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02 (일)
이규진(편고재 주인)
바보산수라는 말이 있다. 김 기창 화백의 민화 풍 그림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와는 성질이 약간 다르지만 분원산수라는 말도 있다. 분원백자 중 청화로 산수화가 그려진 것을 말하는데 접시나 연적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분원산수는 대개 정형화 되어 일정한 양식을 보인다. 저 멀리 원경으로 산이 보이고 근경의 양쪽으로는 절벽, 그리고 그 협곡을 빠져나간 중경의 강 위에는 배들이 떠있다. 사실 분원이 남한강 가에 자리 잡은 것은 수운을 이용한 교통의 편리성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옛날로 돌아가 마지막 분원이 있던 경기도 광주군 남종면 분원리에서 도자기를 가득 실은 배를 타고 한양을 향한다고 가정해 보자.
한강은 남한강과 북한강이 따로 흐르다 두물머리에서 만나 하나로 합쳐진다. 합쳐진 강은 흘러 분원리 앞을 지나 하남시 검단산과 남양주시 예봉산 사이의 두미강이 된다. 도미강이라고도 불리는 두미강은 가파른 산 사이에 좁은 협곡이 있어 물길이 빨라지는데 이곳이 두미협이며 1973년 팔당댐이 건설된 곳이다. 댐이 건설되기 전에는 상류에서 내려오던 배들이 두미나루에서 하루를 묵게 된다. 이를 위해 검단산 쪽으로 이 나루를 끼고 형성된 것이 바로 배알미 마을이다. 한때는 80여 호의 마을이 뱃사공들을 상대로 번창했었다고 하는데, 댐과 더불어 이제는 옛 추억이 되어 버렸다. 여하튼 물길이 세찬 협곡을 빠져나가면 이제 강물은 순해지고 저 멀리 북한산과 도봉산이 그 위용을 뽐내며 다가온다. 분원산수는 바로 이곳 일대의 풍경을 도자기에 담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근래 분원산수가 그려진 청화백자산수문분접시 한 점을 구했다. 정확히 말하면 지인으로부터 강제로 뺏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강권을 행사해야 할 만큼 한 눈에 반했다고 하면 지나친 과장일까. 우선 이 분접시는 크기가 작다. 지름이 5Cm가 약간 넘다보니 화장용기로도 작은 편에 속한다. 그 작은 접시에 청화로 두 줄의 선을 돌리고 그 안에 분원산수가 빼곡히 그려져 있다. 그런데 일반적인 분원산수와는 약간 다르다. 원경의 산과 중경의 배는 같으나 근경의 협곡이 제대로 나타나 있지를 않다. 좌측 협곡 위의 소나무는 그런대로 이해가 가지만 우측의 대나무인 듯한 것도 분원산수에서는 보지 못하던 양식이다. 그런 점을 감안한다 해도 작은 접시 안에 빼꼭히 그려진 분원산수의 모습은 아름답다. 접시의 테두리가 손상되어 있지만 그 결점마저도 아름다움을 손상시키지는 못하고 있는 느낌이다.
청화백자산수문분접시. 분접시는 분가루를 기름에 섞어 쓰기 위한 일종의 화장용기다. 지금이야 화장품이 발달해 별의별 것이 다 있지만 예전에는 분도 흔치가 않았다. 얼굴색에 맞게 쌀이나 기장 그리고 분꽃 씨를 갈아 가루를 만들고 여기에 소량의 활석가루나 칡가루 또는 황토 등을 첨가한다. 이렇게 만든 가루에 흡착성을 위해 다시 기름에 섞는데 기름은 살구씨 복숭아씨 홍화씨 등에서 추출한 것을 썼다고 한다. 그런데 개화기 이후 상품용으로 만든 분가루에는 납 성분이 든 것이 있어 얼굴을 망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이로 보아 여성들의 아름다움에 대한 행로는 결코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도자기로 만든 화장용기로는 분접시 외에 유병 향합 연지합 분합 분수기 등이 있다. 분접시는 원형이 기본이지만 사각이나 육각형처럼 각이 진 것도 있다. 뚜껑이 없는 분접시는 다른 화장용기와 달리 시중에서도 찾아보기가 쉽지 않은 종류다. 더구나 청화로 산수문이 그려 진 분접시는 더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흔치 않은 청화백자산수문분접시를 보고 있노라면 지금은 잊혀진 분원 인근의 정겨운 풍경과 더불어 이곳을 오가던 뱃사공들의 숨결과 여인네들의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이랄까 진한 갈망이 느껴지고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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