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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헌의 고서이야기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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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헌의 고서이야기 10

  • 특집부
  • 등록 2020.11.11 07:30
  • 조회수 620

                                       수집도 알아야 한다

            


                 박대헌 고서점 호산방 주인, 완주 책박물관장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취미와 기호를 갖고 있다. 바둑이나 장기를 즐기는 사람, 낚시·골프·여행을 즐기는 사람 등 그 유형도 다양하다. 이처럼 취미란 마음이 끌려 특정한 방향으로 쏠리는 흥미를 말한다. 다시 말해 취미란 본업으로 그리고 전문적으로 하는 일이 아니라 즐기기 위해 하는 것이지만, 때때로 그 대상의 아름다움과 멋을 이해하고 감상하는 능력이 요구되기도 한다. 우표 수집이나 화폐 수집처럼 무언가를 수집하는 취미도 있는데 고서 수집도 그 중 하나다. 고서를 수집하면서 교양과 지식을 높이고 삶의 풍요로움과 멋을 느끼는 것이다. 또 남이 갖고 있지 않은 귀한 책을 자신만이 소장하고 있다는 데서 강한 자기만족을 느끼기도 한다. 물론 이 정도 단계에 이른 수집가라면 단순히 취미라고만 말할 수 없다. 이는 고서 수집이 이미 취미를 넘어서 어느 정도 전문가의 안목을 가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구나 어떤 분야의 책을 오랫동안 꾸준히 수집하다 보면 특별히 가르침을 받지 않아도 그 방면의 지식이 쌓여서 전문가가 되게 마련이다. 이런 경우 책을 수집하지 않는 그 방면의 전공자나 학자보다 더 많은 지식을 가질 수도 있다. 수집한 고서에서 얻은 지식을 활용해 국가와 사회에 봉사할 수도 있다. 여기에는 자신이 수집한 고서를 바탕으로 연구하고 저술을 내는 일도 포함된다. 더 나아가 박물관이나 연구소를 설립하는 것도 사회적인 봉사에 속한다.

 

한편, 수집한 고서를 매도해 경제적인 이익을 얻을 수도 있다. 이것은 처음부터 그러한 목적으로 고서를 수집했다기보다는 취미와 연구 목적으로 시작한 것이 나중에 커다란 이익을 가져다주는 경우다. 또한 고서점 주인처럼 고서의 수집과 판매를 직업으로 하면서 즐거움과 보람을 느낄 수도 있다. 이처럼 고서 수집에는 여러 가지 즐거움이 따른다. 군인이 전쟁터에 나가기 전에 총을 다루고 쏘는 법을 익혀야 함은 기본이다. 이에 앞서 자신이 왜 전장에 나가는지에 대한 확고한 의식이 있을 때 사기는 충천할 것이다. 고서 수집도 이와 마찬가지로, 본격적인 수집에 들어가기 전에 미리 갖춰야 할 것들이 있다.

 

고서를 수집하는 데는 반드시 목적이 있게 마련이고, 또 있어야 한다. 오랜 시간과 적지 않은 돈, 그리고 열정이 따라야하기에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내가 만나 본 대다수의 수집가들은 수집 목적이 분명치 않아 보였다. 목적이 뚜렷하지 않은 컬렉션은 십중팔구 질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결국에는 애써 모은 책들이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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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1] 이상범의 신문 삽화 원화(1950년대). 호산방 소장.

 

고서를 수집하는 목적은 사람에 따라 각각 다를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그저 책이 좋아서 수집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여가를 즐기기 위해, 읽기 위해, 저술을 위해, 박물관이나 자료실 설립을 위해, 또는 투자 등을 목적으로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어느 것이라도 좋다. 그러나 목적을 이루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목적이 무엇인지를 정하고 수집을 시작하는 것이 좋다. 그렇지 않을 경우 고서를 수집하다가 중도에서 그만두게 되는 일이 보통이다. 여기에는 대개 그럴 만한 사정이 있다.

 

고서 수집가가 어느 정도 고서에 눈을 뜨면 자신의 컬렉션을 되돌아보게 마련이다. 이때 대부분의 수집가는 자신의 컬렉션을 보고 깊은 회의에 빠진다. 그동안 내가 정성 들여 수집했다는 게 고작 이것밖에 안 되나 하는 실망감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고서 수집 경력이 십오 년이 넘은 Y씨는 이십 대 시절부터 수집을 해 왔다. 젊은 시절에는 왕성한 활동력으로 서울 변두리 헌책방을 이틀이 멀다 하고 부지런히 다녔다. 수집 대상은 잡지 창간호였다. 대부분의 수집가가 그렇지만, 고서를 수집하다 보면 자신의 관심 분야 외의 책도 사들이게 마련이다. 책이 좋아서 구하기도 하고, 모처럼 들른 서점에서 그냥 나오기가 뭐해서 한두 권 사기도 한다. 그 역시 이렇게 모은 책이 칠팔천 권이 넘었다. 말이 칠팔천 권이지 집 안이 온통 책으로 가득 차 있어 움직일 틈도 없었다. 대부분의 수집가가 이와 비슷한 처지일 것이다.

 

호산방이 장안평에 있던 시절, K씨에게서 잡지 수천여 권을 구입한 적이 있었다. 해방 이전의 창간호와 귀중본 잡지가 상당수 포함된, 매우 수준 높은 컬렉션이었다. 이 책들을 본 Y씨가 의기소침해진 것은 당연했다. 자신의 장서하고는 비교가 안 되는 수준이었으니 얼마나 맥이 빠졌겠는가. 그 영향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는 얼마 후 고서 수집을 그만두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어찌 보면 그로서는 그만한 시점에서 결심을 잘한 것이라 생각한다. 수집 목적이 뚜렷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취미로 시작했지만 수집하다 보니 수천 권이 된 책을 어찌할 것인가. 관리도 그렇고 활용 방안도 마땅히 준비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를 절망하게 만든 것은 장서의 질이었다. 수천 권의 장서 가운데 육이오 이전의 희귀 잡지는 불과 몇 권 안 되었으니, 고서 수집가의 장서로 내세우기에는 빈약한 수준이었다. 나는 이와 비슷한 경우를 여러 번 보았다. 취미로 시작했다 해도 수천 권을 수집했다면 이것은 이미 취미가 아니다. 취미란 여가를 이용하여 정신적 육체적 즐거움을 얻기 위한 것인데, 도리어 이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뭔가 크게 잘못된 것이다. 취미로 하기에는 애당초 잡지 창간호라는 주제부터 목적에 적합하지 않았다. Y씨는 그것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나는 수집 목적이 분명치 않다면 고서 수집을 그만두라고 단호하게 권하고 싶다. 다시 말하지만 목적이 분명치 않은 수집은 질 좋은 컬렉션을 기대할 수 없고, 컬렉션의 질이 좋지 않으면 활용 효과 역시 기대할 수 없다. 또 이로 인한 정신적 물질적 피해가 막심하여 결국에는 반드시 후회하게 된다. 수집의 목적이 정해졌으면 그에 맞는 수집 방향으로 철저하게 나아가야 한다. 아무리 큰 기관이라도 여러 분야의 책을 동시에 수집하는 것은 무리다. 특히 개인의 경우 수집과 보관에 따르는 한계가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에 규모가 작을수록 좋고, 주제는 독특할수록 좋다. 이는 경제적인 문제와도 직결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어떤 분야의 책을 수집할 것인지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자신의 입장과 상황에 알맞은 주제의 선정이다. 한 연구자가 연구논문의 주제를 무엇으로 정하느냐가 그 논문의 성과를 결정짓는 것과 같은 이치다.

 

수집 대상의 주제를 정해 놓았어도 수집하다 보면 범위가 자꾸만 넓어지는 것을 경험할 것이다. 이것은 자연스런 현상이지만, 이를 조절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애당초 이런 계획 없이 수집을 시작했다면, 어느 시점을 넘긴 다음부터는 수집가 자신도 주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만다. 자신과 연관 있는 주제라면 더욱 좋다. 직업·고향·종교·취미·전공 등과 관련짓는 것도 한 방법이다. 가령 박물관 설립 같은 큰 목표를 세우고 고서 수집의 뜻을 두었다면 주제를 정하는 단계부터 전문가와 상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만약 어떤 주제의 박물관을 설립할 목적으로 고서를 수집하기로 결정했는데, 이미 누군가가 수십 년 전부터 이와 유사한 주제의 박물관 설립을 준비하고 있었다면 어떡하겠는가. 이런 일도 있을 수 있기에 전문가라면 이러한 정보까지 꿰뚫고 있어야 한다.

 

앞에 예로 든 것처럼 주제를 출판미술 또는 출판디자인 등으로 정했다면, 다음은 수집 대상의 범위를 좀 더 구체적으로 한정 지어야 한다. 우선 수집 대상을 1950년대 이전 자료로 한정하고, 그것을 다시 조선시대 자료와 개화기 이후의 근대 자료로 구분한다. 조선시대 자료는 도서와 비도서로 나누고, 도서는 또다시 판화가 실린 도서, 목판 지도, 활자본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비도서는 판화가 실린 목판과 시전지판(詩箋紙板), 능화판(菱花板) 등 판화 관련 실물자료와 인쇄 관련 유물 따위로 구분한다. 근대 자료도 도서와 비도서로 구분하여, 도서는 장정가가 표기된 도서와 편집디자인이 우수한 도서, 교과서 삽화 등으로 나누고, 비도서는 포스터·광고지·증명서 등 일상 속의 출판디자인 자료로 다시 구분한다. 특히 장정에 사용한 표지그림이나 삽화의 원화 등은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