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03 (월)

[휴일의 詩] (117) 설날 아침에/ 김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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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의 詩] (117) 설날 아침에/ 김남주

  • 특집부
  • 등록 2023.01.21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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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내린다 싸락눈

소록소록 밤새도록 내린다


뿌리뽑혀 이제는

바싹 마른 댓잎 위에도 내리고

허물어진 장독대

금이가고 이빨 빠진 옹기 그릇에도

소 잃고 주저앉은 외양간에도 내린다.


더러는 마른자리 골라 눈은

떡가루처럼 하얗게 쌓이기도 하고

닭이 울고 날이 새고

설날 아침이다.


새해 새아침 아침이라 그런지

까치도 한 두 마리 잊지 않고 찾아와

대추나무 위에서 운다.

까치야 까치야 뭣하러 왔나

때때옷도 없고 색동저고리도 없는 이 마을에

이제 우리집에는 너를 반겨줄 고사리손도 없고

너를 맞아 재롱 피울 강아지도 없단다.

 

좋은 소식 가지고 왔거들랑 까치야

돈이며 명예 같은 것은

그런 것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나 죄다 주고

 

나이 마흔에 시집올 처녀를 구하지 못하는 우리 아우 덕종이한테는

형이 주녹이 들지 않도록

사랑의 노래나 하나 남겨두고 가렴

 

추천인:김석복(고려인 예술인)

까치야 까치야! 설날 새해에는 나이 마흔이 넘도록 장가 못가는 우리 아우에게 이쁜 색시 하나 물아다 주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