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02 (일)
아직은 겨울의 미련이 남아 있지만 햇살이 내뿜는 입김은 확연히 포근해졌다.
‘길벗’ 3월호가 봄의 향기를 담아 찾아왔다. 눈길을 사로잡는 선명한 사진들이 반듯하면서 자연스럽고 화려하지만 요란하지 않아 단숨에 빠져들게 한다. 겨울과 봄 사이에 피어 있는 꽃들, 푸르름의 절정인 대나무 숲 길, 사랑스런 동백꽃, 섬진강에서의 눈, 명화 속 사람들 등, 정성을 다한 알찬 내용들. 몇 가지만 소개하기엔 아쉬울 정도다. 먼저 ‘맛있는 봄바람’을 소개한다.
봄나물 삼총사 쑥과 냉이 달래를 앞세운 ‘식도락 맛의 전령들 봄 밥상’에서는 육지와 바다의 봄 밥상으로 입맛을 자극한다. 야산의 잔설에서 냉이와 달래를 캐는 아낙네의 모습이 눈앞에 그림처럼 펼쳐지고, 등산 가방에 가득 담긴 고사리로 한 달은 봄맛을 만끽할거라는 글에 산나물 캐러 떠나고 싶게 한다.
땅에서 반기는 봄나물뿐이랴. 가장 먼저 봄을 맞는 제주 바다의 방게와 보말, 배말, 감태 ,벌교 꼬막. 기장의 멸치, 태안의 바지락, 섬진강의 재첩과 벚굴까지 민물과 봄 바다의 전령들도 한상 가득이다. 육지와 바다 그리고 민물의 봄 밥상을 푸짐하게 소개하고 있는 글이다.
"살아낸다는 것의 슬픔과 외로움을 그나마 달래주는 게 음식이라고 보면, 미각과 비감은 배와 등의 관계처럼 하나의 몸을 이루며 삶의 모순을 모두 껴안는다.”
봄 전령을 따라가면 봄바람 밥상에 배가 불러 봄기운의 힘이 솟는다.
봄바람은 키 작은 풀꽃에서도 전해준다. 두 번째 글로 ‘풀빛세상이야기 작지만 우주를 품고 있는 개구리발톱’이다. 개구리에게 발톱이 있나? 한 뼘도 안 되는 여린 식물로 옅은 분홍빛을 머금은 순백의 앙증맞게 핀 꽃, 작지만 우주를 품었기에 깔보지 말라고 한다. 안타까운 전설 속 이야기에서 우리 조상들이 개구리에게 발톱을 달아 주었다고 한다. 작은 풀꽃에 감탄하고 어릴 적 함부로 대했던 개구리를 떠올리며 미안함에 용서를 빈다.
순수한 고백이 풀꽃처럼 예쁘고 사랑스러워 나도 용서를 빌어 본다. 언제인지도 모르는 지난 날 신발 밑창만 만져주던 풀과 들꽃들아 무심코 뭉개버리며 밟고 가서 미안하다고.
화해와 용서로 평화를 염원하는 풀빛세상이 남북에도 오길 고대하며 마지막으로 ‘길 위의 인생 최승희를 잇는 탈북 무용수 최신아’를 만나보자.
사진만 봐도 누구라도 제압하는 눈빛, 시원하게 드러나는 윗니와 곱게 올라간 입 꼬리는 생기와 기운이 넘치는데 영락없는 무용수다. 실제로 그녀의 춤을 보면 "춤 동작에 조금의 빈틈도 보이지 않는다”는 글에 공감한다.
전설적인 무용수 최승희의 계보를 잇는 최신아는 북한에서 태어나 26년 동안 무용수와 무용감독으로 활동했고 김일성, 김정일 앞에서 공연을 했을 정도로 북한에서는 유명한 무용가였다. 처음 접한 인터넷을 통해 한국의 대중문화를 보았고 백댄서들의 춤이 체제의 차이임을 깨달아 자유로운 표현에 대한 갈구로 힘든 여정을 거쳐 한국으로 망명한다.
낯선 환경과 아는 이 없는 한국에서 ‘아리랑’이 매개가 되어 망명한지 3년 만에 재기하여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다. 최승희 춤을 보전하여 춤으로 세계와 교감해 나가고자 하는 그녀의 바램을 응원한다.
(덧붙여 본보에 1월 23일 최신아 이메일 인터뷰 기사가 게재 되어있다)
"없던 희망도 생길 듯이 여겨질 정도로 봄은 긍정과 생명의 계절이 된다”는 글에 힘을 얻어 감사하며 이 봄과 손잡고 가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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