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01 (토)
추억은 모락모락 피어오르건만
이규진(편고재 주인)
사랑하는 사람도 갖지 말라. 미워하는 사람도 갖지 말라. 사랑하는 사람은 못 만나서 괴롭고 미워하는 사람은 만나서 괴로우니라. <법구경>에 나오는 말이다. 종교적 교훈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천번 만번 지당한 말씀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사랑도 미움도 없는 세상은 태평무사할 지는 몰라도 무슨 재미가 있으랴. 인간의 본성인 희로애락에 돌덩이를 잔뜩 눌러놓고 살아야 한다면 그 것처럼 가슴 답답하고 무미건조한 삶이 또 어디에 있으랴. 나는 그러한 삶은 아무리 절대적인 진리라 해도 정중히 거절을 하고 싶다. 내일 뼈저린 후회를 하게 될지라도 기회만 있다면 나는 오늘 사랑에 온몸을 불살라 보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그 것이 살아 있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백 살이 넘었지만 지금도 활동이 왕성한 김형석 교수님이 아흔 여덟인가 하실 때였다. 당시만 해도 오랜 세월 간병을 하던 부인이 세상을 뜬지도 10여년이 넘었다고 했던가. 그런 김교수님이 방송 인터뷰 중에 이런 말씀을 하셨다. 2년 후인 100세에 애인을 구한다는 광고를 하겠노라고. 물론 농담 삼아 하신 말씀이겠지만 얼마나 멋있는 생각인가. 이런 것이 삶이요 멋이 아니겠는가. 도편을 모아서 책을 모아서 나중에 어쩔 것이냐고 묻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솔직히 무슨 대책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냥 좋아서 무작정 사랑을 하듯이 좋아서 하는 짓일 뿐이다.
사실 인생은 의미 차제가 불투명한 것이다. 무엇 때문에 사는 것인지 오리무중인 것이다. 해답이 있다면 그 많은 종교가 그 많은 철학자들이 애당초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남에게 피해를 안 주는 범위 내에서 홀로 즐거울 수 있다면 그 것이 바람직한 삶인지도 모른다. 까까머리 소년 시절부터 현대문학을, 말하자면 시집 및 소설과 기타 문학관련 책들을 알뜰히 모아 목록까지 펴낸 가까운 후배가 있다. 그 후배가 어느 날 그동안 모은 장서를 아들에게 물려주기로 했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잘했다고 격려를 해주었다. 내가 격려를 해준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물론 양장본 고서가 인기가 많은 요즈음 그 많은 장서를 몽땅 어디로 넘긴다던가 하면 큰돈을 만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후의 인생은 얼마나 허무하랴.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부터 고서점을 드나들며 모았던 그 많은 사연과 추억들을 어디론가 떠나보내고 나면 그 마음이 얼마나 허전할 것인가. 그 책들이 곁에 있어서 내게 주는 자존감과 희열들을 어찌 금전으로 바꿀 수 있다는 말인가. 사후에 그 장서가 어떻게 될까 하는 걱정은 나중의 일이요 살아생전 즐거울 수가 있다면 그 것도 보람 있고 의미 있는 삶이 아니겠는가. 나는 그래서 잘했다고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나 또한 돈도 되지 않는 도편에 집착하는 것은 무슨 이윤을 바라서가 아니다. 그냥 좋아서 하는 짓일 뿐이다. 그 짓을 위해 젊은 시절 꽤 많이 전국의 가마터 답사를 다녔다. 유천리 청자 가마터와 우동리 분청 가마터가 있는 부안은 물론이거니와 그 옆 동네인 고창도 많이 찾아보았던 것 같다. 고창에서는 용계리가 유명한데 이 곳에는 같은 골짜기에 청자와 분청 가마터가 인접해 있다. 위쪽이 분청 가마터인데 골프장이 생기면서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지 오래라고 하던가. 아래쪽에 위치한 것이 청자 가마터인데 아산댐 상류에서 2Km 정도 올라간 곳에 위치해 있다. 82년과 83년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에서 발굴조사를 한 곳이다. 해무리굽완을 비롯해 발 화형접시 유병 반구병 향로 장고 호 등과 다량의 갑발이 수습 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중요한 것은 태평 임술2년(1022)명의 기와편이 수습 되어 가마 운영시기를 11세기 초반 전후로 추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벽돌도 발견이 되어 전축요로 시작되어 토축요로 끝난 것으로 보이는 점도 지역적으로 볼 때 주목할만한 점이라고 할 수 있다.
뒤로는 산을 등진 채 갑발편들이 얕은 구릉을 이루고 있고 앞으로는 뽕나무 밭들이 전개되어 있던 것이 내가 용계리 청자요지를 처음 찾아보았을 때의 모습이자 풍경이다. 움막 같은 것도 보였는데 마을과 거리가 상당히 떨어져 있다 보니 뽕잎이 필요한 누에 철에 사람들이 일시 머무는 장소로 보였다. 가마터는 수풀과 어울려 갑발이 많다보니 도편은 잘 보이지 않았는데 그런 중에 해무리굽완편과 청자잔탁편을 볼 수 있었다. 당시 느낌으로는 도편들이 다른 곳들보다도 유별나게 녹색이 짙다는 생각이었다. 청자잔탁편 또한 예외는 아니어서 담녹색의 유약이 골고루 입혀져 있는데 반파가 되었지만 부분부분이 살아 있어 전체적인 모습을 유추하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다. 높은 굽다리에 전이 달려 있고 그 위에 잔을 받치는 잔대를 높여 단을 이루고 있는데 잔대 옆에는 음각으로 연판문을 새기고 있다. 굽에는 내화토 받침을 한 흔적이 보이며 담녹색으로 고르게 시유된 유색은 빙렬이 골고루 퍼져 있다. 청자잔탁편은 초기 것으로 전성기 강진이나 부안의 청자잔탁처럼 깔끔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맛은 없어도 수더분한 느낌이 오히려 정겨움을 느끼게 하는 면이 있다.
과거 용계리를 찾게 되면 두 곳이 지근거리에 있다 보니 분청과 청자 가마터를 함께 돌아보고는 했었다. 찾는 길도 골짜기 아래인 아산댐 쪽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선운사를 향하다 좌측의 고개를 넘어 분청 가마터가 먼저인 곳으로 진입을 하고는 했었다. 분청과 청자 가마터를 오르내리는 길은 인적 하나 없는 적막하고 고즈넉한 곳이었는데 지금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 분청 가마터에는 골프장이 들어섰다고 하니 그 고즈넉하던 골짜기에도 지금은 고급 자가용들만 요란을 떨며 오가는 곳으로 떠들썩할까. 세월의 저 쪽 끝에서 추억은 모락모락 피어오르건만 청자잔탁편 또한 이제는 가슴 깊이 고이 접어 두어야만 할 때가 된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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