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01 (토)

천년의노래 삶의소리 김순녀의 정선아리리
  • 해당된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악뉴스

천년의노래 삶의소리 김순녀의 정선아리리

3월 16일 오후 7시 국립국악원 우면당

  • 김지연
  • 등록 2005.03.05 14:25
  • 조회수 103,701
147-203.jpg
지난 9월에 정선아리랑이 토박이 3대 가족 10인에 의해 8장짜리 CD로 발매 되었다는 뉴스가 여러 메스콤의 화제가 됐다.
 
2003년 5월부터 2004년 8월 까지 신나라와 (사)한민족아리랑연합회가 공동기획하고 신나라가 발매한 이 음반은 우리나라 음반사에서도 단일 소리로 가장 방대한 음반이라는 기록을 갖게 됐다. 특히 긴아라리는 물론 그 동안 정선아리랑의 한 지류인 ‘자즌아라리·엮음아라리·한오백년 · 경기제(김옥심제) 정선아리랑을 모두 담았다는 점에서 주목하게 됐으며 국악신문 한켠에도 소식을 담았다. 그 음반의 중심이 됐던 김순녀 명창을 국악신문에서 초대하여 오는 3월 16일 오후 7시 국립국악원 우면당에 올린다.


"아리랑은 우리 겨레의 영원한 노래입니다. 전 세계 어디를 가도 우리 배달의 겨레는 아리랑으로 통합니다. 아리랑만 있으면 같은 겨레임을 알아보고 서로를 껴안을 수 있습니다. 일제시대를 비롯해 즐거울 때나 슬플 때나 우리 겨레를 아리랑을 부르면서 아픔과 울분을 달랬습니다. 이렇듯... 저희 가족도 힘들 때나 기쁠 때나 아리라 가락에 삶의 애환을 담아 왔으며, 늘 일상 생활 속에서 아라리 가락을 흥얼거리는 할머니를 보면서 아버지와 어머니도 아라리를 생활화하며 살아오셨고 자연스럽게 형제 자매들도 따라 부르게 되었으며 조카들까지 이어졌습니다. 이로 인하여 우리 가족은 4대째 자연스럽게 소리의 맥을 이을 수 있었다”는 김순녀 씨, 정선에 사는 분이라면 누구든지 아라리 한대목을 다 부르줄 알죠 그러나 저희 가족이 아리리를 체계적이고 본격적으로 부르게 된 동기를 할머니(남효자 88년 작고)가 저희 집안으로 시집을 오면서 부터라고 한다.

147-204.jpg147-205.jpg

김순녀 씨의 할머니는 다섯 살 때부터 아라리를 부르셨다고 한다. 외증조 할아버지가 정선읍내에서 여인숙을 운영했고 장날이면 많은 사람이 모이는데 할머니는 이런 장날에 어김없이 아라리를 불렀고 이를 본 사람들은 어린아이가 소리를 너무 잘한다며 용돈도 많이 주셨다. 할머니는 마치 아라리를 위해서 태어나신 양 아라리 가락속에서 삶을 생활화했으며, 그 무렵부터 정선읍내에서 알아주는 소리꾼으로 소문이 났고 읍내에 큰 잔치가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초대를 받아 소리를 하셨다. 무른박 장단에 맞추기도 하고 때로는 장고 가락에 맞추어 한껏 흥을 돋우시곤 했다. 꽃본나비 물 본 기러기 탐화봉접 아니냐 나비가 꽃을 보고서 그냥 갈수 있는냐' 할머니는 그날 그날 상황에 맞추어 창작하신 가사를 덧붙여 아라리를 부르것이 흥겨움과 분위기를 한껏 고조될 수 있도록 유도 햇으며, 이것이 인기 요인이 아니였을까 싶다. 죖오늘 갈런지 내일 갈런지 정수정망이 없는데 맨드라미 줄봉숭아는 왜 심어놓았나' 라는 할머니의 아라리 가락이 지금도 귀에 쟁쟁하며 그 가락이 머릿속에 가슴속에 남아 있다는 김순녀 씨,

 

이런 할머니의 영향을 받아서 고모(김옥자 76세)도 아라리멋에 흠뻑 취해 살고 있다고 한다. 할머니의 일상생활이 그러 했으니 고모도 자연스레에 익숙해진거라 믿어 의심치 않지만 현재 76세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정선읍 시장에서 장사를 하시며 아라리 할머니로 통한다. 그 만큼 구슬프고 구성진 아라리 가락을 구구절절이 잘부르시기에 지금도 전국 각지에서 취재진이 찾아와서 녹음해 간다.

 

김순녀 씨의 아버지는 평생 농사를 지으시며 살아온 전형적인 농사꾼이지만 할머니의 영향을 받아 소를 몰고 밭을 갈대도 감자와 강냉이를 심으면서도 콩밭을 메면서도 고추를 따면서도 아라리를 흥얼거린다. 특히 도리깨질에 맞추어 아라리를 부르며 명창이 따로없다. 죖놀다가 노랑북새는 내가 감당할꺼니 열두 돌다리 외나무 다리를 부디 조심하세요' 이런 아버지에게 시집 온 어머니 또한 아라리 가락에 흥미를 느끼는것 당연하지 않을까. 함께 해온 세월이 50여년 강산이 다섯 번이나 변하고도 남을 세월이니 자연스레 몸에서 느끼며 가슴으로 삶의 일환이 되어버린 셈이다. 김순녀 씨가 생각나는 건 "어렸을 적에도 가족이 시간과 장소에 연연해 하지 않고 누구나 할 것 없이 아라리 가락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행복해 보이는 우리 가족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구다” 라고 회상한다.

"우리 집안에서 정선아리랑은 태교 음악이나 다름없죠. 뱃속에서부터 들었고 태어나서 지금까지 정선아리랑을 잊어 본 적이 없으니까요.”

147-218.jpg


동생 김순덕도 정선에서 정선아리랑 지킴이로 소리꾼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1982년 정선아리랑경창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고 1985년 KBS 전국노래자랑 우수상 수상, 1999년 정선아라리 전수장학생으로 지정받았으며 2003년 서울전통공연예술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차지했다.

 

김순덕 씨는 정선 5일장만 되면은 어김없이 정선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리는 정선아리랑 창극무대에 오른다. 뛰어난 소리 실력을 인정받아 정선군이 제작한 정선아리랑 창극 신들의 소리, 아우라지, 아! 정선아리랑, 거칠현등에 300여회 이상 고정 출연하며 주연 소리꾼으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고한여고, 정선중, 사북초, 고한초, 사음초 등 관내 초·중· 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정선아리랑 전수교육에도 앞장서고 있으며, 또한 아들(김상근 21세. 전주대 재학 중), 딸(김상아 16세)도 어머니 김순덕 씨의 대를 이어 정선아리랑 전수교육을 받고 있다.

 

이런 대를 이어온 아라리 사랑은 김순녀 씨를 피해갈 수 없었다. 어렸을 적부터 본격적인 소리공부를 하고 싶어 어머니께 말씀을 드렸으나 어머니는 안된다고 했다. 그 시절엔 누구나가 그러했듯이 본격적인 소리 공부를 하면 기생이 된다는 생각을 하시었다. 하지만 맘이 콩밭에 있으니 아무런 희망도 살 용기조차도 없을 정도로 쇠약해져가는 순녀 씨을 보고 안타까운 고모가 어머니에게 "우리 동네에 소리 공부를 가르키는 선생님이 계시니 한번 보내나 보라고 권유 했지만 어머니는 안된다는 말씀, 그러나 아리랑을 꼭 해야된다는 일념 하나만으로 몇날 몇일을 졸라서 겨우 허락을 얻어냈다. 이렇게 김순녀 씨는 정선에서 제일가는 소리꾼이자 명창인 김병하 선생을 만나게 됐다. 힘겹게 얻어낸 허락이니 얼마나 열심히 했겠는가? 

 

밤낮을 가리지 않았으며 잠을 자다가도 아라리를 흥얼거리기가 한 두 번이 아니였다고 한다. 그 후 2년이 채 지나지 않아서 영월에서 KBS 라디오 민요백일장이 열렸다. 당시엔 최고 인기 프로그램으로 청취율이 상당히 높은 프로그램이였다. 지금에 경기소리나 민요 하시는 중견 명창들은 이 프로에 한번정도 출연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정도로 인기있는 프로그램으로 기자는 알고 있다. 김순녀 씨도 이때 아라리를 불러서 1등상인 최우상을 수상하게 되었고 자신감과 희망이 더욱 더 고조됐다.그러던 중 김뻑국 선생이 정선에 순회공연차 들러 무대를 만들고 정선을 대표하는 소리로 김병화 선생과 정선 아리랑을 함께 불렸다. 이를 본 김뻑국 선생이 죖전국순회 공연을 하고 있는데 정선 아라리를 전국적으로 보급시켜보지 않겠느냐'고 권유했다.

 

정선아라리 하나로 소리에 대한갈증을 느끼던 중 이같은 제안을 받은 김순녀 씨는 혼쾌히 김뻑국 예술단 입단과 동시에 전국순회 공연에 합류하게 됐다. 김순녀 씨의 인기은 곧 나타났다. 가는 곳마다 너무 생소하고 맑은 정선 소리에 많은 관객들은 감탄과 환호로 반겨 주었다. 그리고 공연 순회 중 김순녀 씨는 소리에 전환점이 된 너무 귀한 선생님들을 만나게 되었고 그 중에서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예능보유자인 故 안비취 선생을 만났다.

 

 안비취 선생은 맑은소리와 성격이 온순하고 예의바르다는 이유로 선뜻 시간 날 때마다 민요를 가르쳐 주었다. 또한 얼마전 돌아가신 박동진 선생(무형문화재 5호)은 소리꾼이기전에 사람다움을 늘 강조해 주면서 물신양면으로 도와주었다. "너무도 크나큰 선생님들을 옆에서 뵙고 그 분들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인생역전의 큰 행운과 은혜를 받았다”는 김순녀 씨는 그리고 몇해의 세월이 흘러 제주도에서 열린 제2회 전국민요경창대회에서 대상인 대통령상을 수상(85년)했다. "저에게 참으로 영광스러운 상이였지요. 세월이 흐른 지금도 늘 잊혀지지않는 故 안비취 선생님과 故 박동진 선생님, 정선아라리 기능보유자이신 김병화 선생님, 김뻑국 선생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해 드린다”고 전했다. 

 

또한 (사)한민족아리랑연합회 김연갑 상임이사, 아리랑학회 기미양 이사, 낳아 길러주신 부모님과 아울러 도움을 주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아리랑이 세계 곳에 울려 퍼지기를 기원하고 앞으로 더욱 더 정진할 것을 다짐하며 많은 질책 보내주길 바란다는 김순녀 씨는 2004년 8월 16일 '삶의 소리 천년의 노래 정선아리랑'(지구레코드 CD8매)을 녹음했으며, 현재 아카데미 정선아리랑 연구회를 운영하고 있다.

이번 공연은 국악신문 초청공연으로 전 좌석 초대공연이다. 문의 : 김순녀(010-6258-02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