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27 (월)
한명희/이미시문화서원 좌장
저만큼 어린 시절만 해도 그랬다. 우수 경칩을 지나 따사로운 양광陽光이 동토를 녹이고 나면, 제일 먼저 봄 기지개를 켜는 것은 뽀얀 솜털을 곧추세우는 냇가의 버들개지들이었다. 초목들 중에서 제일 먼저 봄물이 오르는 것도 버드나무이고, 가을 낙엽 때 제일 늦게까지 잎을 달고 있는 나무도 개울 둑가의 버들이었다. 한마디로 끈질긴 생명력을 상징하는 수종이었던 셈이다.
그래서인지 지난날 농본사회에서는 생명의 계절 봄철이 되면 물오른 버들가지를 꺾어서 호드기를 만들어 불며 찬란한 봄의 정취를 구가하곤 했다. 동장군의 한기가 채 가시지 않은 농촌마을에 울려 퍼지던 호드기 소리는 더없이 청초하고도 싱그러웠다. 그것은 순수무구한 민초들이 어우러지던 한 시절 마을 인심의 적나라한 표출이자 소생하는 만물의 환희의 울림임에 분명했다.
피리는 이처럼 태생적으로 우리 고유의 정서적 텃밭에서 생명의 용트림으로 잉태되고 자라왔다. 이것이 곧 피리가락 속에 유난히 끈끈한 서정과 함께 오월의 신록과 같은 싱싱한 생명의 질감이 일렁대는 소이연이다.
근래의 피리 음악에서는 좀해서 생기가 꿈틀대는 살아 있는 소리를 접하기가 쉽지 않다. ‘산 절로 수 절로 산수간에 나도 절로’라던 천인합일적인 문명을 등진 생활 환경 탓도 크지만, 한편으로는 음악을 한갓 재간이나 기교로만 인식한 채 삶의 근원적인 문제들을 간과하는 데서 오는 허물도 적지 않다. 훌륭한 음악이란 천지만물과 더불어 조화와 화목和睦을 이루는 것〔大樂與天地同和〕이라고 했거늘, 어찌 좋은 음악이 혼불 없는 재주부림만으로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나는 피리 음악의 정통을 생각할 때면 으레 정재국 명인을 떠올린다. 우선 수수백년을 이어온 국립국악원 피리 음악의 정수를 이어가는 소중한 존재라는 점에서도 그렇고, 반세기에 걸친 숱한 국내외 연주를 통해 피리의 특장과 본령을 여실하게 대변해 온 공적에서도 그러하며, 나아가서는 음악을 예술의 울타리 속에만 가두지 않고 사람 되게 하는 인간완성의 차원으로 연계시키는 자세에서도 또한 그러하다.
뿐만이 아니다. 정재국 명인의 음악은 만인의 가슴을 공명시킨다. 무미건조한 물리적 진동에 의한 공명이 아니라, ‘무기교의 기교’랄 노련한 기예와 피리 고유의 음질인 싱그러운 활기를 뿜어내는 역동성과 생명력에 의한 심금心琴의 공명이다. 일이관지一以貫之의 내공과 경륜과 예지가 없이는 어림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정재국 명인의 음악에서는 조선조 말엽 대금으로 양명한 정약대 명인의 일화와 같은 공력의 앙금이 배어난다. 그래서 그의 피리 음악에는 감흥이 있고 공감이 있고 생명에 대한 긍정의 희열이 있다.
정재국 명인을 지렛대로 삼아 피리 음악계에 일진청풍의 신선한 변화의 바람이 불었으면 좋겠다. 후학의 입장에서는 정재국 명인의 피리 인생을 사표로 삼아 청출어람靑出於藍의 대성을 다짐하는 전기가 되고, 무미건조한 음향들이 횡일橫溢하는 한국의 악단에는 가산 정재국 명가名家의 음악처럼 농익은 시정詩情과 활력이 훈풍에 봄물 오르듯 풍윤하게 차오르는 계기가 되면 우리 모두의 속 깊은 즐거움이 될 것이다.
(본 연재는 이지출판사 출간 '한악계의 별들'에서 발췌하여 게재한다. 이를 허락해주신 출판사와 필자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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