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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국제문화공연교류회 양평수 이사장. 경남 함양군에 '고향의 노래' 헌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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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21년 민주주의 학술논문 공모’ 4월 15일까지 접수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이사장 지선, 이하 사업회)는 민주주의와 민주화운동 관련 연구를 지원하기 위한 ‘2021년 민주주의 학술논문 공모’를 4월 15일까지 접수한다고 밝혔다. 이 공모는 민주주의와 민주화운동 관련 분야 연구를 지원하고 논의를 활성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진행되며, 총 6편의 연구 주제를 선정해 최대 400만원의 연구비를 지원한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한국민주주의연구소는 등재 학술지 ‘기억과 전망’을 매년 두 차례 발간하고 있으며, 이번 공모에 선정된 연구 논문은 하반기 발간될 학술지에 투고된다. 지난해 공모에는 총 40편의 연구 계획서가 접수됐고, 이 가운데 6편의 연구 주제가 선정됐다. 그리고 최종 두 편의 논문 ‘사립대학으로 간 민주화운동: 4·19 ~5·16 시기 학원분규와 사립대학 법인 문제의 전개(김일환)’와 ‘5.18, 광주 일원에서의 연행·구금 양상과 효과: 계엄군의 연행·구금이 지역민 및 일선 행정기관에 미친 영향을 중심으로(김형주)’가 하반기 ‘기억과 전망’에 게재됐다. 이번 공모 연구 과제는 일반 주제와 특집 주제로 나뉜다. 일반 주제는 △민주화운동 관련 사건, 사상, 단체, 인물, 문화, 기념 시설 등 민주화운동 정신 계승에 이바지하는 학술적 연구 △민주주의와 관련한 현상 분석, 전망 제시, 의제 발굴 △한국, 아시아, 세계의 민주화운동, 국제연대 운동, 민주주의, 시민사회에 관한 학술적 연구 등이다. 특집 주제는 △K-민주주의, 어디로 가는가?: 촛불혁명 5주년과 코로나19 시대를 잇는 오늘날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 화두 찾기 △사업회 소장 자료를 활용·분석하거나, 민주인권기념관 조성에 대한 학술적 논의를 활성화할 수 있는 연구이다. 공모 대상은 국내외 학술 연구기관 및 교육 기관 소속 연구원이나 대학 강사, 학술지(등재 후보지 이상)에 논문 게재가 가능한 연구자이며, 공모에 선정되면 편당 최대 400만원의 연구비가 지원된다(학술지 기억과 전망 투고 및 검수 뒤 연구비 300만원 지급, 게재 확정 뒤 100만원 별도 지급). 접수 기간은 4월 15일(목) 17시까지이며 사업회 홈페이지(kdemo.or.kr)에서 공모 신청서 및 연구계획서 등 관련 양식을 내려받아 이메일(memory@kdemo.or.kr)로 제출하면 된다. 사업회 한국민주주의연구소 이원영 소장은 "민주주의, 민주화운동 관련 연구가 더 활성화해야 한다”며 "신진 연구자를 발굴해 연구도 지원하고, 성과도 확산할 수 있도록 사업회가 꾸준히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공모 결과는 4월 말 사업회 홈페이지 등을 통해 공개할 예정이며, 공모에 관한 자세한 요강 및 기준 등은 공지사항의 공고문을 참조하면 된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민주화운동 정신을 계승·발전시키기 위해 설립된 행정안전부 산하 공공기관으로, 옛 남영동 대공분실을 ‘민주인권기념관’으로 조성했다. 언론연락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업국 김규리 031-361-9527 2021년 민주주의 학술논문 공모 문의 031-361-95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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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안 X 시나위] Ep. 5 말레이시아 “음빳 다라” | [ASEAN X SINAWI] Malaysia “Empat Dara”#아세안X시나위 #아세안시나위 #국악으로만나는아세안음악 [아세안 X 시나위] Ep. 5 말레이시아 "음빳 다라” | [ASEAN X SINAWI] Malaysia "Empat Dara” #아세안X시나위 #아세안시나위 #국악으로만나는아세안음악 [아세안 X 시나위] Ep. 6 미얀마 "흐몽 슈웨 이” | [ASEAN X SINAWI] Myanmar "Hmone Shwe Y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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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철 입맛 돋우는 영양만점 향긋한 봄나물 3가지봄나물은 겨울철 역경을 이겨냈듯이 강인한 생명력을 지녔다. 또한 달콤쌉싸름하지만 향긋한 향으로 입맛을 돋우고, 다른 계절보다 무기질, 비타민 등 영양소가 더 풍부하게 들어있어 자칫 나른하고 지치고 쉬운 봄철에 먹으면 안성맞춤이다. 1. 향이 진한 대표적 봄나물 ‘냉이’ 쌉쌀한 맛과 특유의 향긋한 향이 있는 냉이는 봄의 대표적인 식재료이다. 잎과 줄기, 뿌리까지 모두 먹을 수 있으며 봄에 캐서 무침과 국, 전 등을 만들어 먹는다. 냉이는 단백질과 비타민이 풍부한 알칼리성 채소로 입맛을 돋워주고, 비타민A, B₁, C가 풍부해 원기를 돋우고, 피로해소 및 춘곤증에 좋다. 냉이는 잎과 줄기가 작고 부드러운 어린 것이 맛있으며, 잎은 선명하고 진한 녹색이 좋고, 특유의 향이 진하게 나는 것이 좋다. 2. 아삭아삭 식감이 좋은 ‘돌나물’ 냉이, 달래와 함께 대표적인 봄채소 중 하나인 돌나물은 수분이 풍부하고 아삭한 식감을 가지고 있어 생으로 먹는 것이 일반적이다. 칼슘과 인, 비타민C, 인산이 풍부해 봄철 춘곤증과 피부미용에 효과적이며, 새콤한 신맛을 가지고 있어 식욕을 촉진한다. 돌나물은 잎이 짧고 굵으며 만졌을 때 통통한 것이 좋고, 잎이 어리고 줄기가 연한 것이 식감이 부드러워 맛이 좋으며, 줄기를 잘랐을 때 줄기의 단면에 수분감이 있는 것이 싱싱하다. 3. 자연에서 자생하는 산야초 ‘취나물’ 특유의 향과 쌉싸름한 맛이 특징인 취나물은 국내에 60여 종이 자생하고 있으며, 그중 참취, 개미취, 각시취, 미역취, 곰취 등 24종이 식용으로 활용된다.취나물에는 칼슘과 철분, 비타민A 등이 풍부하며, 특히 비타민A는 동량의 배추보다 10배 더 많다. 또한 칼륨 성분이 많은 알카리성 식품으로 칼륨 성분을 통해 우리 몸에 쌓여 있는 유해한 염분을 배출한다. 플라보노이드, 사포닌 성분은 항상화 기능을 하여 노화 방지를 도우며, 혈전이 생기는 것을 막아주고 원활한 혈액 순환에 도움이 된다. 잎이 밝은 연녹색이면서 시든 부분이 없고 뒷면에 윤기가 흐르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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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악원 연습장‘예인마루’개관국립국악원(원장 임재원)은 2021년 3월 17일(수),공연연습장 예인마루에서‘개관식’을 개최했다. 국악원 연주단 조직 및 인원 증가에 비해 연주 역량 강화를 위한연습공간이 부족함에 따라 2017년부터 총사업비 181억원의 예산을 연차적으로 투입하여 공연연습장을 건립했다. 공연연습장 예인마루는 대연습실 2개, 중연습실 2개, 소연습실 18개로 구성되어단원들의 기량 강화에 최적의 환경을 제공한다. 또한 세미나실 1개, 강습실 2개가있어 일반인 상대 강좌, 문화행사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다. 개관식에는 국립국악원 임재원 원장과 국립연주단 예술감독을 비롯한 직원 및 단원, 건립 관계자 등 50여명이 참석해 공연연습장‘예인마루’의 힘찬 출발을 응원했다. 임재원 원장은 올해 및 작년 계속된 코로나19로 인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예인마루 개관에 협조하신 분들에게 깊은 감사를 밝혔다. 2017년 시작되어 4년만에 개관한 ‘예인마루’는 위치가 서초구 남부순환로 2364, 연면적은 6.008㎡/지하 6층이다. 총 사업비는 181억원이 소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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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흙의 소리 28흙의 소리 이동희 진출 <3> 그러면 다래는 누구인가. 이름난 기생이었다. 가무를 잘 하여 궁내 잔치에 들어가는 사기四妓였다. 그녀가 그렇게 대단한 인물인지는 잘 모르겠다. 뭇 남자들을 그녀의 치마 앞에 무릎 꿇린 재예才藝를 갖추었다. 왕자 형제들을 다 홀리고 고관대작의 자식들 지방관료 등 장안의 한량들의 넋을 빼앗은 여인이었다. 뒷날 세종 임금의 일곱째 아들 평원대군平原大君 이임李琳이 사랑하며 초요갱楚腰䡖이라고 불리게 되었는데 초나라 미인은 허리가 가늘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미녀였다. 여섯 번째 아들 금성대군錦城大君, 배가 다르긴 하였지만 나이가 한 살 많은 형 화의군和義君, 왕자 셋이 그녀를 놓고 쟁탈전을 벌이고 그 일로 해서 금성대군 이유李瑜는 옥고를 치르며 귀양 갔다가 죽었다. 화의군 이영李瓔은 외방으로 유배를 갔고 이임과 초요갱은… 뭐 그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러고 저러고 한 얘기들은 그 뒤의 일이기도 하고 게재가 되면 또 하겠지만, 좌우간 그녀는 박연의 애제자였고 그를 스승으로 지극히 존경하는 여인이었다. 그런데 그런 상소를 올렸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었다. 그 사실을 미리 알려 줄 수도 있었다. 귀띔을 할 수도 있고. 박연은 그러나 한 마디 반 마디 운도 떼지 않았다. 만나기만 하였다. 상소문을 다 다듬고 나서 그녀가 있는 곳으로 찾아갔다. 주막 한적한 뒷방에 술자리가 마련됐다. 좋은 안주와 좋은 술을 시키고 여러 잔 그녀에게 따라 주었다. 다른 사람들은 다 물리었다.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것도 그만 하라고 하고 술만 마시었다.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아니여. 일은 무슨 일.” 박연은 고개를 저으며 활짝 웃어보였다. "어디 심기가 불편하신 것 같지는 않고, 어부인과 다투신 건가.” "무슨 소릴 하는 거여? 그리고…” "그리고 뭐요? 아무래 어부인하고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애요.” 그러면서 다래는 그의 아래 위를 주물러 주며 말하였다. "오늘 제가 위로를 해 드릴게요.” 박연은 정색을 하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다래는 얼른 잘못했다는 듯이 고개를 조아리며 깍듯이 술을 따랐다. "인제 마누라하고보다 아이들하고 다투고 있어.” 그도 자꾸 그녀에게 술을 따랐다. 얼마간 그렇게 술을 마시며 얘기를 하였다. 그리고 소리에 대하여 노래에 대하여 춤에 대하여 평소 가지고 있던 의견을 펼쳐나갔다. 강의를 하듯이 질문을 하듯이 진지하게 이어나갔다. 개론이 아니라 각론이었다. 음이란 무엇이며 악이란 무엇이고 예란 무엇이냐. 시란 무엇이고 부란 무엇이고 흥이란 무엇인가. 예술이란 무엇인가. 가끔 기회 있을 때마다 들려주던 것을 정리를 하듯이 되풀었다. 아는 것을 있는 대로 다 빼어주는 것이었다. 그가 이론적으로 말하면 다래는 실기로 보여주었었다. 그녀가 예쁘고 귀여운 것은 한 마디 한 마디 솔깃하고 진지하게 듣는 것이었다. 꿇어앉거나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서. 가르침을 얼마나 전수 받고 이해하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랬지만 예, 알았습니다, 잘 알았습니다 하고 고맙습니다 하고 반응을 보이었다. 술도 취하지 않았다. 밤이 깊었는데 졸리지도 않았다. 연방 다래를 찾는 손님이 불러내었지만 안 된다고 하였고 그것이 사부와의 자리라고 하여 다 그냥 넘어갔다. "늘 조신해야. 무서운 세상이여.” "남자들 세상이예요.” "그래. 잘 아네.” "제가 잘 알지요.” "그러면 됐어.” 그것이 다였다. 다음날 상소문을 올리었다. 그리고 예조에서 바로 궁중에 여악을 금하도록 하였다. 사부인 박연이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을 안다면 다래는 어떻게 생각하였을까. 도대체 그럴 수가 있느냐고 자신을 그렇게 내칠 수가 있느냐고 얼마나 원망을 하고 퍼부어댔을지 모른다. 어쩌면 대의명분에 입각하여 국가 대계를 위하는 마음으로 결단을 내린 야심을 이해하였을지도 모른다. 미천한 자신이 눈에 밟혀서 얼마나 마음이 무거웠을까, 생각하며 그날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자리를 마련했었던 것을 떠올리며. 좌우간 무대란 궁중에만 있는 것은 아니고 어디서나 여자의 기예를 펼칠 수도 있는 것이지만 그 때 조선시대의 시간 속에서 결단된 삶의 순간이었다. 다래는 이후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고 사부의 부음을 뒤늦게 듣고 멀리 남녘(영동)을 향해 눈물의 시를 읊었다. 박연은 줄기차게 예악의 개혁을 밀어붙이었다. 그의 의견은 정책이 되었고 그것은 힘찬 새 물결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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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성 화백의 작화 : [연재소설] 흙의 소리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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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소리꾼 곽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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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송산리 고분군 본격적인 발굴조사 시작문화재청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소장 황인호)는 19일 오후 2시에 세계유산인 공주 송산리 고분군에서 백제 웅진기 왕릉의 구조와 상장례(喪葬禮) 규명을 위한 발굴조사의 시작과 함께 고유제를 개최한다. 공주 송산리 고분군(사적)은 일제강점기에 다수의 고분을 조사하였지만, 조사내용은 제대로 보고되지 않았다. 이후 1971년 6호분의 배수로 공사 과정에서 무령왕릉이 발견되면서 왕릉원으로서 송산리 고분군의 위상이 높아졌다. 특히, 무령왕릉은 삼국 시대 왕의 무덤 가운데 도굴되지 않고 능의 주인공과 축조연대, 내부구조, 부장유물을 온전하게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무덤으로서 문화재 가치가 뛰어나 발굴 당시부터 지금까지도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에서는 본격적인 발굴조사에 앞서 2019년 공주시(시장 김정섭)와 ‘공주 송산리고분군 중장기 학술조사를 위한 업무협약(2019.4.23.)’을 체결하여 협업체계를 구축한 바 있다. 이를 근거로 송산리 고분군 일대의 고분 분포 현황조사, 지하물리탐사, 라이다측량 등 다각적인 조사를 시행하였고, 그 결과 기존에 정비된 7기의 고분 이외에도 추가로 고분이 존재할 가능성을 확인한 바 있다. 특히, 6호분 서쪽에 인접한 것으로 추정되는 29호분의 대략적인 위치를 재확인하는 등 중심 고분군들에 대한 추가 자료도 확보하였다. 이번 발굴조사는 공주 송산리 고분군 중장기 발굴조사의 첫 단계로, 일제강점기에 조사되었지만 제대로 보고되지 않은 29호분을 포함한 남쪽으로 넓게 뻗은 정비구간을 대상으로 한다. 단계별 연차 조사를 통해 송산리고분군의 본모습을 찾아 백제 왕릉의 진정성을 회복하고, 고분의 올바른 복원·정비안도 마련할 계획이다. 한편, 이번 고유제는 백제왕과 지역주민에게 발굴조사의 시작을 알리고, 조사단의 안전을 기원하기 위한 행사다. 행사는 국악앙상블 너울의 정읍사 공연을 시작으로,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의 송산리 고분군 조사의 경과 보고, 공주시 유림회 집례(集禮)에 따른 고유제 봉행, 내·외빈 인사말씀, 시삽, 기념촬영 순서로 진행된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하여 100명 내 관계자 중심으로 참석인원을 제한하여 개최한다. * 정읍사: 백제시대 작가 미상의 가요로 현재 남아 있는 유일한 작품 문화재청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에서는 이번 발굴조사를 시작으로 백제 웅진기 왕릉의 상장례 복원을 위한 지속적인 조사, 심화연구와 함께 국민과 직접 소통하는 다양한 행사를 마련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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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악원, 새로 만든 교육 콘텐츠, 온라인 수업 지원<판소리 탐구생활>, <해설과 함께 보는 그때 그 공연>, <학예연구사가 들려주는 3분 국악>, <교과서 국악>. 국립국악원(원장 임재원)이 운영하는 국내 유일의 국악 교육 전문 사이트인 ‘e-국악아카데미(https://academy.gugak.go.kr)’가 홈페이지 개편과 함께 유익한 언택트 문화생활을 이끌 신규 교육 콘텐츠 139편을 새롭게 선보인다.일반인과 국악애호가를 위한 교양 시리즈 70편과 학교에서 활용하기 좋은 교과서 국악 69편이다. 이번에 선보이는 콘텐츠의 특징은 ‘학습자가 필요한 한 가지 정보만 짧은 시간에 전달하는 마이크로 러닝(Micro Learning)’방식으로 제작하였다는 점이다. 작은 주제로 분절된 짧은 영상 여러 편이 모여 시리즈를 구성하기 때문에 관심 있는 주제부터 선택적으로 학습할 수 있다. <판소리 탐구생활>은 춘향가와 흥보가의 주요 눈대목(춘향가 7대목, 흥보가 5대목)을 이론 편/ 감상 편/ 해설 편/ 따라하기 편으로 구성하여 판소리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를 돕는 다목적 콘텐츠이다. 소리꾼 출신으로 활발한 방송 활동을 하고 있는 김나니가 진행을 맡아톡톡 튀는 입담으로 강사들과 호흡을 맞춘다. 이주은(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지도단원)과 채수정(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이 각각 춘향가와 흥보가의 해설과 지도를 맡았다. 해설 편에서는 판소리 사설에 담겨있는 특유의 ‘말놀음’의 재미를 풀이하고, 따라하기 편에서는 장단과 발성, 표현법 등을 따라 배울 수 있도록 하였다. 감상 편은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예능보유자 정회석을 비롯하여 모보경, 유태평양 등 최고 기량의 명창 12명이 춘향가 중 사랑가․이별가․옥중가, 흥보가 중 돈타령․제비노정기․박타령 등 가장 사랑받는 주요 눈대목을 불렀다. <해설과 함께 보는 그때 그 공연>은 국악 공연사에 의미있는 공연과 아카이브 자료를 발굴하여 전문가의 해설과 함께 조명해 보는 시리즈이다. 1968년 멕시코올림픽게임 세계민속예술축전에 선보인 부채춤, 같은 해 고 박동진(1916~2003) 명창의 최초 완창 판소리 무대, 1978년 공간사랑에서 열린 첫 사물놀이 공연 등 내․외부 자문을 받아 10편의 공연을 선정하였다. 해설자로는 사물놀이 탄생의 주역인 김덕수(사물놀이 명인) 등 연출가, 연주자, 학자 등 공연과 직․간접 관련이 있는 전문가들이 참여하였다. 원일(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 예술감독), 유경화(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각 5편씩 진행을 맡았다.국악 공연사를 이해하는데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학예연구사가 들려주는 3분 국악>은 국립국악원 학예연구사들이 간단한 국악 상식을 핵심만 요약해서 3분 동안 직접 설명하는 미니다큐 영상이다. ‘알고 있나요? 우리말 속 국악용어’, ‘극락세계 속 우리 악기‘, ‘설렁설렁 불러서 설렁제? 판소리 더늠 이야기’ 등 3분에 압축된 여러 주제들이 국악의 문턱을 낮추어 준다. 학교 교육용 영상인 <교과서 국악>도 대폭 제작했다. 초․중등 교과서에 자주 나오는 49작품을 연주영상, 소개영상, 어린이용 탐방극 영상으로 구성했다.‘연주영상’은 국악곡을 온전히 감상할 수 있는 고품질 영상으로 국립국악원 연주단이 참여했다. 특히 궁중에서 연주하던 음악과 춤인 <대취타>와 <춘앵전>은 창덕궁에서 촬영해서 영상미를 더했다. ‘소개영상’은 악곡의 역사, 배경, 특징 등이 담긴 다큐멘터리 영상으로 영문 자막도 제공된다. ‘어린이용 탐방극’은 어린이들이 국악을 쉽고 재미있게 접근할 수 있도록 인형탈 캐릭터 별나리, 총총이가 아역 배우들과 함께 꾸미는 드라마 형식이다. 앞서 소개한 교육 콘텐츠들은 일반인, 국악 애호가뿐만 아니라 개학을 맞은 학교에서 수업에 활용하기 좋은 내용들이다.특히 <교과서 국악>은 코로나19로 온라인 수업 비중이 늘어난 일선 학교에서 활용도가 높을 것으로 기대된다. <판소리 탐구생활>은 최근 이날치밴드의 인기에 힘입어 주목받는 ‘판소리’를 쉽고 가깝게 접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안성맞춤 콘텐츠가 될 것이다. 이 영상들은 국립국악원이 운영하는 온라인 국악 교육 사이트 ‘e-국악아카데미(https://academy.gugak.go.kr)’의 ‘열린강좌’에서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국립국악원은 e-국악아카데미 사이트 개편을 통해 불편함을 개선하고 열린강좌, 어린이와 외국인 페이지를 추가하는 등 시․공간의 제약 없이 국악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다양한 콘텐츠를 지속 보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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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진원, 콘텐츠 산업 맞춤형 융자 유치 지원으로 콘텐츠 기업 자금 확보에 기여문화체육관광부(장관 황희)와 한국콘텐츠진흥원(원장 김영준, 이하 콘진원)은 영세 콘텐츠 기업의 경영안정과 혁신 성장 지원을 위해 맞춤형 융자 지원제도를 시행한다. 특히 올해는 코로나19로 변화한 콘텐츠산업 환경에 대응하고자 금융권과 협력해 비대면과 신기술 융합 콘텐츠 등 지원을 위한 신규 상품을 출시하고 융자 규모를 확대한다. 콘텐츠 정책금융 제도를 통해 ‘디지털 뉴딜’과 ‘콘텐츠산업 3대 혁신전략’의 성공을 뒷받침한다는 구상이다. ◆ 콘텐츠 제작사업화, 비대면신기술 융합, IP 라이선스 등 맞춤형 보증지원으로 디지털뉴딜 성공 촉진 콘진원은 신용보증기금(이하 신보)과 협력하여 ▲K콘텐츠혁신성장보증, ▲콘텐츠IP보증, ▲문화콘텐츠기업보증, ▲문화산업완성보증 등 다양한 콘텐츠 기업 맞춤형 보증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콘진원과 신보가 함께하는 보증제도는 콘진원이 사업계획을 평가하여 일정등급 이상을 받은 우수 콘텐츠 기업을 신보에 추천하면, 신보는 추천기업을 대상으로 보증심사를 진행하여 보증을 지원하는 구조다. 콘텐츠 기업들은 콘진원의 추천을 통해 보증심사의 문턱을 낮춰 보다 원활하게 자금을 공급받을 수 있다. 보증한도 및 보증비율, 보증료 등에서도 우대혜택을 적용 받을 수 있다. 특히 올해 신설된 ‘K콘텐츠혁신성장보증’은 포스트코로나로 급속화된 디지털 경제 환경에서 혁신성장하는 콘텐츠 기업을 집중 육성하고 K콘텐츠의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마련됐다. 지원대상은 ▲글로벌 콘텐츠, ▲비대면 콘텐츠, ▲신기술융합 콘텐츠를 제작하는 국내 콘텐츠 기업이며, 보증한도는 10억 원 이내다. 지난해 시범 도입한 ‘콘텐츠IP보증’은 콘텐츠IP 라이선싱 사업화자금 지원을 위해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된다. 보증한도는 10억 원 내외로, 콘텐츠IP를 보유한 기업뿐만 아니라 콘텐츠IP를 이용하고자 하는 제조, 서비스 업종 등 이종기업도 수혜를 받을 수 있어 콘텐츠 산업의 외연 확장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문화콘텐츠기업보증’은 콘텐츠 기획 단계부터 제작, 사업화 단계에 이르는 전 주기에 자금을 공급해, 기업들이 대출금리의 부담 없이 콘텐츠 제작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보증한도는 10억 원 이내이며, 또한 대출금리의 일부를 최대 1년간 2.5%P 이차보전 받을 수 있다. ‘문화산업완성보증’은 콘텐츠 기업들이 미래에 완성될 콘텐츠를 담보로 보증서를 발급받고 제작비 일부를 대출받을 수 있게 지원하는 상품이다. 콘텐츠 유통배급사와 유통계약을 체결한 콘텐츠 기업은 제작비를 효과적으로 조달받을 수 있게 된다. 보증한도는 15억 원 내외로, 방송과 영화 분야에 한해 최대 30억 원까지 보증 받을 수 있다. ◆ 방송영상진흥재원으로 코로나19 피해 독립제작사, 케이블PP 대상 150억 원 규모 융자 지원 방송영상 독립제작사, 케이블PP를 대상으로 하는 ‘방송영상진흥재원 융자지원’사업은 코로나19 감염확산에 따라 어려워진 촬영 현장 상황을 감안하여 전년 대비 20억 원이 증가한 150억 원 규모로 지원하며, 그 중 90억 원을 상반기에 조기 집행할 계획이다. 본 사업은 ▲프로그램제작자금, ▲시설구축자금, ▲경영지원자금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특히 올해 신설된 ‘경영지원자금’은 긴급한 자급공급이 필요한 기업의 신속한 경영 안정화를 도모한다. 이를 위해 별도의 심사제도를 도입하는 등 기업의 경영애로를 해소하는 데 힘쓸 계획이다. 신청 분야에 따라 최대 2년 간 5억 원부터 15억 원까지의 융자를 받을 수 있으며, ▲코로나19로 직·간접 피해를 입은 기업과 ▲신규 고용 창출 기업, ▲방송영상 표준계약서를 활용한 기업의 경우 우대금리를 적용받게 된다. 콘진원 김영준 원장은 "콘텐츠 정책금융을 통해 포스트코로나 시대에도 K콘텐츠 기업이 성장과 도전을 멈추지 않고 디지털 경제로의 전환을 이끌 수 있기를 기대한다”며 "콘진원은 이를 위해 금융권과 적극 협력해 정책금융 재원 확보와 융자지원 사업 확대 노력을 지속해 나가겠다”고 전했다. 각 사업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과 신청방법은 콘진원 누리집(www.kocca.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으며, 사업신청을 원하는 기업은 콘진원 정책금융팀(1566-1114) 각 사업 담당자와 사전상담 후 서류를 갖추어 보증제도는 매월 1일부터 10일 11시까지, ‘방송영상진흥재원 융자지원’사업 상반기 공고의 경우 4월 12일 14시까지 온라인으로 접수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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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 아카펠라 토리스] 제주민요 연곡[국악아카펠라토리스] 제주민요 연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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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헌의 고서이야기 28박대헌 고서점 호산방 주인, 완주 책박물관장 책의 길을 걸으며 조선시대에 서점은 서사(書肆)·책사(冊肆)라 불렸고, 개화기와 일제강점기에는 서포(書僩)·책포(冊僩)·서점(書店)이라고도 불렸다. 해방 이후 서점이라 통용되기 시작하면서 현재까지도 그렇게 불리고 있는 책방(冊房)은, 조선시대에는 지방 관아의 기구였으며, 특히 세종 때는 궁중의 인쇄를 맡아보던 출판기관의 명칭이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점은 1908년 고유상(高裕相)이 설립한 회동 서관(匯東書館)이다. 회동 서관은 1897년에 세워진 고제홍 서사(高濟弘書肆)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데, 이해조(李海朝)가 번역한 『화성 돈전(華盛頓傳)』을 비롯해 한용운(韓龍雲)의 『님의 침묵』 이광수(李光洙)의 『단종애사(端宗哀史)』 등 이백여 종이 넘는 책을 출판하면서 1950년대 중반까지 우리 근대 출판문화를 이끌어 온 주역이다.(도판 55-56) 회동 서관은 출판사와 서점을 겸했을 뿐만 아니라 문방구류의 물품도 판매했다. 우리나라 초창기 고서점의 역사를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제1부에서 언급한 쿠랑의 기록으로 미루어 회동서관 같은 서점에서 고서도 함께 판매한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오늘날의 고서점은 고서를 사고파는 곳이다. 따라서 일반 서점과는 그 구조가 근본적으로 다르다. 우선 서점을 찾는 고객들은 대개 연구자나 고서 수집가들로, 특정 분야의 전문가들이다. 고객의 수에서도 많은 차이가 난다. 또 고서점을 운영하려면 고서에 관해 어느 정도 지식을 갖고 있어야 한다. 유럽에는 백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고서점이 수두룩하다. 고서점 주인 중에는 박사학위를 가진 학자나 서지학 관련의 저서를 낸 사람도 많다. 그러다 보니 고서점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도 특별하다. 이들 서점들 중에는 여러 방면의 고서를 두루 다루는 곳도 있지만, 문학·역사 등 한 방면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전문서점들이 대부분이다. 때문에 서점 주인은 그 분야의 전문가가 돼야 한다. 서점 경영도 고객 중심이다. 잘 만들어진 도서목록은 학술자료로도 아무런 손색이 없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 고서점의 운영 방식은 대부분 주먹구구식이다. 동화책에서부터 한적까지 두루 취급하는 백화점식이다. 또 대부분의 고서점이 헌책방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도서 목록을 제작하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할 뿐 아니라 필요성조차도 느끼지 못한다. 대부분의 서점 주인에게서는, 고서를 취급한다는 자긍심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나는 도자기에 관심이 많아 십 대 때는 도예가가 되기로 마음먹었었다. 한때 도예 학원을 운영하는 등 이십 대 시절의 모든 정열을 도자기에 바쳤지만, 아무런 성과를 이룰 수가 없었다. 그래도 도자기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 없어 서른이 다 되도록 방황만 했다. 그 시절 내게 유일한 낙은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중앙도서관 그리고 서울의 여러 고서점을 드나드는 일이었다. 덕분에 나는 도자기뿐만 아니라 고미술 전반에 대한 안목을 넓힐 수 있었다. 고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곰곰 생각해 봤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고서와 고미술품에 관한 약간의 지식, 이것밖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고서점이다. 궁리 끝에 독립문 근처에 작은 사무실을 얻었다. 보증금 없이 월세만 주고 책상 하나만 달랑 있는 사무실이었다. 전화도 월세로 빌렸다. 지금은 전화가 흔하지만, 그때만 해도 백색전화니 청색전화니 해서 전화 놓기도 어려웠고, 가설비도 무척 비싼 시절이었다. 그리고 몇 달 후 장안평 고미술상가에 고서점 호산방(壺山房)을 열었다. 이때가 1983년, 내 나이 서른한 살 때였다. 호산방이라고 이름을 붙인 데는 다음과 같은 사연이 있다. 조선 말기 서화가 중에 우봉(又峰) 조희룡(趙熙龍)이 있다. 그는 추사 김정희의 문인으로 호를 호산(壺山)이라고도 했다. 나는 일찍이 그의 서화에 매료되어 그를 흠모하고 있었다. 그러다 도자기에 깊이 빠져들면서, 장차 도자기 가마를 갖게 되면 당호를 호산방으로 지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호(壺)’자는 항아리를 뜻하니 도자기 가마의 이름으로는 썩 어울릴 듯했다. 결국 도자기 가마가 아니라 고서점을 차리게 됐지만 고서점하고도 잘 어울릴 것 같아 그대로 쓰기로 했다. 막상 가게를 차렸으나 고서화 몇 점에 약간의 책이 전부였다. 다행히 그동안 모아 둔 고서가 커다란 힘이 되었다. 한 권을 팔아 두 권을 사고, 두 권을 팔아 다시 네 권을 사는 식으로 사업을 꾸려 나갔다. 처음에는 아주 힘들고 어려웠지만 몇 년 지나지 않아 눈에 띄게 안정되어 갔다. 그동안 작은 아파트도 하나 장만하고 세 들어 있던 가게도 인수할 수 있었다. 내가 주로 관심을 가진 분야는 필사본과 간찰, 개화기와 일제강점기 때의 역사와 문학 관련 양장본이었다. 1992년, 장안평 호산방을 광화문으로 옮겼다. 교보문고 건너편 광화문 우체국 옆 한일빌딩 아케이드, 지금은 센트럴빌딩으로 이름이 바뀐 건물이다. 호산방이 보다 발전하려면 시내 중심가로 옮겨야 한다는 것이 평소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당시 주위에서는 다들 광화문으로 옮긴 것을 의아해 하는 눈치였다. 광화문과 고서점은 아무래도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그런 우려와는 달리 광화문 호산방은 유명세를 치루고 사업이 나날이 번창해 갔다. 호산방이 점점 안정되어 가면서 고서에 대한 나의 애정과 관심도 훨씬 깊어졌다. 취급하는 고서의 수준도 월등히 차이 났다. 단순히 취미로 고서를 수집할 때는 기껏해야 해방 이전의 문학서적 정도에만 관심을 두고 있었지만 호산방을 시작하고서는 사정이 달라졌다. 고 활자본의 감식은 물론 간찰과 필사본의 내용, 더 나아가 누구의 친필인가를 가려내야만 했다. 그러나 이것을 알아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마음을 다잡고 한적과 간찰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공부래야 가르쳐 주는 선생이 있는 것도 아니고 혼자서 이 책 저 책 뒤적이며 끙끙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얼마 후 필사본과 간찰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게 되었다. 결국 이러한 노력이 호산방 운영에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신문·호외·육필원고·포스터·광고지·음반·영화필름 따위의 비도서 자료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들 중 일부 자료는 책 박물관 설립을 목적으로 호산방 사업과는 무관하게 수집한 것이기도 하다. 우리말에 ‘에누리 없는 장사가 어디 있나’란 말이 있다. 이 말은 고서점에 딱 어울리는 말인 듯싶다. 고서점 주인은 깎아 줄 것을 미리 염두에 두고 가격을 부르고, 수집가는 무조건 반으로 뚝 잘라 깎고 본다. 그래야만 직성이 풀리나 보다. 사실 고서점에서의 에누리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생리적으로 이러한 흥정을 싫어해서 길거리나 시장에서 물건을 살 때는 불안하기 그지없다. 남들만큼 흥정에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단골 고서점에서라면 더욱 그렇다. 이런 성격 탓인지는 몰라도, 나는 호산방을 운영하면서 처음부터 정찰제를 실시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이 과연 손님들한테 먹혀들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처음 호산방을 열고 얼마 되지 않아 한 손님이 들렀다. 한참 동안 책을 살피더니 십여 권의 책을 골라 놓는다. "이거 다 얼마요?” "책 뒤에 가격표가 붙어 있습니다.” 책 가격을 본 손님의 표정과 말투가 곱지 않다. "얼마면 되겠네” 한다. 내가 정색을 하고, "우리 서점은 정찰제입니다”라고 말했더니, 골라 놓은 책들을 휙 내팽개치듯 하고는 돌아갔다. A 선생이었다. 고서 수집가로는 꽤나 알려진 분이었다. 그러나 그 이후로 그에 대한 나의 감정이 좋을 리가 없었다. 그는 호산방에 몇 차례 더 들르고서야 정가대로 책을 사 갔다. 그때의 표정이 마치 땡감을 씹은 듯했다. 그 후로도 그는 나의 원칙을 무너뜨리려고 여러 차례 시도했으나 나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이렇듯 A 선생과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껄끄러운 사이였다. 나는 책을 팔 때는 분명 고서점 주인이지만 다른 고서점에서 책을 살 때는 손님이 된다. 이때 가격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되면 그대로 물러서곤 했다. 그 책과는 인연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미련을 버리는 것이다. 물론 비싸다는 말도 절대 하지 않는다. 고서의 가치는 상대적인 것인데 어떻게 내 기준으로 남의 물건을 싸다 비싸다 할 수 있겠는가. 다만 내가 생각하는 가치와 차이가 날 뿐인 것이다. 고서점이란 겉모습으로는 매우 고상하고 문화적으로 보이는 곳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여기에 어설픈 의상을 입히고 그 의미를 확대해석하려 한다. 그러나 고서 매매 행위 자체에는 아무런 문화적 의미도 없다. 고서를 팔고 사는 것은 말 그대로 비즈니스다. 그런 비즈니스에 굳이 문화적 의미를 갖다 붙이는 것은 아마추어의 어설픔일 뿐이다. 나는 당당한 프로를 지향한다. 억지로 의미를 끌어다 붙이기보다는, 고서 매매 행위 자체가 하나의 문화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할 뿐이다. 지금까지 대다수 고서점에서의 고서 매매 행태는 비문화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아무렇게나 쌓여 있는 책 더미에서 손님이 몇 권을 주섬주섬 골라 주인 앞에 내놓으면 적당히 흥정하여 팔고 사는 것이 우리 고서점의 일반적인 풍경이다. 그러다 보니 같은 책이라도 이 손님에게 부르는 값과 저 손님에게 부르는 값이 다른 경우도 생긴다. 이 얼마나 비합리적이고 비도덕적인 상행위인가. 이래 가지고는 결코 고서점의 위상과 신뢰를 높일 수 없다. 나는 정찰제만이 공정성을 회복하는 길이라고 굳게 믿었다. 또 판매가격을 공개함으로써, 고서 자료의 원활한 순환이라는 측면에도 큰 기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판매 가격의 공개는 매입 가격의 암시로도 해석될 수 있기 때문에, 매물이 나올 수 있도록 통로를 열어 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었다. 사실 고서점은 좋은 고서를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말하자면, 개인 수장가들의 서재에 숨어 있는 자료들을 끌어내 그것을 순환시켜야 고서점도 살고 연구자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것이다. 판매 가격의 공개는 그런 의미에서 매물을 이끌어내는 힘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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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서예로 읽는 우리 음악사설 28거문고 줄 골라놓고 홀연히 잠이 드니 시문에 개 짖으며 반가운 손 오노매라 아희야 점심도 하려니와 탁주 먼저 걸러라 거문고 줄을 골라 놓고 한 곡 타려하나 혼자서는 흥이 일리 없지 무료함에 저도 모르게 잠이 들었겠다. 사립문의 개 짖는 소리에 언뜻 깨니 그리던 벗이 문안으로 들어서네. 아이야 서둘러 점심 준비해라. 아니다. 우선 동이에 술부터 걸러라. 목부터 축여야겠구나. 작품감상 김창업(金昌業:1658~1721) 호 노가재(老稼齋), 조선 숙종 때의 문인이다. 그림도 잘 그렸으며, 가재연행록과 노가재집 등 문집을 남겼다. 한글은 고체로, 한자는 호태왕비 필의로 작위를 피해 단정하게 썼다. 작가 이종선(李鍾宣)은 한얼과 醉月堂 등을 호로 쓰고 있다. 한국서학회 이사장, 성신여대 미술대학 동양화과 초빙교수와 한국서총 총간사를 지냈고, 지금은 경희대 교육대학원 초빙교수,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강사, 중국난정서회 서울연구원장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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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쑤! 우리가락] 당신이 전북입니다[얼쑤! 우리가락] 전주MBC 2021년 03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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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트로트가 무어냐고 물으신다면’우리 ‘특유의 문화적 DNA와 시대 상황들이 트로트의 변신을 이끌었다’는 주장에서부터 ‘100년의 역사를 지나 이 시대의 영웅이 된 노래’라는 등의 평가로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트로트. 과연 이 트로트는 언제 처음 등장했을까? 트로트라는 용어는 합당한 것일까? 트로트는 어떤 역사적 변천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을까? 과거 트로트와 현재 트로트의 같고 다른 점은 무엇일까? 오늘날 대중음악사에서 트로트는 어떤 의미를 지닐까? 차마 트로트를 좋아한다 말하지 못했던 이들, 거세게 불고 있는 트로트 열풍에 어리둥절한 이들, 아직도 트로트를 부르는 게 불쾌한 이들에게 내미는 꼼꼼한 대답‘트로트가 무어냐고 물으신다면’이 발간되었다. 저자는 대중음악사학자로 자처(?)하는 단국대학교 자유교양대학 장유정 교수이다. 1. 트로트에 편견을 지니고 있던 학자의 편견 탈출기 2020년 한 해, 대한민국은 ‘트로트’에 푹 빠져 있었다. 그리고 그 열풍은 아직 가라앉지 않았다. 그 시발은 한 방송사의 서바이벌 음악 프로그램이었지만 이 바람은 이제 거의 모든 방송 프로그램을 점령했다. 가히 광풍이라 할 만한 트로트의 인기에 어리둥절한 사람도 많고, 그 바람에 몸을 맡기고 즐기는 이도 많다. 어느 쪽이든 궁금하긴 하다. 왜 갑자기 트로트의 바람이 불게 되었는지, 한때 촌스럽고 천박하다는 평가까지 받았던 트로트의 어떤 면에 사람들이 푹 빠지게 되었는지. 도서출판 따비의 신간 《트로트가 무어냐고 물으신다면―웃음과 눈물로 우리를 위로한 노래의 역사》에서, 노래에 빠져 노래를 연구하며 직접 노래하기도 하는 단국대학교 자유교양대학 장유정 교수가 바로 이런 의문에 대답한다. 2. 트로트가 왜색 노래로 ‘찍힌’ 사연 1963년, 그 유명한 음악다방 세시봉에서는 ‘성점 감상실’이라는 걸 운영했다. 사전 예고 없이 노래를 들려주고 세시봉에 온 젊은이들이 노래에 대한 의견과 함께 별점을 매기는 것이었다. 이때 초대된 유명 가수들도 노래의 평점을 매겼다.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를 들려준 날 초대 가수로 온 ‘봉봉 사중창단’은 왜색 조라는 이유로 별점을 매기는 걸 거부했고, 이 사실이 『주간한국』에 보도되었다. 저자는 트로트의 뿌리를 찾는 것에서 시작한다. 대중가요사에서 트로트는 몇 차례 논쟁의 중심에 있었는데, 그것은 모두 트로트의 뿌리와 관련된 것이었다. 바로 ‘왜색 시비’다. 최초의 트로트 논쟁은 1964년에 발표된 이미자의 명곡 〈동백아가씨〉에서 시작됐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이 노래는, 이듬해 돌연 ‘방송 금지곡’이 되었다. 이 조치에 대해, 그간의 통념은 한일수교를 앞둔 군사정부가 국민들의 반대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동백아가씨〉에 ‘왜색’이라는 딱지를 붙였다는 것이었다. 저자는 당시의 자료를 꼼꼼하게 검토하고 관련자들을 인터뷰하여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밝힌다. 서양 음악 전공자, 방송국 음악 담당 실무자 등 이른바 ‘음악 엘리트’들이 〈동백아가씨〉의 인기를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 방송 금지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이때 그 음악 엘리트들이 〈동백아가씨〉를 비판한 근거가 바로 ‘왜색’이었다. 이때 찍힌 왜색이라는 낙인은 1980년대 후반 노래 운동의 일환으로 대중음악을 연구․평론한 이들에 의해 더욱 공고해졌다. 트로트는 체제 순응적인 거짓의 노래로, 일제가 자신들의 지배를 공고히 하기 위해 이식시킨 갈래라고 주장한 것이다. 트로트가 왜색의 노래라는 주장에는 트로트가 일본 전통음악인 엔카와 같은 갈래라는 믿음이 깔려 있다. 저자는 바로 이런 통념에 질문을 되돌린다. 과연 트로트는 엔카인가? 3. 엔카는 일본의 전통음악도, 트로트의 뿌리도 아니다 「미스터트롯」에서 정동원이 불러 화제가 된 〈희망가〉, 즉 〈이 풍진 세상〉은 1923년경 발매된 노래다. 익히 아는 것처럼 일본 노래의 번안곡으로, 원곡은 〈마시로키후지노네(真白き富士の根)〉 또는 〈시치리가하마노아이카(七里ケ浜の哀歌)〉라는 제목의 노래다. 1910년 일본 가마쿠라에서 발생한 배 사고로 많은 중학생들이 희생되었는데, 이들을 위한 애도가로 만들어져 일본에서 대대적으로 유행했다. 그런데 이 노래에는 또 원곡이 있다. 1888년에 미국에서 간행된 노래집 『프랭클린 스퀘어 송 컬렉션(Franklin Square Song Collection)』에 실린 찬송가 〈When We Arrive At Home〉이다. 많은 한국인이 트로트는 곧 엔카라고 생각하는데, 과연 엔카는 무엇일까? 일본에서 ‘엔카’는 연설을 노래로 만든 ‘엔제쓰카(演説歌)’, 즉 메이지 10년대(1877~86)에 일본에서 자유민권사상을 보급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든 노래였다. 일제강점기 당시 엔카라 불리던 노래는 오늘날 우리가 엔카라 알고 있는 노래와는 다르다. 1920년대 초기와 1930년대 재즈와 여타 서양 음악 장르를 받아들여 일본화한 갈래가 1960년대 이후에 ‘엔카’로 명명된 것이다. 즉, 일본에서 서양 음악을 받아들여 일본화하고 있을 때, 한반도에서도 서양 음악과 일본 음악을 받아들여 한국의 대중음악이 탄생한 것이다. 그러나 한국인이 당연히 가지고 있는 반일감정, 그리고 지식인 계층의 엘리트 의식이 일제강점기에 형성된 트로트라는 갈래를 우리 노래로 인정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4. 트로트, 한국인과 함께 울고 웃다 초창기 트로트의 음악적인 특징은 4음과 7음이 빠진 단조 5음계(minor pentatonic scale)와 2박자로 설명된다. 그러나 한국 대중음악 최초의 히트곡이라 할 수 있는 〈황성의 적(황성옛터)〉는 2박자가 아니라 우리 전통 장단과 통하는 3박자 곡이며, 5음계는 일본의 전통음악뿐 아니라 서양의 오래된 민요를 위시하여 동아시아에서 두루 사용되었다. 일제강점기에 태동한 트로트는 어떻게 변화하며 지금에 이르렀을까? 저자는 광복 이전부터 2020년대 현재까지, 트로트의 역사를 되짚어본다. 일제강점기에 한반도에서 ‘대중’적으로 히트한 ‘노래’는 〈카추샤의 노래〉 〈이 풍진 세월(희망가)〉 같은 일본 노래의 번안곡이었지만, 곧 〈황성의 적〉 〈목포의 눈물〉처럼 한국인이 짓고 부른 노래가 탄생해 식민지 민중의 분노와 설움을 달래주었다. 광복의 기쁨도 잠시, 전쟁과 실향으로 인한 간난신고를 달래준 것 또한 트로트로, 〈가거라 삼팔선〉 〈굳세어라 금순아〉 〈이별의 부산정거장〉 〈단장의 미아리고개〉 등이다. 전쟁의 참화를 딛고 재건에 힘쓰던 1960년대에서는 향토적인 정서와 도시 지향적인 정서가 공존했다. 돈을 벌기 위해 서울로 향한 임을 그리는 고향 여성을 이미자가 대변했다면, 화려한 도시의 주인공이 되고자 했던 남성은 배호가 상징했다. 그리고 1960년대 후반에 데뷔해 1970년대를 주름잡았고 지금까지 건재한 남진과 나훈아가 있다. 1970~80년대 한국 대중음악계에는 포크와 록이 대유행했는데, 트로트 역시 그 영향을 받아 록 트로트가 탄생했다. 송대관의 〈해 뜰 날〉,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 최병걸의 〈난 정말 몰랐었네〉, 윤수일(과 솜사탕)의 〈사랑만은 않겠어요〉 등이다. 그런가 하면 두 여성 트로트 가수가 국민 트로트도 내보였으니 심수봉의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와 김수희의 〈남행열차〉다.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까지의 가요계에서 김연자, 주현미로 상징되는 ‘트로트 메들리’, 그리고 현철, 송대관, 태진아, 설운도의 ‘트로트 4인방’을 빼놓을 수 없다. 점점 흥겨워지기는 했으나, ‘성인’이 즐기는 ‘유흥’의 노래로 한정되던 트로트가 다시 전 세대가 즐기는 노래가 된 것은 장윤정이 〈어머나〉를 들고 나온 2000년대 들어서다. 10대들은 아이돌 멤버들이 부르는 트로트를 같이 불렀고, 노년 세대는 〈내 나이가 어때서〉라며 〈백세인생〉을 노래했다. 그렇게 세력을 넓혀가던 트로트가 ‘미스트롯’ 진 송가인과 ‘미스터트롯 7인방’에서 폭발했다 할 것이다. 이쯤 되니 대한민국 모든 세대가, 멀고 가까움이 있을 뿐 트로트의 자장 안에서 삶을 보내고 있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과연 이 모든 노래들, 록 트로트라느니 재즈 트로트라느니 댄스 트로트라는 이름을 마구 붙일 수 있는 이 노래들이 과연 하나의 갈래라고 할 수 있을지에 또 의문이 생긴다. 저자는 바로 이런 다양성, 변신이 가능하다는 것이 트로트의 생명력이라고 단언한다. 다소 유치할 수 있는 트로트의 노랫말에 우리를 달래주는 웃음과 눈물이 함께한다고도 덧붙였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감정 과잉의 고갱이를 보여주는 트로트는, 때로 누군가가 집에서 보내는 일상을 즐거운 시간으로 만들어줄 수 있다. 트로트를 듣고 부르며, 우리는 세대 공감과 소통을 경험하고 정서적 공동체도 회복했다. 단지 그것이 일시적인 현상일지라도, 지금 현재 누군가에게 그 무엇보다 위로가 되는 것은 트로트다.” 5. 본문에서 뽑은 주요 내용 이 책은 전체 3부로 구성되었는데, 제1부 트로트는 왜 천대받게 되었나? 제2부는 사회 변화와 함께한 트로트의 변모. 제3부는 트로트의 세계와 미학을 담았다. 이 중에서 주요 내용을 뽑아 정리했다. 대통령 박정희가 〈동백아가씨〉의 금지에 개입했다는 소문에 대해, 그 시절 청와대 비서관이었던 김두영은 "대통령이 뭐 할 일이 없어서 노래 한 곡 금지하는 데 관여한단 말인가. 실상을 너무 모르는 백면서생들의 탁상공론이다”라고 일축했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초기 트로트의 음악적 전형을 보여주는 〈목포의 눈물〉이 나올 당시 음반 가사지에는 제목 위에 ‘지방 신민요’라 적혀 있었다는 것이다. 음악적으로 새로운 형식임에도, 그 노랫말로 인해서 ‘신민요’로 불리기도 했던 정황을 포착할 수 있다. 그렇게 본다면 트로트는 비교적 이른 시기에 토착화에 성공한 갈래였다 할 수 있다. 그런데 당시 이국성을 표출한 노래들이 등장했던 것은 정치적 상황과도 관련이 있다. 검열이 심해지고 그때마다 불려 다니는 것에 염증을 느낀 많은 작사가와 작곡가가 정치와 무관한 이국적인 노래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1980년대 버스를 탄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기억할 것이다. 얼마나 많은 버스 운전사들이 트로트 메들리에 빠져 있었는지를 말이다. 신나고 경쾌한 리듬에 친숙한 노랫말과 선율을 얹은 트로트 메들리는 졸음을 쫓고 힘내서 운전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네 박자〉를 작사한 김동찬의 말에 따르면, 〈네 박자〉는 ‘트로트의, 트로트에 의한, 트로트를 위한’ 노래라고 한다. 트로트를 무시하고 천대하는 사람들에 대한 일종의 반항으로 만든 노래가 〈네 박자〉였다. 2000년대 이후의 트로트에서는 비극적 낭만성보다 희극적 유희성이 강조되는 측면이 높았다. 일상어나 비속어가 등장하고 의성어와 의태어 등도 자유롭게 사용되었다. 예를 들어, 박현빈의 〈샤방샤방〉 〈곤드레만드레〉 〈빠라빠빠〉 같은 노래에서 우리는 다양한 의성어와 의태어를 만날 수 있다. 이러한 음성상징어들을 반복적으로 사용하여 노래의 재미와 유희성을 더한다. 그러고 보면 트로트의 흡수력과 포용력은 요즘 말로 ‘갑’이다. 모방과 복제, 갱신, 변신, 변모 등을 통해 끝없이 달라진다. 트로트가 계속 달라진다는 것은 머무르지 않고 흐른다는 것이고, 흐른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이다. 박물관의 박제가 아니다. 끝없는 핍박에도 트로트가 살아남을 수 있는 것, 변신과 포용력이 바로 트로트의 힘이다. 누군가는 여기저기 할 것 없이 TV에서 온통 트로트만 나온다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까지 트로트가 받았던 오해와 편견, 그 속의 핍박과 설움을 감안하면 지금 트로트의 열풍을 좀 참아주어도 되지 않을까 싶다. 영원한 것은 없을 테니, 언제까지나 트로트의 열풍이 계속되지도 않을 것이다. 6. 대중음악사학자 지은이 장유정 2004년에 서울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일제강점기 한국 대중가요 연구—유성기 음반 자료를 중심으로」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2009년에 「유재하론—사랑, 그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라는 평론으로 인천문화재단 주최 ‘플랫폼문화비평상’ 음악 부문상을 수상했다. 2017년부터 본격적으로 강연과 라이브 공연을 결합한 ‘렉처 콘서트(Lecture Concert)’를 하며 《장유정이 부르는 모던 조선: 1930년대 재즈송》(2013년)과 《경성야행(京城夜行)》(2020년)이라는 두 장의 정규 음반도 발매했다. 현재 단국대학교 자유교양대학 교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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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기획연재 ‘박상진의 한류이야기’ 집필 확정박상진 동국대학교 한국음악과 명예교수가 본지의 새로운 기획 코너 ‘박상진의 한류이야기’ 집필을 맡으며 편집부 초청에 의해 방문했다. 박 교수는 현재 국악계 전 분야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북5도청 무형문화재위원, 한국예술문화콘텐츠연구원 원장, 한국동양예술학회 전 회장, 동국국악예술단 단장 겸 상임지휘자 등 이론과 실무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특히 박 교수는 2013년 논문 '일본 엔카와 한국의 트로트 비교연구'를 발표하여 "국악·트로트, 일본 엔카가 베꼈다”라는 언론의 반응으로 화제를 낳았다. 이어 2014년에는 논문 '한류 콘텐츠를 위한 정책방향 연구'을 발표하여 "싸이의 글로벌 히트곡 ‘강남스타일’의 뿌리는 국악이라는 증거 논문으로 입증”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같은 박 교수의 역량을 본지 독자들과 함께 하고자 제안하여 연재물 집필에 확답을 받은 것이다. 박교수는 "두 편의 논문에는 우리 국악과 대중가요, 특히 한일음악교류사에 논쟁적인 이야기가 담겨있다. 이를 국악인 독자들과 차근히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으니,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고 수락을 했다. 이 번 기획은 정문교 前신나라 사장의 자문에 의한 것이다. <박상진의 한류이야기>는 4월부터 시작된다. 독자들의 많은 관심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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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 정창관의 신보유람 28정창관/한국고음반연구회 부회장 요즘 트롯 경연대회에 어린 학생들이 참가하는 것을 보면 필자는 우려스럽다. 저 장면을 보고 많은 어린 학생들이 따라 할까 봐 걱정스러운 것이다. 나이에 맞게 그 세대들이 즐길 수 있는 음악이 있어야 한다. 민요도 마찬가지이다. 어린이들에게는 어른들이 부르는 민요보다 또래의 어린이가 부르는 민요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즐길 수 있고, 쉽게 따라 부를 수도 있는 것이다. 이 음반은 초등학교 4학년 학생이 부른 민요 6곡이다. 스승인 전병훈 소리꾼은 7세 때 <경기 12잡가>(2 CD) 음반을 출반한 적이 있다. 그런 경험이 있기에 제자의 음반 출반을 적극적으로 권장한 결과로 보인다. 본 음반 소개는 필자가 음반의 해설서에 쓴 격려의 글로 대신한다. 민요는 우리의 살아온 모습과 과정이 노래의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민요는 한 지역에서 비전문가가 자연스럽게 부르는 토속민요(향토민요)와 넓은 지역에서 전문 소리꾼에 의해 세련되게 부르는 통속민요로 나누기도 한다. 민요는 국악에서 가장 사랑받는 장르로 국악 음반 중에서 제일 많이 출반된 장르가 민요이다. 1896년 7월 24일 우리 민족이 최초로 에디슨 원통 음반에 담은 노래도 민요이다. 일제강점기부터 수많은 소리꾼이 음반에 민요를 담아 지금에 전하고 있다. 1987년 3월 SKC에서 국악 CD 음반이 처음 나타난 이후로 6.000매가 넘는 국악 음반이 출반되었는데 그 중에서 20%가 민요 음반이다. 민요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사랑을 받아왔는데 유독 어린이들이 부르는 민요 음반은 귀하다. 어린이에게 민요는 동요라는 장르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민요라는 이름으로 만나기는 어려웠다. 얼마 전 전병훈 소리꾼으로부터 초등학교 학생들이 민요음반을 출반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필요하고, 대견하고, 기대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 중 한 어린이가 정아인 학생이다. 태어날 때 우는 소리가 너무 우렁차서 부모님이 국악을 시키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6살에 경기민요를 배우기 시작하여 지금은 전병훈 소리꾼에게 민요를 배우고 있다. 이번에 담은 민요는 ‘노랫가락’, ‘청춘가’, ‘태평가’, ‘풍년가’, ‘매화타령’, ‘는실타령’, 6곡이다. 반주는 경기음악연구회에서 어린이들이 쉽게 부를 수 있도록 편곡한 것이다. 이제 시작이다. 어릴 적에 출반한 한 장의 음반은 소리꾼이 그 여정을 시작하는 공식적인 출발점으로 한 평생 자기를 돌아보는 기억의 시작점이 될 것이다. 전통을 지키고 싶다는 소리꾼 아인 이의 꿈이 기필코 실현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기를 바라며, 음반 판매의 수익금을 국악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기부한다고 하니 기특하기도 하다. 미래가 밝게 빛나는 모습을 의미하는 음반 제목 ‘전도양양’(前途 洋洋), 전도양양한 아인 이의 음반 출반을 격려하는 바이다. 어린이들에게는 자기 또래 어린이들이 부르는 민요를 들려줘야 한다. 그 음반이 이 음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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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악원 무용단 예술감독에 유정숙씨 임명국립국악원(원장 임재원)은 무용단 예술감독에 유정숙씨를 임명했다. 신임 예술감독 임기는 2021년 3월 12일부터 2023년 3월 11일까지 2년간이다. 유정숙신임 예술감독은 한성대학교 무용학과 학사를 마치고, 이화여대에서 체육교육과 석사 학위를, 단국대학교에서 체육학과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1985년부터 1987년까지 국립국악원 무용단에서 단원 생활을 하였으며, 무용역사기록학회 부회장, 명작무협동조합 이사장, 국가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보존회 부회장, 사)아악일무보존회 상임이사 등의 요직을 지내며 한국 무용의 발전에 중추적인 역할을 다하였다. 국가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악(일무)과 제92호 태평무를 이수하였다. 특히, 효산예술원과 대한민국 전통예술전승원의 예술감독으로 <화약조비전>, <춤 전승전> 등 다양한 작품을 기획하고 안무하여 무대에 올리는 등 민간에서는 쉽지 않은 공연 작업을 지속하며 한국 춤의 계승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2018년부터 현재까지 문화재청 문화재 전문위원과 위원직을 수행하며 한국 무용계의 목소리를 대변해 왔다. 유정숙 예술감독은 "국립국악원 무용단은 우리 춤의 원칙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원칙이 튼튼히 서는 무용단을 만들어 나가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또한 "우리의 정재(呈才)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고, 아직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은 <춘앵전>이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될 수 있도록 앞장서겠다.”는 굳은 의지를 피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