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03 (월)
21일 오전 장충동 국립극장 뜰아래 연습실. 스피커에서 조용히 울려 퍼지는 오경자의 거문고 산조 소리와 기개의 춤인 '한량무' 동작이 어우러지면서 고즈넉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드넓은 연습실을 국립무용단 윤성철 수석단원의 절제됐지만 유려한 동작들이 가득 채웠다. 정중동(靜中動)의 미학, 다분히 명상적이었다. 산을 흩트리고 물을 지킨다는 뜻을 담은 '산산·수수(山散·水守)'라는 춤 제목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인해 국공립극장은 휴관 중이다. 그럼에도 구성원들은 쉴 틈이 없다. 조금이라도 진정세가 보이면, 바로 공연을 올릴 수 있게끔 만반의 준비가 돼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상황이 잠시 나아졌던 지난 5월 국립극장 전속단체 국립창극단이 달오름극장에서 신작 창극 '춘향'을 무사히 공연한 사례도 있다.
국립무용단은 오는 11월 27~28일 별오름극장에서 '홀춤'을 예정하고 있다. '새로운 전통 쓰기'를 내세운 이번 공연은 '독무 형식'으로 창작한 국립무용단원의 안무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전통적 춤사위에 단원의 개별적이고 현대적인 시선이 더해진다.
별오름극장은 블랙박스 형태의 약 100석짜리 소극장이다. 객석 거리두기를 통해 최소한의 관객 앞에서 일곱 단원들이 번갈아 가며 홀로 무대를 채운다. 현재 연습실도 일곱 단원이 방역 지침을 지켜 번갈아가며 사용하고 있다.
윤 수석단원은 "(코로나19로 인해) 집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는 '몸 풀기' 정도만 가능하다"면서 "이렇게 넓고 좋은 무용실에서 홀로 연습을 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1995년 국립무용단에 입단한 윤 수석단원은 코로나19라는 초유의 일에 대해 많이 안타깝다고 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 있더라도, 무용수들은 무대에 올라가면 다 풀리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니…"라고 말끝을 흐렸다.
"코로나19가 진정이 돼 공연을 올린다고 하면 이미 석달, 네달 동안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면서 "많은 시간을 요하는 작품인 만큼 공연을 하지 못하더라도 계속 몸과 마음을 갈고 닦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뜰아래 다른 한켠 공간에서는 소수의 인원이 한창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오는 11월 20~22일 달오름극장에서 예정한 국립무용단의 '가무악칠채' 관련 영상 아이디어를 나누기 위한 자리였다.
국립무용단의 차세대 안무가 육성 프로젝트 '넥스트 스텝 II'을 통해 발굴된 작품이다. 국립무용단 이재화 단원의 안무로 전통이 기반이지만, 작년 단독 공연에서 EDM 같은 강렬함으로 인스타그램 '핫 공연'으로 떠올랐다.
기존 소리꾼 김준수에 정가 가객 박민희가 가세하는 올해는 무용수의 몸짓과 음악의 신호에 따라 실시간으로 반응하는 영상인 키네틱도 사용할 예정이다. 이날은 키네틱 담당 업체와 화상 회의를 진행했다.
이재화 단원은 "좀 더 시각적으로 인터랙티브한 공연을 생각하고 있다"면서 "코로나19로 많은 사람들이 모이기 힘든데 이렇게 화상으로 기술 담당자분과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어 작업 진척을 빠르게 진행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같은 시각 국립극장 내 하늘극장에서는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선율이 울려 퍼졌다. 주홍콩한국문화원(원장 박종택)이 주최하는 '제10회 한국10월문화제'(Festive Korea 2020)의 개막공연 '동행'을 연습 중이었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은 10월3일 같은 곳에서 연주하는 공연을 온라인으로 실시간 생중계한다. 주홍콩한국문화원 초청으로 당초 홍콩시티홀에서 공연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로 대면 공연이 취소됨에 따라 공연을 스트리밍하기로 했다.
카메라 다섯대로 촬영하는 영상을 주홍콩한국문화원·국립극장·국립국악관현악단 유튜브 등 총 3개 채널을 통해 선보인다. 국립국악관현악단 대표 레퍼토리인 최지운의 '윤슬'과 백대웅의 '남도아리랑' 등을 들려준다.
홍콩 관객들을 위해 대표적인 홍콩 대중가요, 영화 OST 등을 국악관현악으로 편곡한 '홍콩 대중가요 연곡'도 선보인다. K팝 그룹 '씨엘씨(CLC)'의 홍콩 출신 멤버 엘키가 공연의 진행을 맡았다. 광둥어로 진행하는 사회자 영상은 사전 제작했다. 생중계 때는 한국어·영어 자막을 함께 제공한다.
온라인 공연이지만, 안전을 위해 편성을 바꿨다. 국립국악관현악단 단원은 62명인데, 이번 '동행' 연주에는 39명만 나선다. 스태프 11명 포함 50명만 실내에서 함께 한다.
단원들은 매일 하늘극장에 들어가기 전 발열 체크를 하며, 건강 이상을 확인한다. 비말을 차단하기 위해 관악기 연주자들 앞에 투명 아크릴 가림막을 설치했다. 연주자 모두 개인 보면대를 사용하고, 악기마다 간격도 평소보다 늘렸다.
채인영 책임PD는 "곳곳에 아크릴을 설치해서 뒤에 앉은 연주자들이 평소보다 음 시차를 더 느끼는 등의 어려움이 있다”면서 "코로나19로 인해 온전한 편성이 힘들어 예술적인 것을 일정 부분 포기해야 할 때가 있다. 상반기에 온라인 공연 등을 하면서 음향 조정 등의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는데 경험을 바탕으로 완성도를 높이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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