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20 (월)

민족의 혼불. 안중근 의사 의거 제111주년 기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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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혼불. 안중근 의사 의거 제111주년 기념식

26일(월) 오전 10시, 안중근의사기념관에서

  • 편집부
  • 등록 2020.10.26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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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 의거 111주년 기념식이 26일 오전 10시 서울 남산 안중근의사기념관에서 열렸다. 

 

사단법인 안중근의사숭모회(이사장 김황식) 주관으로 열리는 기념식은 안 의사 약전봉독, 기념 사, 장학금 전달식, 기념공연, 만세삼창 등의 순으로 진행되었다. 

 

안중근 의사 의거 111주년 기념식 26일 거행 송고시간 2020-10-23 08:55 유현민 기자 안중근 의사 의거 기념식 2019년 10월 26일 오전 서울 중구 안중근의사기념관에서 열린 안중근 의사 의거 110주년 기념식에서 김황식 (사)안중 근의사숭모회 이사장이 기념사를 하였다. 

 

특히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외부 인사를 초청하지 않고 숭모회 임 원과 안 의사 유족 등으로 참석 인원을 최소화했다. 다만 숭모회 누리집(www.patriot.or.kr)을 통한 온라인 중계로 누구나 비대면으로 기념식에 참여 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고 보훈처는 전했다. 

 

안중근 의사(1879.9.2.∼1910.3.26.)는 황해도 신천 사람으로, 1905년을사늑약 후 중국 상해로 건너가 국권 회복의 길을 강구하였으며, 부친상을 당하고 돌아와서는 사재(私財)를 털어 삼흥학교(三興學校)ㆍ돈의학교(敦義學校)를 세워 인재 양성에 힘썼다.


안 의사는광무황제의 폐위, 군대의 해산 등 나라가 식민지 상태에 이르자 다시 해외로 나가 이범윤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으며, 1908년에는 의군장이 되어 의병부대를 거느리고 함경북도로 진입하여경흥 등지에서 대일 항전을 전개하였다.


그 후 안 의사는 다시 러시아령의 블라디보스토크 등지를 왕래하면서 동지들과 구국의 방도를 모색하였고, 1909년에는 동지들과 함께 손가락을 잘라 ‘단지 동맹’을 결성하며 일사보국(一死報國)을 맹세하였다.


1909년 9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일제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하얼빈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우덕순 등과 함께 거사 계획을 세웠다.


 마침내 의거 당일인 10월 26일 9시경, 안 의사는 하얼빈역에서 러시아 군인들의 경례를 받으며 각국 영사들이 도열해 있는 곳으로 걸어가던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총을 쏘아 3발을 모두 명중시켰다. 러시아군이 그를 체포하려고 하자, 하늘을 향해 "코레아 우라(대한독립 만세)”를 크게 세 번 외쳤다. 이날 의거를 통해 일제의 침략을 전 세계에 알리고, 침체된 항일운동을 다시 일으키는 역할을 하였다.


같은 해 11월 러시아 헌병대에서 뤼순(旅順)에 있는 일본 감옥으로 이송된 안 의사는 이듬해 2월 14일 사형을 선고받고 3월 26일 순국했다. 정부는 안 의사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