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8 (수)

박대헌의 고서이야기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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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헌의 고서이야기 16

고서계(古書界)의 신사들

  • 특집부
  • 등록 2020.12.23 07:30
  • 조회수 2,617

 

박대헌 고서점 호산방 주인완주 책박물관장

  

 

고서 수집가 중에서 가장 원숙한 경지에 이른 수집가는 자기주도형 수집가라 할 수 있다. 이런 수집가 중에 A선생이 있다. 그에게 고서 수집은 취미이자 연구이자 생활 그 자체였다. 그는 철저히 자신의 안목에 따라 책을 수집했고, 조금이라도 비싸다 싶은 책은 결코 사지 않았다. 굳이 비싸게 주고 살 이유도 없고, 그가 고서 수집에 지출하는 돈은 그의 형편에서는 매우 벅찼기 때문이다. 그는 수십 년간 하루가 멀다 하고 청계천·장안평·인사동을 순례하면서 책을 수집하지 않는 날이 없었다.

 

A선생은 허름하게 널려 있는 고서 더미 속에서 책 몇 권을 골라 놓고는 헐값에 잘 사기로 소문난 분이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대부분의 고서점 주인이 그의 성격을 잘 아는 탓에 가격을 비싸게 부르고 싶어도 주눅이 들어 헐값에 팔곤 했던 것이다. 특히 필사본에 관심이 많아, 이렇게 수집한 책 가운데는 유명인의 친필본이 더러 섞여 있기도 했다. 물론 그만한 안목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이렇게 수집한 고서를 바탕으로 연구도 하고, 책도 여러 권 냈다. 평생 수집한 장서를 유명 연구기관에 양도한 대가로 집도 장만했으니, 평생 고서 수집에 들인 열정이 경제적으로도 도움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A선생과 비슷한 경우로 Y교수가 있다. Y교수는 주말이면 인사동과 청계천, 장안평으로 고서점 순례에 나선다. A선생과도 절친한 사이로, 수집 스타일도 상당 부분 비슷했다. 그 역시 결코 비싼 책을 사는 일이 없었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책을 많이 사기로 유명한데, 주로 허름해 보이는 고서를 많이 수집했다.

 

호산방에 들렀을 때나 길에서 만날 때면 곧바로 아무 데서고 가방을 풀어헤치고 구입한 책에 대해 품평하곤 했다. 간혹 욕심나는 책이 있기는 하지만 거의 섭치였다. 그도 그럴 것이, 고서 수집에는 안목도 중요하지만 어느 정도 경제력이 따라야 하는데 Y교수는 그 이상의 욕심을 부리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이렇게 수집한 책 중에도 가끔 귀중본이 있었다. 이렇게 소장하고 있던 희귀본 몇 권을 팔아 딸을 시집보낸 일화는 지인들 사이에서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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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34] 고대 이집트 콥트어 파피루스 롤. 기원 3세기.

 고서점가의 큰손으로 통하는 수집가 L선생. 젊어서 한때 고서점을 운영하기도 했던 그는 건장한 체구에 일흔이 넘어서도 왕성한 수집의욕을 보이는 분이었다. 마음에 드는 고서를 만나면 가격이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무조건 입수하기로 소문난 분이기도 하다. 그는 지도와 영토 관련 자료를 집중적으로 수집했는데, 이 방면에서라면 그 컬렉션의 양과 질이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다.

 

특히 그는 오래 전부터 일본에서 많은 자료를 수집해 오기도 했다. 그래서 그와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은 그를 수원 독립군이라고 불렀다. 그의 집이 수원이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었다. 그는 수집한 자료를 여러 차례에 걸쳐 D기념관·H기념관·D박물관 등 여러 곳에 기증했다. 특히 D박물관은 선생의 기증자료로 설립되었으며, 그곳의 초대 박물관장을 지내기도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념관이나 박물관에 자료를 기증하는 것에 최고의 가치를 부여할지 모르나 실은 그렇지만도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일단 기증한 후에는 자료의 관리와 활용에 관한 모든 일들이 기증처의 사정에 따를 수밖에 없다. 이런 면에서, 기증자료가 기증자의 뜻과는 관계없이 관리되는 경우도 더러 있다. 또 기증받는 입장에서는 별로 필요치 않은 유물을 마지못해 받는 경우도 있는데, 심지어 고서 같은 것은 일일이 목록을 작성해야 하는 부담을 이유로 기증받는 일조차 꺼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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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35] 고대 이집트 콥트어 파피루스. 기원 3세기.(현재 완주 책박물관 「문자의 바다」전에 전시되어있다. 

L선생은 자료를 기증한 후에도 이들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것 같았다. 기껏 기증했더니 관리도 제대로 되지 않고 전시장에 진열도 되지 않아 섭섭하다는 말을 내게 자주 하곤 했다. 그러나 기증받은 쪽에서는 자신들의 입장은 이해하지 못하고 당장 가시적인 성과를 요구하는 L선생에게 되레 불편함을 느끼기도 하는 것 같았다. 하긴, 어떻게 자신이 직접 관리하는 것과 같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어떤 자료든 돈을 주고 산 사람이 관리를 제일 잘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적어도 그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은 그렇다.

 

L선생은 말년에 몇 년간 개인 연구소를 운영하면서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영인 출판 등의 활동을 하는 듯했으나, 결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는 결국 박물관 설립의 꿈을 이루지 못했고, 사후에는 나머지 자료들이 S시로 기증되었다.

 

또 다른 수집가 L씨는 고위 공직에 오래 있던 분이다. 고서를 보는 안목이 탁월해서 좋은 책을 보고 놓치는 일이 없었다. 그의 관심 분야는 지방행정에서부터 가요··기생에 이르기까지 매우 폭넓어, 그 컬렉션을 보면 가히 박물관 수준이다. 사실 자료를 폭넓게 수집하다 보면 깊이가 없게 마련인데, L씨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았다. 내가 만나 본 수집가 중에서 최고의 안목을 갖춘 몇 사람 중의 하나였다.

 

고서를 구입할 때의 매너 역시 최고의 신사라 할 만했다. 그는 호산방에서 그 많은 책을 구입하면서 한번도 가격에 관해 얘기한 적이 없었다. L씨는 구입한 책에서 얻은 내용을 국정(國政)에도 참고하고 저서도 여러 권 냈다. 고서 수집의 전범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