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03 (월)
같으면서도 다르고 다르면서도 같은
이규진(편고재 주인)
도자기에서는 시대의 간극을 뛰어넘어 같은 양식을 보이는 경우가 있어 흥미로운 바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해무리굽이다. 초기 청자를 대표하는 것 중의 하나가 청자해무리굽완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이처럼 굽의 접지면이 넓은 해무리굽이 조선 백자에서도 보이고 있으니 주목을 요한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문제는 청자해무리굽완이 10C 것인데 반해 백자 해무리굽은 17C 관요에서만 보이고 있으니 무려 7배여 년의 간극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오랜 세월을 뛰어넘어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을 이치가 없고 보면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이채롭다 못해 흥미롭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해무리굽처럼 시대를 뛰어넘어 확실하게 같은 양식을 보이는 것이라고 단언 할 수는 없어도 비슷해 보이는 것은 또 있다. 이런 점에서 내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분청에서 보이는 귀얄과 백자에서 보이는 청채다. 두 종류가 재료는 달라도 붓을 이용 칠을 해 농담의 효과를 살리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각각 16C와 19C로 3백여 년의 시대적 차이를 감안한다면 신기하면서도 흥미로운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백자청채음각초화문향로편은 굽과 몸체 일부만 남아 있어 아쉽지만 현재 알려져 있는 기물들을 통해 유추해 볼 때 향로가 분명해 보인다. 굽은 접지면이 밖으로 말린 형태로 마무리를 하고 있으며 능화형의 풍혈을 배치하고 있다. 몸체에는 음각으로 초화문을 장식하고 있으며 전체를 청채로 칠하고 있다. 붓칠을 한 청채는 농담이 그리 뚜렷하지는 않으나 음각의 초화문에는 색깔이 고여 문양은 비교적 뚜렸한 편이다. 이 도편을 기존에 알려진 유물과 비교를 해 유추해 보면 몸체 좌우에는 손잡이가 달려 있고 주구는 안쪽으로 턱이 지게 말려 있어 뚜껑을 덮을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구조라고 할 수 있다. 향로로서는 상당히 큰 기물에 속하는 것도 주목되는 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9C 분원리 산인 이 백자청채음각초화문향로편은 언제 인연을 맺게 된 것인지는 기억에 없다. 다만 분원초등학교 좌측 민가 뒤편 골짜기에 그리 크지 않은 밭이 있는데 오래 전 이곳에서 만난 것이 아닐까 생각되는데 확실한 것은 아니다. 뭄체 안쪽은 노태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으며 굽 안은 백자 유약이 곱게 입혀져 있는 것도 눈길을 끈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청채가 좀더 붓자국이 선명해 농담의 효과가 강조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어찌 원한다고 될 수 있는 일이랴. 어찌 되었든 백자청채음각초화문향로편을 보면서 분청 귀얄과 백자 청채가 주는 같으면서도 다르고 다르면서도 같은 양식에 주목해 보는 것도 흥미로운 바가 아주 없지는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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