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01 (토)
이윤선(문화재청 전문위원)
잃어버린 도깨비, 항간에 그런 얘기들을 많이 한다. 도깨비를 몰아낸 이들은 누구인가? 어두컴컴한 밤에만 출몰하던 도깨비들이 밤을 낮처럼 쓰는 전깃불에 밀려 산으로 바다로 도망 다니다 종내는 사라지고 말았다. 탄소문명이 도시 밖으로 몰아낸 것들이 어찌 도깨비뿐이겠는가.
밤이면 밤마다 마을이면 마을마다 도깨비들과 함께 살았던 우리들에게 이 상실의 무게는 얼마큼일까? 밤도 없고 낮도 없으니 만물이 소생하는 아침도 없고 만물이 죽는 저녁도 없다. 시작과 끝이라는 시간의 경계가 모호해지니 삶과 죽음의 경계까지 모호해지는 것 같다. 여러 나라들 중 자살률 일등한지가 십 수 년이 넘었고 고독사율마저 그 상위를 점하려 한다. 잠들지 못하는 도시는 거대한 공룡처럼 웅크리고 앉아 도대체 도깨비들의 출몰 따위에는 관심조차 없다.
이 문명의 공룡들은 들과 늪을 메우고 야산과 숲을 깎아 빌딩들을 세우고 길을 냈다. 디지털문명을 앞세워 광선과 광음으로 시간과 공간을 단축하니 마을의 안과 밖이 또한 사라져 버렸다. 이 공룡이 야금야금 먹어치우는 끝이 어딘지 흐리멍덩한 내가 알 길이 없다. 선과 악을 명료하게 분별한다는 이들만이 도심을 배회한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나 같은 땔나무꾼들은 어디 낄 자리가 없다. 나는 이 문명의 끝이 두렵다. 단지 소망할 뿐이다. 그저 도깨비처럼 다소 멍청하고 혹은 익살맞고 때로는 엉뚱하게 서있고 싶은 소망, 흑도 아니고 백도 아닌 그저 마을과 숲, 이것과 저것의 경계에 서 있는 먹빛의 존재 말이다.
왕도깨비, 그 많던 도깨비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문자 없던 구술시대에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도깨비 이야기가 정보전달의 전부였다. 문자 있던 시대에도 문자로부터 소외된 민중들은 입에서 입으로만 도깨비를 이야기했다. 어느 시기에는 불교를 중심으로 한 조각과 도상과 부조들의 형상이 도깨비의 일부 기능을 대신했다. 하지만 입으로 말하고 귀로 들어서 접하는 도깨비가 우리 문화사의 대부분을 차지했다는 점, 큰 이견을 내기 어렵다. 문자가 생기고 문자를 독점하는 지배세력들이 각종 도상과 문양으로 도깨비를 그려내기 시작했다. 더러는 이데올로기를 얹고 더러는 지배집단의 욕망들을 뒤집어씌워 사람살이에 대한 해석을 가하거나 올가미를 씌워 구속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을숲과 늪과 도랑과 둠벙들, 바위와 돌과 나무와 더러의 인공물들에 투사했던 도깨비에 대한 애니미즘적 관념들이 쉽게 바꾸어진 것은 아니었다.
무랴야마지준이 기록한 '조선의 귀신'이나 초기 민속학자들의 연구를 보면 도깨비라는 맥락으로 모을 수 있는 이름들이 수백 개, 아니지 천여 개를 웃돈다. 모두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청각 중심의 도깨비들이었다. 상상하는 대로 꿈꾸는 대로 도깨비들이 되었거나 엉뚱한 장소에서 탄생했던 존재들이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일본의 오니가 막중한 영향을 끼쳤다. 불교적으로 도덕적 징치나 공간 경계의 문지기를 맡았던 관념들이자 형상들이었지 않나.
사실은 대부분 형상 없던 도깨비들이 방망이를 들고 나타나거나 도깨비감투를 쓰고 나타나기도 하고 큰 혹을 달고 나타나기도 했다. 머리에 뿔이 두 개 달렸느니 하나 달렸느니 다투기도 하고 외다리 독각귀였던 도깨비들이 멀쩡한 두 다리로 달리기를 하는 등 이미지를 강조하는 방면으로 크게 변화되었다. 한국 민화의 중시조라는 조자용은 귀면와에서 장승까지 유사 형상들을 모두 포섭해버렸다. 일본의 오니에 대해 한국의 이미지가 강조되고 여성적인 귀신에 대해 남성성으로서의 도깨비가 강조되며 민족이나 나라가 강조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붙인 이름이 '왕도깨비'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청각 중심의 도깨비 이미저리가 시각 중심으로 급변하게 되는 시대를 마치 한 계절의 바람처럼 그렇게 지나왔다.
경계의 스토리텔러, 호모나랜스들을 기다리며
한동안 나는 의심했다. 그 많던 도깨비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던 것일까? 이 글을 쓰면서 다시 확인했다. 청각의 시대, 시각의 시대를 거쳐 이제 스마트폰 시대로 접어들면서 지구별 너머 어딘가, 아니면 마을 숲 바위틈 어딘가, 아니면 지금은 없어져버린 마을 둠벙과 늪과 개펄 어딘가에서 발신해오는 도깨비들의 수런거림을. 거대한 산악의 신들과 장대한 바다의 신격들 틈바구니에서 이것도 저것도 아닌 전이지대에 출몰했던 마치 우리네 민중 같은 도깨비들 말이다. 거기에는 도깨비들에게 투사했던 우리들의 추억과 회상과 욕망들, 누군가에게 전가했던 책임과 의무들, 아! 무엇보다 지극하고 그윽한 사랑들이 겹겹이 포개져있다. 누구에 대한 사랑인지는 보고 듣는 이들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아니 전혀 엉뚱한 결론을 만들어내는 녀석이 도깨비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웅장함과 비장함에 가려 존재감을 잃어버렸던 하찮은 것들에 주목할 뿐이다. 쓰이지 않은 행간과 그려지지 않은 여백을 읽는 이유라고나 할까. 이제 보이는가. 저기 저만치 북장구 들쳐 매고 낄낄대며 걸어오고 있는 이들. 찢어진 청바지에 히피복색을 두른 저 도깨비들. 탄소문명의 세례를 듬뿍 받은 도심에서 밀려나 개펄과 숲과 늪에서 당당하게 걸어 나오는 저들 말이다. 이들은 남자들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여자들이고, 불과 기둥이라기보다는 물과 하찮은 나무 조각들이다. 서양이라기보다는 동양이고 중국이나 일본이라기보다는 한국이며 도심보다는 시골마을이고 가진자들 보다는 못가진자들 아, 무엇보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흐리멍덩한 먹빛의 사람들이다. 나는 기다린다. 끊임없이 스토리텔링하는 호모나랜스(이야기하는 사람)들을.
폰깨비, 스마트폰 안으로 들어간 도깨비
더 획기적인 변화는 새천년을 시작하던 벽두 월드컵의 붉은악마와 올림픽과 촛불집회 등을 겪으며 우후죽순 나타났던 도깨비들이다. 그 많던 이미지들이 치우라는 캐릭터에 집중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민족주의니, 국수주의니 해명한다고 해서 도깨비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바뀌는 것이 아니다. 치우가 도깨비가 아니라고 외친들 도도한 영상시대의 이미지 중심 시선들이 변하는 것도 아니다.
특히 스마트폰 시대를 맞이해서는 앞서거니 뒷 서거니 도깨비들의 지형이 변하기 시작했다. 다시 청각의 시대, 혹은 다중시각의 시대를 맞이하게 된 것일까? 이 또한 지속적인 관찰과 분석이 필요해 보인다. 그래서 나는 스마트폰을 '폰깨비'라 부르고자 한다. 밖으로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고 낄낄대거나 겉으로는 들리지도 않는 소리를 들으며 조잘거리는 것, 이것이 전통적인 도깨비들의 특징 말고 무엇이란 말인가.
이 도깨비들은 그동안 얼마나 웅얼거리거나 조잘거리고 싶었을까? 말하고 싶어서 몸이 달아있는, 말하지 않으면 존재의 의미가 없어지는 호모나랜스들임에 틀림없다. 몸과 분리된 혼들이 밤마다 우리를 따라다니는 공포를 이겨내며, 혼잣말하는 미친 사람들을 이웃으로 두고 살던 그 풍경들이 제4차산업시대라는 세기의 벽두에 다시 소환되고 있는 셈이다. 폰깨비, 이 용어는 근자에 트렌드가 된 '인싸용어(줄임말)'이기도 해서, 가상세계의 캐릭터들을 호명하는 방식으로 무한한 확장성을 가지게 될지 모른다. 우리가 전깃불을 들여와 몰아냈던 도깨비들이 사뭇 다른 형국으로 소환되는, 이것은 분명히 또 하나의 도깨비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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