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01 (토)
[함께 하는 기사] 유명 예술인이 성희롱, 서울시 손 놔”…법적 사각지대의 프리랜서
2020.06.19.
서울문화재단 용역 사업 때
참여했던 프리랜서들 주장
“서울시 조사 않고 사건 종결”
해당 예술감독 “사과하겠다”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등을 수상한 유명 예술인 ㄱ씨가 젊은 여성 예술인들을 성희롱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피해자들은 “유명 남성 예술인이 자신의 영향력과 업무상 위력을 이용해 청년 여성 예술인들에게 성폭력을 가했다”고 주장했다. 성희롱 의혹이 발생한 사업을 담당한 서울문화재단과 상위기관인 서울시는 사건 당사자들이 ‘임직원’이 아닌, 계약기간이 종료된 ‘프리랜서’라며 사건을 조사하지 않고 종결했다. 많은 예술인들은 성희롱을 당해도 프리랜서라는 이유로 피해를 호소할 데가 없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피해자 ㄴ·ㄷ씨는 18일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ㄱ씨에게 성희롱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해 11월11일 서울문화재단 용역 사업 진행 관련 회의를 위해 서울 마포구에서 만났다. ㄱ씨는 해당 사업의 기획·운영감독이었고 ㄴ·ㄷ씨는 참여 작업자로 예정된 상황이었다. ㄱ씨가 소속된 미술그룹은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등 예술계에서 대표적인 상들을 받았다.
ㄱ씨는 업무를 목적으로 한 자리였음에도 성적 취향을 묻는 등 성적 주제를 이야기했다고 ㄴ·ㄷ씨는 전했다. ㄱ씨는 ㄴ씨와 둘이 남은 자리에서 “너와 성관계를 하고 싶다” “내 작업실에서 내 파트너와 셋이 해도 좋겠다” 등 발언을 했다고 ㄴ씨는 말했다. ㄱ씨는 ㄴ씨에게 “촌스럽고 순박한 북한 여자처럼 생겨서 꼬시고 싶어 했겠다”고도 말했다고 ㄴ씨는 주장했다. ㄱ씨는 ㄷ씨와의 업무적 만남에서도 “예쁘다” “내 스타일이다”라며 사적 만남을 제안했다고 ㄷ씨는 말했다.
ㄴ씨는 “가해자가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의 경계를 넘나들며 성희롱을 하는 동안 치욕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프로젝트를 계속한다면 이 같은 성희롱은 이어질 것이고, 이를 거절해 가해자와 갈등이 생긴다면 이 활동은 물론 예술 활동 전반에 영향을 줄 것 같아 불안했다”고 했다. 그는 “가해자가 예술계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신진 작가들에게도 멘토·심사위원 역할을 계속해 맡는 것을 보고 공론화하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사업을 담당한 서울문화재단·서울시의 조치는 미흡했다. 재단은 지난 2월 ㄴ씨가 성희롱 신고를 했지만 가해자 조사를 하지 않았다. 재단 측은 “ㄱ씨가 재단과 계약기간이 끝난 상태인 데다 그가 임직원이 아닌 용역 종사자였기 때문에 내규상 조사할 권한이 없었다”고 했다. ㄱ씨는 2019년 10~12월 해당 사업의 기획·운영감독을 맡았다. 재단 ‘성희롱·성폭력 예방내규’에는 내규가 ‘재단 구성원’에게 적용된다고 돼 있다. 재단은 이 사건을 상위기관인 서울시에 이첩했으나 서울시도 ‘각하’ 결정을 내렸다. 서울시 시민인권침해구제위원회는 “ㄱ씨의 계약기간이 끝나 위원회 직무 범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프리랜서 예술인은 성희롱 피해를 당해도 구제가 어렵다. 남녀고용평등법상 ‘직장 내 성희롱’은 ‘사업주·근로자’로 대상이 한정돼 있는 탓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2월 예술인에 대한 성폭력 방지대책이 필요하다고 문화체육관광부에 권고했다. 인권위는 “성희롱 행위자가 문화예술계 내에서 광범위한 영향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제재가 각별히 필요하다”고 했다.
ㄱ씨는 경향신문에 보낸 e메일에서 “ ‘성관계를 하고 싶다’ 등 발언을 했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ㄴ씨가 다른 성희롱 사건을 문제 제기한 경험도 있어 그에게 청년예술청 성폭력 관련 위원장을 맡아달라고 부탁도 했다”고 말했다. 다만 “(나의) 솔직하고 거친 성적 자율성 발언이 20대 여성들을 불편하게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한 발언과 관련해 여성주의 이해가 필요하다는 점은 인정한다. ㄴ씨에게 사과할 의향이 있다”고 했다.(경향신문 이보라 기자 purpl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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