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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헌의 고서이야기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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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헌의 고서이야기 14

  • 편집부
  • 등록 2020.12.09 07:30
  • 조회수 1,151


   수집가 천태만상

 

 

                   박대헌  고서점 호산방 주인완주 책박물관장

 

 

 앞에서도 말했듯이 고서 수집의 목적은 사람마다 모두 제각각이다. 또한 고서에 대한 지식과 안목이 다르다 보니 수집하는 방식이나 태도 역시 서로 다른 양상을 보이게 된다. 여기에서는 고서 수집의 태도를 유형별로 살펴보기로 한다. 나는 정보탐색형·자기만족형·패가망신형·자기주도형 등으로 분류하곤 한다.

 

정보탐색형 수집가는 대체로 고서 수집보다는 고서가 매매되는 여러 가지 주변 정보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보니 전시회며 경매전 등 각종 고서 모임은 물론 여러 서점을 두루 찾아다니면서 고서에 관한 많은 정보를 얻으려고 한다. 또 여러 수집가와 교류하려 노력하기도 한다. 어찌 보면 매우 바람직한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러한 과다 정보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들 중에는 도리어 중심을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거나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이 많다. 고서를 수집하면서도 자신의 수집 분야와 컬렉션의 질에 항상 불안해 하는 모습을 보이며 다른 수집가의 눈치를 살핀다. 소신이 없기 때문에 구매를 결정해야 하는 순간에도 망설이기 일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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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신문] [사진 30] 『척사윤음』(1839년, 임진자). 이 책은 C씨가 몇 번이고 망설이다가 결국 구입을 포기한 책이다. 현재 완주 책박물관 <문자의 바다-파피루스부터 타자기까지>전에 전시되어 있다. 한글 글꼴이 매우 아름다운 책이다.

 이런 수집가들은 귀하고 좋은 책을 만나더라도, 이 책이 정말 귀하고 좋은 책이라면 다른 수집가가 놔두고 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레짐작해 버리기도 한다. 또 지금 막 고서점에 입수된 책을 자신이 제일 먼저 만났어도 이를 구입해야 좋을지 선뜻 판단을 내리지 못한다. 수집 초기의 한 과정으로 일시적으로 하는 생각이라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큰 문제다.

 

호산방을 15년 넘게 드나들었으면서 단 한 차례도 고서를 구입한 적이 없는 C. 그는, 호산방에는 소위 고서의 대가들과 전문연구자들이 수시로 드나드니, 좋은 책은 자신의 차례까지 오지 않을 것이라고 지레짐작하곤 했다. 그리고 어쩌다 살까 말까 망설이던 책이 팔린 뒤에야 두고두고 후회하곤 했다.(*사진 30)

그러기를 여러 차례 반복하면서도 좀체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나는 이따금 청계천이나 변두리 고서점에서 그와 심심찮게 마주치곤 한다. 나는 아직도 그가 어떤 분야의 책을, 왜 수집하려고 하는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다. 어떤 목적으로 고서를 수집하든 간에 즐거움을 느껴야 하는데, 그는 정보 수집에만 관심을 쏟다가 그 때문에 도리어 스트레스만 받는 것 같았다.

 

[사진 31].JPG
[국악신문] [사진 31] 『척사윤음』(1839년, 임진자). 이 책은 C씨가 몇 번이고 망설이다가 결국 구입을 포기한 책이다. 현재 완주 책박물관 <문자의 바다-파피루스부터 타자기까지>전에 전시되어 있다. 한글 글꼴이 매우 아름다운 책이다.

 C씨와 비슷한 경우로 은행 임원 P씨가 있었다. 내가 그를 안 지는 35년도 넘었다. 그는 오래 전부터 고서에 관심을 갖고 몇몇 고서점에 다니고 있었다. 그는 나를 만나기만 하면 고서에 관해 이것저것 묻곤 했다. 금융인답게 고서 수집도 경제논리로 이해하려는 것 같았다. 또한 그는 고서의 유통구조에 심한 불신감을 갖고 있는 듯했다. 같은 책이라도 서점마다 가격이 제각각인 고서의 유통형태를 그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고, 그러다 보니 고서 수집에 적극성을 보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차라리 고서 수집을 하지 않는 게 낫겠다고 권유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얼마 후 그가 찾아와서,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고서를 수집하려고 하는데 좋은 책을 권해 달라고 했다. 취미생활 겸 노후를 위한 투자로 고서를 수집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 후 몇 차례에 걸쳐 책을 사 갔는데 주로 50~60년대 창간호와 문학 서적이었다. 나는 이왕이면 육이오 이전의 책으로 수집하라고 권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책들은 가격이 비싸니 그냥 50~60년대 책을 수집하겠다고 했다. 앞으로 10~20년 후에는 이것들도 비싸질 것 아니냐는 얘기도 했다. 그때 나는 개 꼬리 삼 년 묵어도 황모(黃毛) 되지 않는다는 속담을 떠올렸다.

 

이후 그는 여러 고서점을 다니면서 본격적으로 고서를 수집하는 듯 보였다. 이따금 나를 찾아와서 다른 서점에서 구한 책을 평가해 달라곤 했다. 이런 경우 나는 대부분 잘 샀다고 말해 준다. 그러나 값에 대해서만큼은 무어라 할 말이 없었는데 그의 입장에서는 이것이 답답했던 모양이다. 1년이 지나지 않아 그는 고서 수집을 포기했다. 그가 고서 수집을 그만둔 까닭은, 그때까지도 고서계의 생리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 후 길에서 우연히 만났을 때, 그는 고서 수집을 다시 시작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그냥 웃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