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02 (일)
한명희/이미시문화서원 좌장
흔히 우리는 저만큼 어제의 삶을 한층 정겨웠다고 여긴다. 한층 미덥고 끈끈하고 신명났었다고 여긴다. 왜서일까. 단지 지난날에 대한 복고적 향수 때문일까? 분명 그것만이 아닐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우리네 정서의 분신이랄 민요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민요가 그저 대수롭지 않은 노랫가락의 일부였다고? 천만의 말씀이다. 그것은 곧 우리의 가슴이었고, 한국인의 희로애락을 뭉뚱그려 발효시킨 삶의 앙금이요 진액이었다. 민요가 있어 가난은 여유로 환치되고 고난은 달관으로 승화되었으며, 설움도 낙이 되고 비탄도 흥이 되지 않았던가. 그러고 보면 민요야말로 어제의 우리네 감정생활의 축도요 정화요 온갖 사연이 숨어 있는 삶의 퇴적층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소중한 우리 민요가 근래로 오면서 삶의 현장에서 멀어지고 있다. 물론 세상이 다기화되고 생활 양상이 급변한 탓도 있다. 하지만 변화무쌍한 인류 역사 속에서도 민요는 늘 맥을 이어 애창돼 왔다. 그러고 보면 민요가 빛을 바래가는 이유는 딱히 시대의 변천 때문만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문제는 민요에 대한 우리의 관심과 애정이라고 하겠다.
직업적 전문가인 점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여기 유난히 민요에 애정을 쏟고, 남달리 민요의 창달에 열과 성을 쏟고 있는 원로가 있다. 경기민요의 김혜란 명창이 곧 그분이다. 김 명창의 활동을 눈여겨보면, 그는 결코 노래하고 가르치고 공연하는 데 안주하지 않는다. 뜻있는 동료나 후학들과 함께 늘 새로운 것을 모색해 간다.
어쩌면 민요의 현대적 위상과 기능을 십분 꿰뚫고 있음에 틀림없다. 앞서 언급했듯이 시대는 많이 바뀌었다. 민요가 지닌 어제의 장점만을 고집하기에는 세상의 취향도 크게 변했다. 김 명창은 바로 그 점을 절감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어제의 감성, 어제의 관행에만 머무르려 하지 않는다. 어제를 바탕으로 새로움을 지향하려는 지혜를 앞세운다.
그 좋은 예가 경기소리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공연 양식의 모색이다. 김 명창은 수년 전부터 경기소리의 토리를 활용한 새로운 형식의 소리극을 무대에 올려오고 있다. 경기소리의 시대적 변신과 중흥을 겨냥한 속깊은 시도다. 소리극 ‘배따라기’ 공연이 곧 그 예다.
이 작품은 주변의 관심도 컸고, 민요의 상투적인 공연에 참신한 맛을 던져 주기도 했다. 한마디로 이분들의 새로운 시도와 열정이 아름답다. 역경 속에서도 우리 음악의 새 지평을 열어가는 매운 의지가 아름답다. 좋은 작품을 위해 고생하는 대본가, 연출가, 출연자 모든 분의 헌신이 고맙다. 나도 경기소리의 참신한 변화와 창달을 고대하기 때문에.
(본 연재는 이지출판사 출간 '한악계의 별들'에서 발췌하여 게재한다. 이를 허락해주신 출판사와 필자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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