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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헌의 고서이야기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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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헌의 고서이야기 36

박물관 고을, 영월

  • 특집부
  • 등록 2021.05.12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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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헌고서점 호산방 주인, 완주 책박물관장

 

영월군은 200411, 5회 자치행정혁신대회에서 박물관을 이미지화한 지역 만들기-세계 최대 지향 박물관 군() 조성사업이란 사례 발표로 우수상을 수상했다. 여기에서 영월군은 향후 2015년까지 총 20개소 이상의 박물관을 건립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이어서 영월군은 정부의 신활력사업 정책의 일환인 박물관 고을 육성사업지역으로 선정돼, 2005년부터 향후 2009년까지 매년 약 30억 원을 지원받아 이 사업을 추진하게 되었다. 이는 전국적으로 발전이 낙후된 70개 시·군의 사업계획을 평가한 결과로, 이제 영월군은 지역경제의 키워드를 문화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박물관으로 선택했던 것이다. , 영월 소나기재 아래에 박물관 고을 영월!’이라는 대형 표지판이 나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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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03] 2005 영월박물관 순회전시 포스터

 

그 후 영월군의 박물관 사업은 발 빠르게 진행되었다. 나는 영월군 박물관협회를 구성하고 그 첫 사업으로 200511박물관 고을 조성과 발전방향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나는 이 심포지엄을 차후 국제적인 박물관 포럼으로 발전시켜 나가기로 몇몇 지인들과 뜻을 같이하고 전국 규모의 행사로 준비했다. 이 사업의 기획에는 당시 파주출판도시 이기웅 이사장과 서울대 인류학과 전경수 교수, 세종대 사학과 최정필 교수 등 문화계 여러 인사가 도움을 주었다. 주제 발표는 서울대 환경대학원 유병림 교수, 서울대 인류학과 이문웅 교수, 전통문화학교 최종호 교수 등이 맡았다.

 

전국에서 400여 명의 문화예술인이 참여하여 심포지엄은 성공적으로 치러졌다. 이어서 경기도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과 대구대학교 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순회전시회 ! 영월이다는 영월군이 박물관 고을임을 전국적으로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앞의 심포지엄에서, ‘영월 박물관 고을 육성사업의 당면 과제로, 영월군의 박물관 업무를 지속적으로 전담하는 관계 공무원과 박물관 전담부서의 신설이 요구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래서 인지는 몰라도 20063, 박물관 고을 육성사업 전담부서로 지역혁신단이 신설되었다. 이때 담당공무원이 바뀌면서 사업체제가 새롭게 갖추어지는 듯이 보였다.

 

나는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것이라 기대하고 나름대로 많은 준비를 해 왔다. 각종 전시사업과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은 물론 중장기 대형 사업계획을 여러 건 마련해 놓고 있었다. 이것들은 모두 각 분야의 전문 학자와 현장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 준비한 것들이다. 여기에는 영월책마을 환경설계(이미경, 서울대 환경대학원 석사논문, 2002)와 중장기 계획인 영월책박물관 사업계획, 10여 개의 박물관 타운 건설계획인 이상한 나라의 박물관 사업계획등이 포함된다.

 

그러던 20068, 영월군은 책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는 광전리 마을회관에서 책마을 선포식 및 사업 평가보고회를 가졌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책마을이란 책박물관 주변 마을 일대가 서점과 공연장, 문화예술인의 작업실, 카페 등으로 어우러진 문화마을을 이름이며, ‘책마을 사업은 박물관을 개관하면서부터 계획하고 준비해 온 사업이다. 이미경 선생의 논문 영월책마을 환경설계는 영월군의 박물관 고을 육성사업의 지침이 되어, 현재의 박물관 사업과 책마을 사업으로 발전되었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새로 온 담당공무원은 그 동안 내게 책마을 사업에 대한 어떠한 의견도 묻지 않았고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극단적인 예로, 나는 책마을 선포식 개최 사실을 행사 20분 전, 서울 출장길에 마을 주민에게서 전화연락을 받고서야 알았다. 영월군에서 책마을 선포식을 하는데 정작 책박물관 관장인 내게는 이러한 사실조차도 알리지 않았던 것이다. 책마을 선포식이라면 적어도 선포문 정도는 작성해야 할 것이고, 그 밖의 여러 가지 상의할 일도 많을 텐데 내게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는 것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담당공무원은 심지어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책마을 사업과 책박물관은 무관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나는 이 일을 계기로, 그 동안 맡고 있던 영월군 박물관협회장 자리를 내놓았다. 영월군의 박물관 고을 육성사업에 깊은 회의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다음날로, 개관 이후 8년 동안 단 하루도 문을 닫지 않았던 박물관을 무기한 휴관하고, 고민 끝에 호산방을 서울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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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04] 영월 책박물관 전경

 

영월에서 우리 가족이 거처했던 곳은 박물관 한편에 있는 허름한 관사다. 말이 관사지 10여 년 이상 사람이 살지 않은 건물이라 수리를 몇 차례나 했지만 벽과 천장에 온통 곰팡이가 슬고 겨울에는 연탄난로를 두 개씩이나 때워도 거실에서는 물이 얼 정도다. 또 해마다 한겨울이면 수도는 물론 박물관 화장실까지 얼어 터지기 일쑤다. 한번은 영하 20도가 넘는 강추위가 1주일 정도 계속되자 관사로 통하는 수도관이 그만 얼어 버렸다. 박물관의 수도는 지하수를 펌프로 끌어올려 사용하고 있는데, 물탱크는 펌프장에서 150여 미터 거리의 언덕 위에 있고, 이 물탱크가 박물관 화장실과 관사로 연결되어 있다. 그 거리 역시 150여 미터가 된다.

 

전문가에게 물으니, 다행히 펌프장에서 물탱크까지는 얼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물탱크에서 관사까지의 150여 미터 구간 중 어느 부분이 얼었는지 찾을 수가 없고, 엄동설한 중에는 암반지형에 포클레인 작업을하기도 어렵다고 했다. 또 수도관이 얼기 시작한 지 오랜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얼어붙은 범위가 점점 확대되어 사실상 작업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대안으로 내놓는다는 것이, 물탱크에서 엑셀 PVC관을 연결해 땅 위에 그대로 노출시킨 채 겨울을 넘기는 방법밖에 없다고 했다. 이 경우에는 수도꼭지를 겨우내 조금 열어 놓아야 물이 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한참을 망설였지만, 다른 방법이 없을 것 같아 그렇게 하기로 했다. 파이프를 물탱크에 연결하자 하얀 PVC관을 통해 물줄기가 흐르는 것이 보였다. 10여 분이 지났을까. 또다시 물이 나오지 않아 PVC관을 따라가면서 확인해 보니 그 사이에 파이프 안에서 꽁꽁 얼어 있었다. 그날 한낮의 기온이 영하 10도가 넘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나는 언제부턴가 집안에서는 무능한 가장으로 전락했다. 그러는 동안 초등학교 5학년, 중학교 1학년이던 두 아들은 원주와 영월에서 고등학교를 마쳤다. 영월로 이사하면서 무엇보다 아이들 교육문제 때문에 걱정을 많이 했다. 학교에 가려면, 두세 시간에 한 번 오는 버스를 타고 험한 고갯길을 40여 분이나 달려야 했다. 눈 내리는 날에는 고개를 넘을 수가 없어 발을 동동 구르기도 했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는 버스 시간이 맞지 않아 길거리에서 한두 시간씩이나 보내야 했던 아이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아이들을 위해 해준 것이 아무것도 없다. 이 산골로 데리고 와서는 마음고생만 시킨 것 같았다. 그래도 어린 시절을 이런 산골에서 보낸 것이 훗날 세상 살아가는 데 많은 도움이 되리라고 애써 위안해 본다. 언젠가 아이들이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매일 보는 산과 나무들인데 어제 보았던 그 산과 나무들이 아닌 것 같다. 자연은 우리 아이들에게 이런 아름다운 마음을 길러 주었다. 그 아이들이 지금은 장성하여 첫째는 시카고 아르곤 연구소 연구원으로, 둘째는 작은 사업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