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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헌의 고서이야기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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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헌의 고서이야기 34

  • 특집부
  • 등록 2021.04.28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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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을을 꿈꾸며

 

박대헌 고서점 호산방 주인, 완주 책박물관장


  

사람들은 내가 많은 책을 소장하고 박물관을 세우니 선대로부터 유산이라도 물려받았을 거라 생각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내가 박물관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보통 사람들이 꿈꾸는 지극히 평범한 생활(?)을 포기하고 오랜 시간과 모든 열정을 오직 책에 쏟아 부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박물관이라 하면 대도시의 커다란 건물에 잘 갖추어진 시설을 떠올린다. 이런 생각을 하고 영월 책박물관을 찾아온 사람들은 대개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심지어는 화를 내는 사람도 적지 않다. 볼 것이 없다는 얘기다. 지금까지 자신들이 생각하고 있던 박물관하고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눈에는 그저 초라하고 옹색한 시골 폐교로만 보였던 것이다.

 

사진 98. 손기정음반.JPG
[사진 98] 일본은 1936년 8월 9일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손기정 선수를 영원한 일본인으로 기억시키기 위해 올림픽 직후인 9월 손 선수를 일본까지 데려가 ‘우승의 감격’이란 제목으로 녹음하였다.

물론 내가 이러한 사정도 모른 채 박물관을 세우고 꾸려 가는 것은 아니다. 또 우리 박물관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어느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문제들은 한순간에 해결될 수 있는 것들이라고 생각했다. 중요한 것은 박물관의 외형적인 모습이 아니라 그것이 갖는 문화적 역량과 발전 가능성이다. 내가 이 일을 계속하는 것은 문화 역량에 대한 확신 때문이다.

 

나는 문화적으로 척박한 영월에, 책을 짊어지고 내 발로 찾아왔다. 서울의 호산방도 박물관 개관과 함께 영월로 옮겼다. 이렇게 나의 모든 것을 걸고 모험을 한 것이다. 영월은 나의 고향이 아니다. , 아무런 연고도 없다. 그저 이곳이 좋아서, 책이 좋아서 온 것이다. 다시 말해 나는 영월에 그저 살러 온 것이다.

 

내가 꿈꾸는 책마을은 책박물관을 중심으로 하는 자생적인 문화마을이다. 고서점과 화랑이 있고 문화예술인의 작업실에 아름다운 카페가 있는 그런 마을이다. 나는 이를 위해 영월에서 열두 차례의 기획전을 치렀다. 아름다운 책전시를 비롯하여 음양지(陰陽紙)와 센카지(泉貨紙)」 「홍성찬 일러스트레이션 사십년 특별전」 「어린이 교과서」 「종이로 보는 생활풍경근대 종이·인쇄·광고·디자인」 「책의 꿈, 종이의 멋」 「옛날은 우습구나송광용 만화일기 40」 「철수와 영이김태형 교과서 그림」 「영월아리랑··소리와 김정」 「유리물고기1930년대 한국어류사진」 「님의 침묵과 회동서관근대출판의 시작」 「책의 바다로 간다정병규북디자인」 「우리들 마음에 꽃이 있다면김정 그림책전시 등이다.

 

2001년에 개최한 종이로 보는 생활풍경근대 종이· 인쇄·광고 디자인은 우리나라에 신식활판 인쇄술이 도입된 1883년경부터 1960년대 사이의 인쇄물 중에서, 포스터·사진·증명서·신문·호외·전단·광고지 등의 생활사 자료를 중심으로, 종이의 쓰임새와 인쇄·광고·디자인의 역사적 흐름을 보여주고자 마련한 전시다. 여기에 사용된 종이는 대부분이 양지(洋紙)이며, 인쇄·광고·디자인 면에서 보여주는 이미지는 한마디로 촌스럽다고 말할 수도 있다. 비록 궁핍한 시대의 산물이지만, 이 시기의 종이 문화를 통해 우리 지난 삶의 진솔한 모습을, 우리 근대사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자 했다.

 

사진 99. 남는쌀을.JPG
[사진 99] 1945년 광복 직후 미 군정청이 만든 포스터 ‘남는 쌀을 팔읍시다’

전시물 중에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대회에서 마라톤 세계신기록으로,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한 손기정(孫基禎)의 육성을 담은 우승의 감격(콜롬비아 레코드)도 있다. 낡은 레코드판에 붙어 있는 동그란 레이블 종이에도 역사는 기록되어 있다.[*사진98]

복장계의 왕좌는 모샤이다라는 내용의 포스터는 일제강점기 멋쟁이들에게 인기있었던 하늘하늘한 모슬린 천을 광고하는 것으로 당시 풍속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농촌형제여 풍년이 들어 쌀은 만소만은 다른 물건이 업서서 곤난하구려. 도시형제는 식량이 업서 매우 곤난하다. 농촌형제여 쌀을 생활필수품회사로 팔고 회사로부터 필수품구입증명서를 밧으라.”[*사진99]

 

광복 직후 미 군정청이 만든 포스터 남는 쌀을 팔읍시다의 내용이다. 정부에 의한 추곡수매라는 것이 없을 때 도시와 농촌 간의 원활한 물자교환을 위해 마련된 조치였다. 춘향전〉 〈산유화〉 〈유혹의 강〉 〈사랑〉 〈춘희〉 〈아내만이 울어야 하나〉 〈청춘극장등 국내외 영화 리플릿은 그 시대를 대표하는 대중 인쇄물이다.

 

플라스틱보다 종이가 널리 쓰였던 시대에는 각종 상품 케이스와 포장에서도 종이가 일등공신이었다. 일제시대 닭표 빈대약, 비슷한 시기에 동아약화학공업주식회사에서 만든 강력살충제 구라콘’ ‘금복화투도 그렇고, 풍년초담배·율곡성냥·대성성냥·백조성냥·유엔성냥 등 담배와 성냥 등의 포장갑도 모두 종이로 만들었다. 또 로맨스백분·장미백분·서가도란·화신장분·서가연지 등 일제시대와 오륙십 년대를 주름잡던 화장품들도 포함되어 있다.[*사진100]

 

작품의 생성학적 비평전문가인 프랑스의 피에르-마르크 드 비아지(Pierre-Marc de Biasi)는 저서 종이: 일상의 놀라운 사건(Le papier, une aventure au quotidien)에서 현대문명에서 종이의 역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종이는 도처에 있다. 일상생활에서 순간순간마다 사소하고도 중대한 일을 수행한다. 종이는 그 상태로 머물면서 전달한다. 그때 종이는 언어와 민족의 기억을 소장한다. 종이는 증언한다. 그때는 증거이자 법이 된다. 또 종이는 순환하며 의사소통을 한다. 그때에는 당대의 지적 경제적 교류에서 없어서는 안 될 소재가 된다. 종이는 장식하고 포장한다. 그때 종이는 상품구매를 유혹하는 소비사회의 핵심이 된다.”

 

나는 종이의 다양한 모습을 통해 책의 또 다른 실체를 사람들에게 보여주고자 했다. 그후 계속된 전시들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주제 속에서 이루어졌다. 또 전시와 같은 주제로 세미나와 강연회, 음악회 등을 개최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지방의 작은 박물관 행사치고는 과분할 정도로, 각종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곤 했다.

 

영월 책박물관의 모든 행사는, 개관 당시 디자인 작업이 그랬듯이 순전히 자원봉사에 의해 이루어졌다. 문화예술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나의 꿈과 의지를 믿고 지금까지 물심양면으로 많은 도움을 주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책박물관이 어려운 고비를 맞을 때마다 후원을 자청하고 나섰다. 사실 이들이 아니었으면 삼례책마을은 물론 책박물관은 없었을 것이다.

 

사진 100. 화장분.jpg
[사진 100] 로맨스백분, 장미백분, 서가도란, 화신장분, 서가연지 등 일제시대와 오륙십 년대를 주름잡던 화장품들도 포함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