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31 (금)

[연재소설] 흙의 소리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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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흙의 소리 39

  • 특집부
  • 등록 2021.06.03 07:30
  • 조회수 797

 

흙의 소리


이 동 희

 

 

절정 <2>

그리고 다시 계속하여 악현樂懸의 제도에 대해서 말하였다.

원래 십이신十二辰에서 법을 취한 것인데 일신一辰마다 편종 일가一架와 편경 일가를 설치하고 또 편경과 편종 사이에 종하나와 경하나를 설치하되 자위子位에는 황종의 소리로 하고 축위丑位에는 대려의 소리를 하고 인위寅位에는 대주 묘위卯位에는 협종 나머지 위들도 다 이와 같이 해야 한다. 우리나라 헌가악軒架樂은 일위마다 편종과 편경만을 설치하고 위에 따라 본율本律에 해당하는 종은 없으니 선왕이 법을 취한 뜻에 어긋남이 있다.

그러하니 이를 갖추어 주조鑄造하여 옛 제도를 회복하게 하기 바란다고 하였다.

또 아뢰었다.

선농의 음악은 모두 토고土鼓를 사용하였었는데 지금은 노고路鼓를 사용하니 이는 제도가 아니다. 아악의 악기로서 토음土音에 속한 것은 질로 만들었는데 훈과 부의 갈래가 모두 이것이다. 상고의 흙을 쌓아 만든 북을 본뜰 수 없다면, 질로 변죽을 삼고 가죽을 씌워 면을 삼아 토고에 대용代用한다고 한 자춘子春의 말을 살펴서 따르는 것이 편할 것이다.

당상의 음악은 먼저 부를 친다. 부란 악기는 노래를 먼저 부르는데 소용되는 것으로 진양陳暘, 당상의 음악이 시작될 때 기다리는 것은 부이고 당하의 음악이 시작될 때 기다리는 것은 고()이니 대개 당상은 문 안을 다스리는 것으로 부로써 하고 당하는 문 밖을 다스리는 것이므로 고로써 하니 안은 부자父子요 밖은 군신君臣으로 사람의 큰 윤기倫紀이고 악이 실상實像으로 보인다, 하였다. 주례周禮의 도설圖說과 진양의 글과 임우林宇의 악보는 같지 않아 체제를 정하기 어려우므로 제조하지 않는 것이 옳겠다.

주례도周禮圖와 진양의 예서와 악서 중에는 현고懸鼓의 형상을 그림으로 그리고, 현고는 진고晉鼓이다, 궁현宮懸은 네 모퉁이에 설치하고 헌현軒懸은 세 위에 설치한다, 하였다. 또 순자荀子, 현고는 모든 악의 군왕이 된다 하였다. 그러니 이제 아악의 대고大鼓는 이 북을 모방하여 만든 것인 듯 하니 송나라 제도에 의거하여 진고 하나를 쓰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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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신문] 이무성 화백의 작화 : [연재소설] 흙의 소리 39

 

 

계속하여 박연이 아뢰었다.

질장구가 악기로 된 것은 요임금 때부터였는데 역대로 폐하지 않았고 진나라 때에는 더욱 이를 숭상하여 써서 한갓 악현樂懸의 악기가 될 뿐 아니라 온 세상이 모두 이를 좋아하였으니 성음聲音과 절주節奏가 있어서이다. 우리나라에서 쓰는 질장구는 그 모양이 그림과 같지 않으며 두드려도 소리가 나지 아니 하고 헌가 중에서 항열行列만 갖추고 있을 뿐이므로 질장구를 만드는 장인缶工의 유를 헐공歇工이라고 이르게 되니 기만欺慢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송나라 때에 민간에서 아홉 개의 질항아리를 오성五聲 사청四聽의 소리를 맞추었다고 하였으니 헌가 중 열 개 질장구의 소리를 십이율로 나누어 소리를 내는 것이 어려움이 없을 듯하다. 또 흙으로 만든 여러 가지 악기 중에는 두드려서 소리가 나는 것도 있고 소리가 매우 맑고 조화로운 것도 있으며 소리가 높은 것도 있고 낮은 것도 있으니 대개 소리가 나고 아니 나는 것은 질그릇의 잘 익고 익지 아니한 것이기 때문이며 소리의 높고 낮은 것은 악기의 두껍고 얇음과 깊고 얕은 관계이다.

그리고 이런 주문도 하였다.

지금 성 밖의 가까운 땅 마포 강가에서 다행히 질그릇 굽는 곳이 있으니 질그릇 잘 굽는 사람을 선택하여 인력도 공급하고 품삯도 주어서 역사役事를 맡기고 음율을 알고 사리를 잘 아는 사람을 시켜 아침 저녁으로 왕래하면서 질그릇 만드는 것을 감독하게 하되 반드시 도본圖本과 합치하고 소리가 음율과 조화되게 하는 것을 표준으로 삼아 악기가 만들어진 후에는 여러 악공이 각기 자호字號에 따라서 서로 쳐서 열 개의 질장구 소리가 저절로 한 음악을 이룬 후에 항열을 넣어 여러 소리에 맞춘다면 소리와 소리가 서로 응하여 매우 조리가 있게 될 것이다.

"그러하니 신은 한번 시험하기를 원합니다.”

너무도 세밀하고 구체적이고 실질적이었다.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어느 것 하나 요긴하지 않은 것이 없고 거부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너무나 해박하고 전문적이었다. 열 사람 스무 사람이 동원하여도 어려울 지식이고 실력이었다. 초인적인 능력이었다.

이론으로 서책의 고증으로만이 아니고 하나하나 일일이 다 실험을 해보고 실연實演을 해 보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도대체 무엇이 그것을 가능하게 하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