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06 (목)
[류기자의 인터뷰] 충북 영동군은 국악의 3대 악성 중 한 분인 박연 선생의 출생지로서, ‘난계 박연’ 선생의 업적을 기리고, 전통문화 계승과 보급 및 지역문화 발전을 위해 복합 문화 체험 공간을 마련해 다양한 시설과 활동을 운영하고 있다. 이 중 ‘난계국악기제작촌’은 수십 년 외길을 걸어온 악기장들의 국악기가 탄생되는 곳이다.
박성기 명장은 영동군의 엄격한 심사기준(사업체 운영 기간, 기능공 규모, 제작기간 등)을 통과하여 ‘난계국악기제작촌 현악기공방’에 입주를 앞두고 있다. 명인은 가야금을 25현까지 계량하는 등 국악 연주와 창작의 폭을 넓히는데 크게 기여했으며, 이러한 공으로 국가무형문화재 제42호(2008년)로 지정되었다
난계의 고장 영동에서 악기장의 활동은 지역과 악기장 모두에게 상생의 기회를 제공한다. 명장의 활동과 계획을 통해, 국악기의 현주소와 전통문화 계승, 발전을 위한 모색을 해보고자 한다. 인터뷰는 전화 통화로 이루어졌다.
Q. ‘난계국악기제작촌’에는 어떻게 오시게 됐나요?
A. 영동군에서 낸 ‘난계국악기제작촌 입주업체 모집 공고'를 보고 응시해서 서류심사, 면접심사 받고, 여러 절차 거쳐서 입주하게 됐어요.
Q. 거의 40년을 악기 제작에만 몰두하셨습니다. 어떤 어려움이었고, 어떻게 이겨내셨나요?
A. "지금도 4-5시간씩 자요. 토요일, 일요일 없이 계속 연구해요. 남들 하는 것이 아니라 선두역할 하니까, 현재 개량된 악기 90퍼센트를 제가 했으니, 앞으로도 꾸준히 할 생각입니다.
좋은 악기를 만들기 위해 30년 이상 재료를 말려야 합니다. 누구한테 내가 걸어왔던 이 길을 똑같이 가라고 하면 갈 수 있을까? 생각하면,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오늘이 며칠 인지도 모르고 일하기도 했고,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도 많았고, 그러면 시골 논도 팔기도 했고, 더 어려운 사람들 생각하면서,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사명감으로 살아왔어요.”
Q. 국악의 공연환경 등의 변화로 국악기도 함께 변화했고, 선생님의 악기 개량은 국악의 현대화, 대중화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것은 자칫 국악의 정통성과 대립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이에 대한 선생님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A. "전통악기는 전통 그 자체로 보고, 시대에 맞는 새로운 국악이 나오면, 그것을 실현해낼 수 있는 악기가 필요합니다. 연주자와는 서로 필요한 불가분의 관계에요. 60-70년대에도 미묘하게 줄 조이는 방법 등 개량하려는 흔적은 봤습니다, 하지만, 제가 악기 구조 자체를 개량한 것은 처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에 개발한 것이 현악기에 쓰이는 ‘개량줄’이에요. 이전에는 명주실을 썼는데, 고음 낼 때 자꾸 끊어져요. 연구하다 새로운 재질로 만들었죠. 장력이 더 세기 때문에 고음 낼 때 안 끊어져요. 처음에는 연주자들이 외면했어요. 이후에 점점 많은 사람들이 제 악기를 인정해주고 찾았죠.”
Q. ‘난계국악기제작촌’에서 선생님께서 특별히 계획하시는 일이 있으신가요?
A. "악기의 가치를 측정할 수 있는 공신력 있는 체계를 만들려고 합니다. 그러면 국악기 가격이 터무니없이 부풀려지지는 않을 거예요. 지금 국악기 시장의 문제 중에 하나가 악기 가격이 천차만별이에요. 쉽게 얘기해서, 해금이 500-600만원에 실제 거레되는데, 이 중에는 실제 150만원 정도 되어야 하는 것들도 있어요. 그리고 2500만원까지 하는 가야금도 있는데, 이것이 정말 그만큼의 값어치가 있는가 하는 거예요. 결국, 연주자, 대중들이 손해를 보게 되죠. 그러면, 국악은 우리 생활에서 멀어지는 거예요. 현재 전통악기 가격 거품이 많습니다. 가격을 평준화 할 수 있는 체제가 없어요. 그래서 이것을 평준화할 수 있는 시스템을 다른 전문가분과 함께 만들었습니다.”
Q. 좀 더 자세히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A. "약 5년 전부터 공동 연구해서 이제 완성했습니다. 영동(난계국악기제작촌)에서 시작할 계획입니다. 음향기기 표준화 시스템이에요. 전자 시스템을 이용해서 악기의 음량, 재료 등을 표준화된 기준으로 측정하고, 각 등급이 나옵니다. 그러면, 악기의 가격이 책정될 수 있는 어느 정도 공신력 있는 기준이 마련되는 거예요.
그러면, 지금처럼 터무니없는 가격이 나오지 못할 겁니다. 100만원 가치 악기는 100만원에, 500만원 짜리 악기는 500만원에 팔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난 기본적으로 악기를 더 많은 사람들이 접할 수 있게 하고 싶어요. 그런데, 악기가 터무니없이 비싸버리면, 사람들이 못 사죠. 악기 만드는 사람도 먹고 살 수 있으면서, 일반 사람들도 전통악기를 쉽게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취지에요.
아마 그 동안 저를 믿어준 많은 국악인들이 참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Q. 그 외에 계획하고 계신 것이 있으실까요?
A. "종묘제례악을 미니어처로 만들어서 초등학교 같은 곳에 보급(판매)하려고 해요. 아이들은 우리 국악기 생긴 것도, 소리도 익숙하지 않잖아요. 예를 들면, ‘편종’ 버튼 누르면, ‘편종’ 주변이 반짝거리면서 편종 소리가 나와요. 이렇게 하면, 아이들도 우리 악기에 대해 좀 알게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에 만들게 됐어요.”
Q. 악기 제작에서 보람을 느낄 때는 어떤 때인가요? 기억에 남는 일이 있으시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A. "가장 큰 보람은 열심히 연구해서 좋은 악기가 탄생했을 때, 그 때 보람이 가장 크죠. 국립국악관현악단 출범하고(1995년), 박범훈 단장님께서 신곡을 만들었을 때, 내가 만든 악기로 그 큰 무대에서 연주했을 때도 기억에 남아요. 그리고 일하면서 음대 교수님들 많이 만나는데, 그 인연으로 몇 개 대학에 장학금도 대고, 악기 기증도 하고 그랬어요. 돈 없어서 우리 음악 못 배우고, 악기 못 사는 일 없어야 하니까요.
Q. 악기 제작자들이 갖춰야 할 덕목은 무엇인가요?
A. "자신만의 고집 있어야 해요. 재료에 공들이고, 악기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하려는 노력. 그리고 좋은 악기를 제대로 만들어서 합리적인 가격을 책정할 수 있는 양심도 있어야 합니다. 타고난 예술성도 필요해요. 손재주나 음감 같은 거예요.”
Q. 악기장이라는 직업도 쉽지 않은 만큼 보람도 클 것 같습니다. 젊은 악기 제작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당부를 말씀해주시길 바랍니다.
A. "돈을 보고 하면 안 되고, 자신이 연구해서 좋은 악기를 만들었을 때 그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세상에 저보다 더 똑똑한 사람들 많아도 그 사람들은 악기 제작은 안했잖아요. 남들 못 한 것을 해냈다는 자부심 그게 가장 커요.”
Q. 악기장으로서 궁극적인 목표, 소망이 있으시다면 무엇인지요.
A. "지금까지 전국에 국악기 제작하는 곳이 많이 있어요. 이 중에, 일부는 자격이 안 되는 악기들을 높은 가격에 팔아왔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는 그것을 정리하고 싶어요. 가격을 현실화하고, 거품 없는 제 가격으로 품질 좋은 악기들이 더 많아지기를 바래요.
인터뷰 내내 박성기 명인은 악기시장에서 기준 없이 책정되는 가격의 문제를 토로했고, 그 정상화를 이끌고 싶다는 뜻을 강하게 밝혔다. 지난 약 40년 동안, 악기연구를 그렇게 해왔듯이, 이 문제의 해결 역시, 옳은 길이고, 자신의 길이라 생각하고 쉼 없이 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외에도 그가 실천하고 있는 것들은 우리 국악의 발전과 무관하지 않아 보였다. 난계 박연 선생의 고장, 충북 영동군 ‘난계국악기제작촌 현악기공방’에서 그의 활동이 대중과 국악인들, 나아가 국악발전에 도움이 되는 행보이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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