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01 (토)
임시정부에서는 1919년 4월 10일 오전 10시, 첫 임시의정원(臨時議政院) 회의에서 8개항을 논의하였다. 이 중 제8항은 국가상징 중 국호에 대한 논의였다. 이 때 오른 안(案)은 세 가지로 ‘고려공화국’·‘조선공화국’·‘대한’이었다. 이 중에 이영근 의원이 제청한 ‘대한’을 국호로 결정하였다.
여운형 의원이 "대한이란 우리나라 역사상 오래 사용된 말이 아니고 조선 말기에 잠깐 쓰다가 망한 이름이기 때문에 다시 부활시킬 필요가 없다”는 반대에도 제청자들은 오히려"대한으로 망했으니 대한으로 흥하자는 의미에서라도 대한으로 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한 결과다. 결국 당시 중국이 신해혁명 이후 사용한 ‘중화민국’의 ‘민국’을 따서 ‘대한’에 붙여 ‘대한민국’으로 하게 된 것이다.
다음 국기는 비교적 늦은 1943년 6월 29일 국무회의에서 ‘국기양식 일치안(國旗樣式 一致案)’을 확정하여 공포한 바 있다. "국기에 대하야 종래에 설명이 다단(多端)하여 각언 기설(各言 其說)할 뿐 아니라 제도가 일치하지 못하야····제법(製法)과 척도(尺度)와 상징(象徵)···”을 규정하여 공포한다고 한 것이다. 그동안 다양한 논란 있어 뒤늦게 양식의 일치를 정해 발표한 것임을 알 수 있다.(이에 대해서는 여운형이 해방 후 북한정권 수립 과정에서 주역(周易) 등을 들어 태극기를 부인한 사실을 참고할 수 있다.)
그런데 국가(國歌) 또는 애국가에 대해서는 국호나 국기와 같이 공포는 물론 규정에 대한 어떤 언급도 없었다. 임시정부와 광복군에서 어떤 경우든 현 애국가 외에 다른 노래(애국가)를 국가 기능으로 사용한 적이 없었는데도 그렇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나름의 사정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비교적 이른 시기에 수정(修訂) 논의가 있었던 사실에서 확인이 된다.
애국가 ‘수정’, 이는 곡조가 아닌 가사에 대한 문제로, 임시정부의 인식을 학인 시켜준다. 왜냐하면 국호와 국기의 논의와는 전혀 다른 결과이기 때문이다. 우선 초기 상해 임시정부에서의 애국가 상황을 살펴보기로 한다.
임시정부 공식행사에서는 반드시 개회 선언 후 첫 순서로 애국가 4절 또는 1, 4절(首末節)을 부르고, 국기에 대한 ‘최경례’를 하였다. ‘임시의정원회의록’ 제8호에 의하면 개원식에서 "총의장의 사회로 개식을 선언하고 일동이 기립하야 애국가를 창한 후 국기를 향하야 최경례”를 행하였다. 구체적인 모습도 있다. 임시의정원 제34차 회의 취재기의 일부로 <우리통역> 제1호에 수록된 것이다.
"전체 의원들이 극도로 긴장하고 엄숙한 정신으로 애국가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곡조가 합(合)하지 않아서 3부 합창이 되고 말았다. 또 어떤 분은 첫 머리말을 떼고는 가사를 몰라 목소리를 슬그머니 철회(撤回)하고 만다. 제2절에 들어가자 각자 각창으로 어느 노선생님 한 분이 테너 식으로 고성(高聲)을 치니 창가 진행 중에 그만 모두가 웃고 말았다.”
애국가 제창이 임시정부 의식(儀式)의 첫 순서로 중요한 위치였다. 그런데 여기에서의 기능이 국가(國歌)이지만 그 명칭은 ‘애국가’이다. 이는 ‘태극기’란 고유명칭 대신 국가상징인 ‘국기(國旗)’로 표기한 사실과는 다른 것이다. 이런 차이 역시 살피게 될 수정 제안 배경과 관계가 있다.
애국가 논의는 비교적 이른 시점에 수정안(修訂案)이 제출되어 부결 처리 하였다. 1920년 3월 의정원 회의에 수정안이 상정되었다. 그런데 현재로서는 당시 안의 구체적인 내용과 제안자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 전후 맥락으로 본다면 상정안이 수록된 앞선 일자의 ‘임시정부공보’가 발굴되지 않은 결과일 수 있지만, 안건 자체가 상정되었으나 부결된 것만은 분명하다. ‘임시정부공보’ 1920년 3월 18일자 ‘애국가 수정안’ 기사는 이렇다.
"김춘숙 외 3 씨가 제출한 <애국가 수정안>에 대하여 오윤환 씨는 ‘애국가’는 국가가 아니다. 바로 국가를 제정할 필요가 있다면 모르거니와 ‘애국가’는 수정이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 외 2~3 씨의 토론이 있어 제안자에게 퇴각하기로 가결되었다.”
이 기사를 통해 분명히 확인된다. 임시정부는 애국가를 그야말로 임시로 국가(國歌)로 대용(代用)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국가를 제정하는 논의가 아닌 이상 그 내용이 어떠하든 수정 자체를 필요로 하지 않다는 단호함을 표한 것이다. 이는 결국 근본적인 문제가 있어 새 국가를 제정하려 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가사의 일부를 수정하려 했다는 전제로 하여 다음의 몇 가지 사실을 시사받을 수 있다. 다음 네 가지이다.
하나는 가사의 일부 자구(字句) 정도를 수정 하자는 측과 전면적으로 애국가 자체에 흠결이 있다며 개정하려는 측이 있었다는 점이다.
둘은 이 중 전자는 안창호가 임시정부 요인으로 근무하고 있는 상황에서 가사를 수정하자고 한 것이니 작사자가 안창호와는 무관하다는 점을 알 수 있게 한다. 만일 안창호설이 있었다면 이런 안이 나올 수도 없었다. 만약 있었다면 직접 요청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셋은 후자의 경우, 애국가 자체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인식한 것으로 보아 작사자 문제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애국가 작사자가 안창호가 아님은 분명한 것이다.
넷은 작사자 문제라면 임시정부에 참여하지 않고, 다른 길을 가는 윤치호를 인식하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1897년 발표된 동일후렴 ‘무궁화가’로 부터의 역사성과 3.1 운동 기간 민중들이 선택한 태극기와 독립선언서와 애국가의 정통성을 부정할 수는 없어 ‘윤치호 작사’ 사실을 들어낼 필요가 없었다. 또한 이 시기 작사, 작곡에 의한 여력이 없었다는 점도 염두에 둔 결과이다.
이상에서 정리된 사항은 해방 후 안창호 작사설을 부인한 자료들과 주요 발언들에서 재확인이 된다. 즉, 1945년 발행 ‘대한국애국가 악보’에 반영된 김구 선생의 인식과 안창호 선생 측근으로 대성학교 교사를 지낸 채필근(蔡弼近, 1885~1973)목사와 해방후 흥사단 재건에 기여한 주요한(朱耀翰, 1900~1979)선생의 입장을 들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편에 제시하여 강화하기로 한다.
결론적으로, 임시정부의 애국가 작사자에 대한 입장은 이렇게 단호하게 정리한다.
"임시정부는 애국가 작사자로 안창호 선생을 염두에 준 바가 없다. 그리고 윤치호가 작사자임을 알면서도 드러내 거론하지도 않았고, 다른 길을 걷는다고 매도하지도 않았다. 적어도 임시정부 요인들은 이 기조를 견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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