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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창 만정 김소희의 삶과 예술'전

김지연
기사입력 2005.04.12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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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기간 : 2005년 4월 15일 - 7월 31일(106일간)

    전시장소 : 고창판소리박물관 다목적실

    '명창 만정 김소희의 삶과 예술'전을 열며

    “소리만 잘 하려고 허지 마 . 우선 사람이, 인간이 돼야지 올바른 국악인이여.”

    예술에서나 일상에서나 조금도 흐트러짐없이 단아하고 향기있는 삶과 예술로 귀감이 됐던 만정 김소희 .

    한평생 소리꾼으로서의 외길을 걸어 무소불통 빛나는 예술혼을 불태웠던 만정 김소희선생이 우리곁을 떠난지 올해로 10년째가 됐다. 그리고, 10주기를 맞이하여 기획소전을 열게 되었다.

    ‘고려청자의 쑥물 든 하늘빛과 조선조 백자의 희다겨운 옥빛이 어려있고 가을밤 기러기 소리며 청전의 학울음 소리와 낙목한천의 찬바람 소리를 느끼게 했던 목소리 . 평평한 목소리로 나가다 한량없이 높은 소리로 냅다 휘잡아 올려가지고 거기에서 애절비절하게 쥐어짜다가 톱질로 비벼 차근차근 말아들이는 애원성으로 듣는 사람의 애간장을 녹이던 명창'(중앙일보 95년4월19일 분수대)이라는 평을 듣는 그는 애기명창으로 어릴 때부터 일찌기 이름을 날렸다.

    하늘이 내린 목을 타고 났다 . ‘천구성'인 것이다.

    만정선생은 처신이 당당하고 매사에 맺고 끊음이 분명했다 .

    김소희 명창의 소리를 들으면 여러 명창의 소리가 들어있다 한다 .춘향가에는 송만갑명창의 소리가 있고, 정정렬명창과 김소희명창 자신의 소리가 들어있다. 만정은 동·서편의 소리를 두루 섭렵하고 자기 소리로 승화시켜 김소희제를 만들었다고 평가된다. 누가 들어보아도 가성이나 꾀목을 쓰지 않고 담담하게 소리를 냈다. 군산대 최동현교수는 19세기말 대원군의 총애를 받았던 전채선 이래 우리의 여창 판소리가 이룩한 최고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만정을 꼽으면서, 윤곽은 크고 바르게 그리면서도 세부는 아기자기하고 부드럽게 엮어가는 것이 그의 소리였다고 평한다.

    1917년 고창에서 본명을 순옥으로 하고 농부의 둘째딸로 태어난 그는 가세가 기울면서 9살때 부모의 곁을 떠나 광주 언니집 신세를 졌다. 광주여고보 시절인 13세때 당대의 명창 이화중선의 공연을 보고 소리꾼이 되기로 결심했다.

    울리고 웃기는 가락이며 가사 , 부채를 꼬나쥔채 관객을 온통 탄성의 도가니로 몰고가는 발림, 오금을 못쓰고 빨려들게 하는 아니리 등에 완전히 도취되고 말았다. 열병에 걸린 것처럼 공연이 계속되는 10여일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가설극장의 포장문을 들추고 맨 앞자리에 앉았던 그녀가 소리공부를 위해 처음 찾은 이는 동편제의 대가 송만갑의 문하에 들어갔다. 그리고, 정정렬에게서 춘향가, 전남 화순의 박동실에게서 수궁가 적벽가 등을 배웠다.

    김소희는 100년에 한번 나기 힘든 천구성의 타고난 목에다 노력을 더하여 3-4년의 짧은 기간에 명창의 반열에 올랐고 정악, 한학, 서예등을 익혀 그의 예술에 품격을 더하였으며, 판소리 춘향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를 비롯, 만정 김소희제의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하였다.

    선생은 전통적인 구전심수 , 이심전심으로 많은 제자를 길러냈으며, 서울국악예술고등학교를 설립하여 국악의 제도권 전문교육의 초석을 마련하였고, 해외공연을 통하여 우리 전통음악의 진면목을 세계에 떨쳤다.

    2004. 4. 15. 고 만정 김소희명창 10주기에 찾아온 따스한 봄날에

    고창판소리박물관


    만정 김소희 선생 약력 (서기 1917. 12. 1. ~ 서기 1995. 4. 17.)

    성명 : 김순옥(金順玉)

    예명 : 김소희(金素姬)

    아호 : 만정(晩汀)

    유자녀 : 2남 1녀(여식 : 박윤초[朴倫初] 국악인, 교수)





    ● 학력 / 사사

    1917. 12. 1 전라북도 고창(흥덕) 출생

    1932. 전남여자고등보통학교 2년 수료

    1930. 송만갑 선생 판소리 등 창악사사

    1932. 전계문 선생 가곡, 시조 사사

    김용건 선생 무용 사사

    1933. 정성린 선생 무용 사사

    1934. 정정열 선생 판소리 등 창악사사

    김종기 선생 가야금 사사

    1965. 우전 신호열 선생 서예, 한학 사사

    ● 예술활동

    1934. 판소리 춘향가 취입(콜롬비아 레코드사)

    1936. 판소리 춘향가 완창 취입(빅타 레코드사)

    (정정열, 임방울, 이화중선, 박록주, 김소희, 고수 한성준)

    조선 성악연구회 회원

    1948. 여성국악동호회 설립 초대이사

    창극 옥중화, 햇님달님 공연

    1949. 여성국악동호회 이사장

    1954. 민속예술원(현 서울국악예술고등학교) 설립, 초대원장

    1957. 대한국악원 이사

    1962. 국립국극단 부단장

    한국국악협회 이사장

    파리국제민속예술제(제9회)참가, 유럽순회공연(파리, 로마, 아테네, 이스탄불)

    1963.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판소리) 지정 (문화공보부)

    1964. 삼천리 가무단 미국순회공연

    민속예술단 동경올림픽 공연, 일본순회공연

    1969. 제일동포 순회공연 일본)

    1971. 김소희 창악 전수소 설립

    1972. 판소리 공연단 미국 순회공연

    1973. 오사카 민단초청 8.15 기념공연 (일본)

    1976. 미국 독립 200주년 기념 순회공연 (미국)

    1979. 국악생활 50년 기념 대공연 세종문화회관)

    1980. 한국미술 5000년전 기념공연 (미국 보스톤)

    1981. 아사히신문 후원 판소리 순회공연 (도쿄, 오사카, 교토 등)

    1983. 한국 전통예술단 일본순회공연 (일본문화재단 초청)

    1988. 서울올림픽 폐막공연 「떠나가는 배」 녹음

    1994. 한국 국악협회 이사장 역임

    서울 국악예술고등학교 이사장

    1995. 4. 17. 별세

    1995. 4. 21. 한국 국악협회장 (전북고창 선영)

    ● 교육 단체 활동

    1948. 여성국악동호회 설립?초대이사

    1949. 여성국악동호회 이사장

    1954. 민속예술원 (현 서울국악예술고등학교) 설립 초대원장

    1957. 대한 국악원 이사

    1962. 국립 국극단 부단장

    한국국악협회 이사장

    1963. 중요 무형문화재 제5호(판소리) 지정

    1971. 김소희 창악 전수소 설립

    1994. 한국 국악협회 이사장

    서울 국악예술고등학교 이사장


    ● 수상

    1931. 남원 춘향제 민속예술경연 1등상

    1959. 국악상 (제4회) (국악진흥회)

    1962. 세계 방송대상

    1966. - 1968. 서예 입선 3회, 신인예술상 (문교부)

    1971. 아시아 음악제 (제2회) 방송적합성 부문 우수상 (유네스코)

    1972. 문화예술진흥 공로상 (문화공보부)

    1973. 국민훈장 동백장 (대통령)

    1979. 국창기념비 건립 헌수 (고창 흥덕 청년회의소)

    1982. 초대 한국국악대상 (한국국악협회)

    1991. 춘향문화대상 (남원시)

    서울시 문화상 (서울시)

    초대 동리 대상 (동리기념회)

    1994. 예술가의 장한 어머니상 (문화체육부)

    제1회 방일영 국악상 (조선일보 방일영 문화재단)

    1995. 작고하신 후 제1호 금관 문화훈장 추서 (정부)

    광복 50주년기념 - 역사를 만든 한반도의 주역들

    50인중 1인으로 선정 (중앙일보부설 현대사 연구소)

    1996. 만정 김소희선생 1주기 추모 논문집헌정 (동리연구회)

    경연대회

    경연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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