 작품이 대거 포함됐다.

 

192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제작된 작품들을 주축으로 크게 세 개의 주제로 나눴다.

 

첫 번째는 수용과 변화다. 일제 강점기에 새로운 문물이 유입되면서 미술계도 변화를 맞이한다. 서구 매체인 유화가 등장했고 인물화, 정물화, 풍경화 등 생경한 용어도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 시기를 즈음해 조선의 전통 서화도 변화를 모색한다. 백남순의 <낙원>(1936년경), 이상범의 <무릉도원>(1922) 등 주옥같은 작품들을 통해 이 시기 동서양 회화의 특징이 융합과 수용을 통해 변모하는 과정을 비교감상할 수 있다.

 

김환기의 <여인들과 항아리>(1950년대).
가로 5m, 세로 3m에 달하는 김환기의 대작 ‘여인들과 항아리’ (1950년대)

 

두 번째는 개성의 발현이다. 1945년 광복을 맞이하고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는 격동의 시기에도 작가들은 작업을 멈추지 않고 전시를 열고 새로운 미술을 추구하며 예술 활동을 이어갔다. 김환기, 유영국, 박수근, 이중섭 등 작가들의 파란만장한 삶과 그들의 독창적인 작품은 한국미술의 근간이 된다. 김환기의 <여인들과 항아리>(1950년대), 이중섭의 <황소>(1950년대), 박수근의 <절구질하는 여인>(1954) 등 이건희컬렉션에는 특히 이 시기의 작품이 집약돼 있다.

 

김환기의 ‘여인들과 항아리’(1950년대)는 명실상부한 대작 중 대작이다. 세로 길이가 3m에 육박하고 가로 길이가 5m가 넘는다. 크기만 대작이 아니다. 권행가 미술사가에 따르면 비대칭의 자연스러운 선과 투박한 색면 처리 등 조선백자의 멋을 사랑했던 작가의 조형적 특성이 잘 드러난 김환기의 대표작이다.

이중섭의 <황소>(1950년대).
이중섭의 <황소>(1950년대).

 

마지막은 정착과 모색이다. 전후 복구 시기에 작가들은 국내·외에서 차츰 정착하며 꾸준히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모색한다. 이성자, 남관, 이응노, 권옥연, 김흥수, 문신, 박생광, 천경자 등이 고유한 조형세계를 구축하며 한국미술을 보다 다채롭게 만들었다. 이성자의 <천 년의 고가>(1961), 김흥수의 <한국의 여인들>(1959) 등 이 시기의 대표작을 만날 수 있다.

 

6폭 병풍에 그려진 변관식의 ‘무창춘색(武昌春色)’(1955)은 말 그대로 가슴을 적신다. 이번 전시에 함께 소개된 이상범의 ‘무릉도원’(1955)과 더불어 한국적 실경산수화의 전형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꼽힌다. 격동의 시기에 고난을 겪다가 나이 마흔에 생을 마감한 이중섭(1916~1956)의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비극적이다. 그런 이중섭이 일본 유학 시절부터 즐겨 그린 그림이 바로 황소다. 이중섭의 붉은 황소 머리 그림은 총 4점인데 이번에 전시된 작품은 1976년 처음 알려졌으며 지금까지 거의 전시된 적이 없었다. 이번 전시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온라인 사전예약제로만 운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