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02 (일)
(국악신문) 정수현 전문기자=지난 16일, 정효문화재단과 서울남산국악당은 혼조 히데타로와 그의 제자인 혼조 히데지로, 혼조 히데에이지를 초청, 서울남산국악당에서 2024 한일신년음악회 '한일전통음악의 흥과 멋'을 개최했다. 혼조 히데타로는 샤미센 혼조류를 창시한 일본 샤미센 연주의 대가이다.
정효문화재단 주재근 대표는 이번 공연을 두고 "2024년 한국과 일본 모두 청룡의 힘찬 기운으로 새로운 도약과 상생을 도모하고, 양국의 우정과 번영을 기원하는 의미로 특별 기획공연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한국과 일본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가까운 나라로, 각국의 전통 예술이 발전하는 데 있어 상호 교류가 많을 수밖에 없다. 이에 혼조 히데타로가 보여줄 일본 전통문화의 멋을 느끼고, 한국 전통 음악과 어떤 차이나 공통점이 있을지 비교해 볼 수 있을 것 같아 기대하는 마음으로 무대를 관람하였다.
무대는 총 8곡으로, 혼조 히데타로와 제자들이 연주한 세 곡과, 정재 ‘포구락’, 경기민요 아리랑 연곡, 대금산조, 판소리 흥보가, 설장구 총 다섯 가지 한국 전통 예술 무대로 꾸려졌다. 아쉬웠던 것은 일본 전통 음악으로는 혼조 히데타로와 제자들이 연주한 샤미센, 코큐만 볼 수 있었던 대신 한국 전통 예술은 장르를 나열하는 데에만 애썼다는 것이다. 물론 각국의 전통을 펼쳐내는 느낌으로 만들어진 공연이라고는 하지만, 한국과 일본 전통음악이 교류하고 화합한다는 느낌보다는 개개인 발표회처럼 다양성에만 치중된 느낌을 받았다. 한국과 일본의 전통이 더욱 화합하는 무대로 꾸려졌다면 더 뜻깊은 신년음악회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민요 소리꾼 김세윤의 사회로 공연이 시작됐다. 이번 공연에는 국회한일의원연맹(의장 정진석) 의원 39명과 정부 인사가 초청됐고, 일본인 관객도 상당수라 일본어로 인사 멘트를 준비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김세윤은 유쾌하고 깔끔한 진행으로 쉽게 설명해 주어 무대를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
첫 무대는 어린이들로 구성된 화동정재예술단의 당악정재 ‘포구락’으로 열렸다. 어리지만 절제 있고 아름다운 몸짓으로 한국 무용의 정수를 보여주었다. 그 외에도 김찬래의 경기민요 아리랑 연곡과, 민영치의 서용석류 대금산조까지 감상할 수 있었다. 민영치는 재일교포 3세로, 주로 장구 연주자로 많은 활동을 하고 있지만, 이번 무대에서는 9년간 서용석 선생에게 직접 사사 받은 서용석류 대금산조를 선보여 대금 연주자로서 매력 또한 드러내었다.
두 번째 무대였던 ‘샤미센-코큐를 위한 "카키로히”’에서는 샤미센뿐 아닌 ‘코큐’ 연주를 볼 수 있어 더욱 흥미로웠다. 샤미센은 일본의 전통 현악기로, 발현악기이지만 손가락으로 뜯지 않고, 바치(撥)라는 채를 이용해 연주한다. 화려함은 덜할 수 있으나 깔끔하고 오묘한 소리가 인상적이었다. ‘코큐’는 샤미센보다 작은 일본의 찰현악기로, 두 줄로 이루어져 있으며 활을 사용하여 연주해 우리나라 전통 악기인 해금과 비슷하다.
코큐 음색은 일본답기도, 서양답기도 했는데, 바이브레이션이나 다이내믹 부분에 있어서는 마치 바이올린 소리와 비슷했지만, 끊어질 듯 아슬아슬하면서도 끈질기고 동양적인 오묘한 매력이 묻어났다. 신기했던 것은 활로 이어지는 소리를 내는 동시에 현을 뜯어 두 가지 소리를 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특이하고 다양한 주법으로 연주하는 것을 보며 더욱 일본 악기의 매력에 빠져들 수 있었다.
이 곡은 코큐가 주선율을 연주해 나가고, 샤미센 두 대로 리듬 패턴을 연주하거나 함께 어우러지는 진행이었다. 세 연주자는 긴 천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 정성스레 악기를 연주했다. 차분하게 예를 갖추어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을 통해 음악에 대한 그들의 진심을 볼 수 있었다. 곡은 평온하면서도 긴장되는 분위기로 흘러갔다. 샤미센 두 대는 기본적으로 거의 같은 패턴의 리듬 형태를 연주했다.
동일한 음을 함께 연주하다가도, 화음으로 나누어지는 등 다양한 변화를 주었다. 특히 이 무대는 어딘가 음울하고 기묘한 느낌을 많이 받았는데, ‘요나누키 선법’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었다. ‘요나누키’는 일본 전통 음악에서 자주 쓰이는 선법으로, 자연 단음계에서 ‘레’와 ‘솔’이 빠진 ‘라,시,도,미,파’의 다섯 음으로 이루어져 있다. 보통 ‘엔카’에서 많이 쓰이며 우리나라 트로트에서도 그 음계를 자주 찾아볼 수 있다. 이 곡에서는 이러한 마이너틱하고 반음계 진행이 많은 ‘요나누키 선법’이 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처량한 느낌과 일본만의 특수한 색채를 물씬 느껴볼 수 있었다.
판소리 소리꾼이자 한양대 교수인 조주선 소리꾼의 ‘흥보 박 타는 대목’은 관객들의 환호와 즐거운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시원하고 신명 나는 소리로 관객들과 이야기 나누고, 소통하며 ‘얼씨구’, ‘얼쑤’ 같은 추임새가 무대에 가득 차 마치 판소리의 원형인 ‘마을소리 판’에서 다 함께 즐기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이수현이 이끄는 조선락광대 단원들이 선보인 ‘우도설장구’ 또한 흥겨움을 더해 주었다. 서로 간의 완벽한 호흡과 깔끔한 타법, 섬세하고 화려한 역동적 에너지는 새해를 더욱 힘차게 시작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편애’는 혼조 히데타로가 테라야마 슈지의 시 ‘열 가지 색의 사랑’에서 영향을 받아 만든 곡이다. 혼조 히데타로의 샤미센 연주 뒤에는 제자 혼조 히데지로의 풍성한 뒷받침이 있었다. 스승의 음악에 누가 되지 않고자, 또한 더욱 좋은 음악으로 만들고자 하는 마음이 그의 연주에서 확연히 드러났고, 그 덕분에 분명 샤미센 두 대로 연주하는데도 마치 한 대로 연주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 곡에서는 특히 혼조 히데타로가 노래하고 시를 읊어 더 인상적이었다. 일본어를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마치 영화나 극을 보는 느낌을 받아 무대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이 곡 또한 요나누키 선법이 활용되었고, 그에 더해 반음계를 다양하게 사용하여 더욱 풍성한 울림과 화성적 특징을 드러냈다.
마지막 곡 ‘전심’은 2016년, 혼조 히데타로가 내한하여 국립국악원에서 공연했을 당시 만들어진 곡으로, 한국과 일본의 교류와 양국 전통음악 계승의 발전을 기원하는 작곡자의 마음이 담겨있다. 이 무대에서는 민영치가 장구와 소금을 연주하여 샤미센, 코큐와 함께 어우러진 무대를 선보였다. 무대는 소금의 강한 바람 소리로 시작했다. 한국적 사운드와 주법, 시김새가 사용되었지만 동시에 일본 전통 음계나 긴 호흡의 농음 등이 연주되어 마치 일본 전통 관악기 샤쿠하치가 연상되기도 했다. 샤미센의 낮고 간결한 음의 조합, 코큐의 길고 차분한 호흡, 그리고 소금 연주와 장구의 울림이 어우러져 평화롭고 여유로운 감상을 불러 일으켰다.
이번 공연을 통해 한국과 일본의 문화적 특징을 깊이 있게 살펴볼 수 있었다. ‘예(禮)’를 갖추는 숭고한 정신과, 전통 계승 및 발전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명인들의 꾸준한 열정은 각국의 전통 예술이 가지고 있는 공통된 가치였다. 떼려야 뗄 수 없는 양국의 전통이 앞으로도 지속되어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무대가 더욱 많아져야 한다. 화합하고 상생하며 오래된 귀중한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그 힘으로, 우리는 더 오래, 그리고 함께 예술로 즐거이, 깊이 있게 공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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