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04 (화)
박대헌 고서점 호산방 주인, 완주 책박물관장
에누리 없는 고서점
‘엿장수 마음대로’란 말이 있다. 엿장수가 엿을 늘이듯 무슨 일을 제 마음대로 이랬다저랬다 하는 것을 못마땅한 투로 이르는 것으로, 고서점 주인에게 딱 어울리는 말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고서 가격은 고서점 주인 마음대로란 말인가. 사실 그렇다. 고서점 주인에게는 자기 마음대로 고서 가격을 정할 수 있는 특권이 있다.
그러다 보니 수요자인 수집가가 납득할 수 없는 가격을 제시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처럼 사려는 사람과 팔려는 사람의 평가 기준에 많은 차이가 있다면 거래가 이루어질 수 없다. 고서점 주인이 아무리 합당하다고 생각해 제시한 값이라도 그 책을 사려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거래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처럼 거래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 고서가 있다면 사람들은 그 책의 가격이 비싸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언젠가 그 책이 누군가에게 팔린다면 그 순간 이것은 합당한 가격이 되는 것이다. 결국 고서는 사고파는 값이 정가다.
호산방에서는 고서의 가격을 정할 때 몇 가지 요인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책정한다. 그 요인이란 그 책이 갖고 있는 희귀성·효용성·시장성 등이다. 우선, 희귀성이란 자료의 희귀한 정도를 말하는데 이것은 순전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한 35년 전쯤의 일이다. 하루는 어떤 고서점 주인이 내게 아주 귀한 책을 보여주겠다며 책 한 권을 내밀었다.
"이십 년 넘게 고서점을 했지만, 이런 책은 처음 봅니다.”
주인의 이런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책에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얼마냐고 물었다. 순간 주인은 조금 난감해 하는 눈치다. 내가 가격을 너무 성급하게 물은 것이다. 그는 내가 이 책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분명 관심을 보일 것이라는 확신에 차 있었다. 그런데 내가 책을 펼쳐 보지도 않고 대뜸 가격부터 물었으니 맥이 빠진 것이다.
주인은 조금 멈칫하더니, 아주 귀한 책이라 ○○원은 받아야겠다고 한다. 내가 즉시 사겠다고 하자 주인은 도리어 얼떨떨한 표정으로, 이 책을 아느냐고 물었다. 나는 대답 대신 그냥 웃어 보이기만 했다.
서점 주인이 내놓은 책은 1898년 영국에서 발행된 비숍(I. B. Bishop, 1831-1904)의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Korea and Her Neighbours)』이었다. 비숍은 영국의 여성 작가로, 1894년부터 1897년 사이에 조선을 네 차례나 여행했다. 남장을 하고 나귀를 타고 다니며 여행할 정도로 조선에 대한 호기심과 애정을 갖고 있었다. 이 책은 그때의 여행기로, 당시 전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던 베스트셀러다. 지금은 많이 알려지고 번역본도 나왔지만, 35년 전쯤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볼 수 없었던 매우 귀한 책이었다. 그때 나는 이미 이 책을 몇 권 소장하고 있었기에 그 가치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책을 보지 않고도 살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은 모두 두 권으로 되어 있는데, 장정이 매우 인상적이다. 푸른색 천 바탕에 영문 제목과 저자명을 금박으로 처리하고, 붉은색과 검은색의 태극문양을 압인했으며, 그 옆에 다시 붉은색 네모 바탕에 ‘朝鮮’이란 한자 제목을 금박으로 디자인했다. 그런데 한자 제목인 ‘朝鮮’의 ‘鮮’자가 ‘’으로 뒤집혀 인쇄되었다. 이는 아마 외국인이 편집하는 과정에서 한자를 잘 몰라 글씨가 뒤집힌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고 디자인 차원에서 일부러 뒤집어 놓았다면 이는 대단한 안목이라 할 수 있다.(* 사진 78)
나는 고서를 살 때 여태껏 내 입으로 깎아 달라고 말해 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흥정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실은 눈에 보이지 않는 흥정을 하고 있었다. 나는 평소 서점 주인에게 가격만 적당하다면 한 푼도 깎지 않고 책을 살 터이니 꼭 받을 가격만 말하라는 암시를 주어 왔다. 그래서 조금 비싼 듯해도 두말 않고 사기도 한다.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싸다고 생각되면 사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렇게 몇 번 반복하면 주인은 긴장하게 마련이다. 설령 눈앞의 책은 포기한다 해도 다음 것들에 대한 흥정을 미리부터 해 놓는 식이다. 이보다 더 효과적인 흥정이 어디 있겠는가.
내가 주인에게 설명할 틈을 주지 않고, 또 책을 살펴보지도 않고 사겠다고 한 것은 주인과의 기싸움이다. 조금 비싸게 사는 것도 기싸움에서 이기는 한 방편이고, 이것이 결국은 싸게 사는 길이다. 위의 예에서처럼 고서의 희귀한 정도가 가격을 결정하는 데 기본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도 어디까지나 서점 주인의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다음으로 효용성이란 책의 활용성을 고려한 것으로, 고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부가가치를 말한다. 이러한 가치 또한 책에 따라, 이용자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정가의 수배 내지 수백 배의 부가가치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이에 대한 평가의 일부도 결국은 고서 가격에 포함되어야 마땅하다.
지금은 고인이 된, 수필가 박연구(朴演求) 선생이 호산방에서 이태준(李泰俊)의 『무서록(無序錄)』을 사 간 적이 있다.(* 사진 79) 그는 이때의 사연을 『책과 인생』 창간호(1992년 3월)에 「쌀 한 가마니 값과 맞바꾼 수필의 정수」라는 글로 발표했다. 그는 이 수필에서, 수필의 정수로서 김용준(金瑢俊)의 『근원수필(近園隨筆)』과 더불어 쌍벽을 이루는 『무서록』을, 망설임 끝에 쌀 한 가마니 값으로 구입한 가난한 문사(文士)의 호사를 고백했다.
박 선생이 처음부터 이런 수필을 쓸 생각에 『무서록』을 사 간 것은 아닐 것이다. 책을 가까이 두다 보니까 글의 소재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 그 후 『무서록』은 범우사에서 문고본으로 출판되기도 했다. 선생이 원고료나 인세를 얼마나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잘하면 이 책값보다 훨씬 더 받았을지도 모른다. 안 받았으면 또 어떠한가. 고서란 이렇게 활용하는 것이다.
한편 박 선생이 고백한 대로, 가난한 문사의 처지에서 이 책의 당시 가격 10만 원은 분명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그럼 만약 이 책의 가격이 2~3만 원 정도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랬다면 이 책이 박 선생에게까지 차례가 갔을까. 아마 박 선생과 만나기 전에 벌써 다른 사람에게 팔려 갔을 것이다. 그래서 고서는 적당히 비싼 것이 좋을 수도 있다. 꼭 필요한 사람을 기다려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끝으로 시장성이란 수집가의 선호도에 따른 시장 논리를 말함이다. 어떤 특정 분야의 책을 찾는 수집가가 많으면 자연 그 분야의 책값은 오르게 마련이다. 또는 앞으로 누가 이 책을 찾을 것을 예측하여 기다리는 경우도 있다. 이 기간은 짧게는 1~2년, 길게는 10~20년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이 외에도 고서 가격을 결정하는 데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을 수 있다. 남들에게는 하찮아 보이는 책이라도 애타게 찾아 헤매는 사람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고서점 주인이 이것을 예견하고 준비해 놓았다면 수집가는 그에게 고마워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수집가가 이것을 모두 알아차리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설령 알아차린다 한들 주인의 손에 들어간 이상 어쩔 도리가 없다. 그래서 고서 가격은 고서점 주인 마음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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