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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도아리랑의 세계

2010-05-13 10:06:49, Hit : 1867
      http://kukak21.com

●진도아리랑의 세계
-소리판, 노리판을 여는 소리-
아리랑은 곡명에서 ‘아리랑’을 쓰거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나 ‘아리 아리랑····’ 또는 ‘아라리가 났네’를 여음(후렴)으로 쓰는 노래로서, 곡명 아리랑은 여기에서 연유했다. 이를 정체성으로 한 노래군을 아리랑이라고 한다. 이런 노래 중 서울·경기의 본조아리랑, 강원도의 정선아리랑, 경상도의 밀양아리랑 그리고 호남의 진도아리랑을 우리나라 ‘4대 아리랑’이라고 한다. 이는 우리가 자연스럽게 부여한 대표성이다. 이들 네 가지 아리랑의 후렴은 다음과 같다.

○ 정선아라리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고개를 나를 넘겨 주오

○서울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밀양아리랑
   아리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어절씨구 아라리가 났다

○진도아리랑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모든 아리랑의 후렴(고딕체)에서 ‘아라리’가 후렴소(素)로 존재하여 동일체의 요소임을 알 수 있다. 이를 굳이 문화전파론 또는 진화론의 결과로 보거나 아미면 자연스런 인간 행위의 보편적 현상으로 보거나 간에 시공을 고려한다면 주목되는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이는 ‘아라리’를 모든 아리랑이 담고 있어 이것이 어원의 최소 실사(實辭)이며, 동시에 동일성의 단서, 즉 DNA임을 알게 한다. 결국 아리랑이란 ‘아리랑’ 또는 ‘아라리’를 함유한 2행의 후렴 여부가 장르적 정체성을 확정 시켜주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진도아리랑은 흥과 멋이 흥건한 육자백이토리(idiom)에, 남도의 섬들을 전승지로
하고, 주로 여성들이 부른다는 점에서 다른 지역 아리랑이나 시속의 잡가들과 변별성을
지닌다. 진도아리랑은 남도음악권 중 무악(巫樂)에 기반을 두고 있는 음악으로,
매개자(무당/샤만)가 춤과 노래로 접신하여 황홀경 또는 무아지경에서 신을 즐겁게 하여
살아있는 이들의 바램을 성취시켜려는 과정에서 연주되는 음악이다. 그러므로 이 무악은
즉흥성과 신명성이 그 생성구조를 이룬다. 이는 많은 아리랑 중에 진도아리랑만의 속성이다. 이런 사실을 바탕으로 남도음악, 그 중에서도 전라도의 잡가(雜歌) 진도아리랑에 한정해
그 위상을 정리한다면, 우선 다음의 세 가지로 요약을 할 수 있다.
그 하나는 남도에서 기능을 초월하여 어느 소리판에서도 불린다는 ‘소리의 개방성’,
둘은 화자(話者)가 주로 여성이라는 ‘사설의 여성성’이고, 셋은 남도음악의 기층인
‘무악적 육자배기조의 음악성’을 들 수 있다.
진도에서 소리판이나 놀이판을 열고 닫는 소리는 거의 진도아리랑이다.
시작과 휘날레로 장식된다.
진도의 ‘노래사랑’은 진도군 지산면 소포리의 70년대 ‘노래방’의 존재인데,
이는  우리나라 ‘노래방 역사’라는 사실에서 상징적으로 축출된다. 이렇게 노래 부르기가
생활의 일부라는 점에서 일상적이며, 다분히 즉흥적인데 당연히 진도아리랑으로
노래판의 장을 열고 닫았다.  
연구가 박병훈선생 조사(90년대 진도군 의신면 돈지리)의 경우, 이 최초의 노래방
소리판의 구성은 적게는 서너명으로 시작해서 예닐곱 명이 무반주로, 크게는  20여명
내외로 남성이 북 반주를 맡는 판이다. 사설을 매기는 선소리는 주로 여성들이 맡고,
고정적인 후렴인 뒷소리는 모두가 함께 참여한다.
서너 순배 정도는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사설로 불려진다. 예컨대 진도아리랑의
제1절로 불려지는 다음의 사설,

“문경 새재는 몇 구비냐/ 구부야 구부구부가 눈물이로구나”

로 시작되고, 초성 좋고 비위살이 좋은 이가 자극적인 사설이나 재미있는 창작 사설을 불러
웃음판을 만들면 이내 춤이 곁들여지고 다음과 같은 걸판진 사설이 이어진다.

“베개가 낱거들랑 내팔을 베고/ 아실아실 춥거들랑 내품에 들게”

이런 남녀 간의 정분 얘기는 성능력이 여법하지 못한 남정네나 그의 어머니(시어머니)
또는 무능한 시아버지를 비아냥하는 사설로 이어져 왁자자껄한 놀이판으로 변해간다.
이때는 메기는 사설을 좌중이 돌아가며 주고받는 돌림노래 윤창(輪唱)이 된다.
이 윤창은 즉흥성의 폭을 넓여 노래 부르기를 놀이로 전이시킨다. 노래로는  
긴장을 풀게 하고, 사설을 주고받게하여 놀이로 충족시키는 ‘노래와 놀이판’이 되게 한 것이다.

●진도아리랑의 역사
진도아리랑의 역사는 잡가(雜歌)가 전국적 보편화가 이뤄지는 1900년대 초 남도지역에서
불려지기 시작한 것으로 부터이다. 이때는 ‘진도’아리랑으로 불려지지 않고  ‘남도’아리랑 등
다르게도 불렸는데, 당시 유행하던 구아리랑(잦은아리랑),
즉 1896년 선교사 H. B. 헐버트가 채보한 <A-RA-RUNG>류에서 파생된 것이다.
황현의『매천야록』1894년 정월 기사에서 고종과 명성후가 평복을 하고 광대들이 부르는
‘아리랑타령’을 즐겼다고 한 바로 그 아리랑이다.
이 구아리랑의 대표 사설은 오늘의 문경아리랑 사설 제1절과 동일한 것이다.

문경새재 박달 나무/ 홍두깨 방망이로 다나간다

이 사설은 경복궁 중수 공사 7년간 삼남지방에서 올라오는 공출 물산이 통과하고  
반강제로 끄려 오는 부역군들의 원한이 서린 문경새재, 그리고 문경의 특산품인 박달나무가
허수이 공사장 공구 자루로 일시에 대량으로 베어져 나가는 상실감을 노래한 것이다.
이 사설이 당시 민중들에게 공감을 얻어 널리 불려지자 이에서 일부를 수용하여 오늘의
진도아리랑 제1절인 사설로 전승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국악학자 장사훈이
“진도아리랑 첫 마루에서도 이 노래를 부르는데, 비록 곡조는 한 계통이라 할지라도,
그 이름에서 볼 때 ‘문경새재’의 것이 진도아리랑으로 옮아 간 것으로 보는 것이 옳지 않을까?”라고 해서 이미 지적한바가 있다. 이 사설에 이어 당시 유행 장르인 잡가적인 세태를
노래한 다음과 같은 사설이 덧붙여져 불려졌다.

저놈의 계집에 눈매를보소
곁눈은 감고서 아이고 속눈떴네
아리아리랑 아리아리랑 아리랑이 났네
아리랑응 어- 응 아르랑이 났네

1911년 총독부가 조사한 자료 중 김제공립보통학교(金提公立普通學校) 교사가 제보하여 전해지는 이 사설은 오늘의 진도아리랑 형태와는 일치하지 않으나 특징적인후렴 소(素)인
‘아리랑응 어-응’을 포함하고 있어 주목하게 한다. 특히 후렴의 고딕체에서 확인되듯 명칭도
‘아리랑’과 ‘아르랑’이란 음가(音價)로 혼용되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과 같은 일반론과는 다르게 진도아리랑의 역사에 대해서는 진도 지역 나름의
주장이 전해지고 있다. 즉, 동아일보 1936년 1월 1일자 <무녀관노 부락, 엄격한 생활규율>
을 근거로 진도는 율향(律鄕)으로 370여년 전 무녀관로(巫女官奴) 부락인 성내리에
<장락청>(獎樂廳)을 두었을 만큼 무악이 성한 곳이라 오래 전부터 형성, 불려왔고,
이 증거가 『매천야록』의 ‘아리랑타령’(阿里娘打令)으로, 바로 진도아리랑을 이르는
것이라고 하는 주장이다. 매우 적극적인 향토애적 주장인데, 이보다는 후기 상황의 주장도
있다. 그것은 진도 출신 대금 명인 박종기(1879~1939)가 구성했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은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많은 이들이 동의하고 있는 주장이다.
이는 다음의 두 가지로 나뉘는데, 그 하나는 1920년대 “박종기·박석기·박석주 등
당시 활동하던 음악인들이 진도의 신청(神廳)에서 예기조합(藝妓組合)을 설립하여 후진을
양성 할 때 불려오던 ‘산아지타령’에서 함배(박자)와 째(制曲)를 정리하고 이를 박종기가
‘진도아리랑’이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하는 주장이다.
진도의 전 문화원장인 조담환·박병훈 원장이 주로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원로 사진작가 정범태가 1999년 명창 김소희의 증언을 따라 자신의 저서
『명인명창』에서 주장한 다음의 내용이다.

“박종기가 OK레코드사와 콜롬비아사에서 두 번이나 반주 녹음한 진도아리랑은 박종기의
창작으로 알려져 있다. 판소리 인간문화재였던 김소희 증언에 의하면 진도아리랑은 음반을
취입하러 일본으로 가는 배안에서 작곡했다고 하는데 아직 논란의 여지가 많으나 원래
아롱타령으로 불려지는 전통민요를 박종기가 새롭게 편곡했다는 설이 진도지방에서
유력한 것으로 보아 박종기의 창작으로 보는 것이 옳다고 하겠다.”

이 주장은 박종기와 김소희가 일본에 레코드를 취입하러 가는 선상에서
‘가는 김에 진도아리랑을 짜서 취입하자’며 박종기가 대금으로 구성하여 김소희가 불렀다는
에피소드(마치 박영효가 일본행 배안에서 태극기를 고안 했다는 예처럼)와 부합이 된다.
이상의 주장에서 차이가 있긴 하지만, 오늘의 형태로 정형화 되는데는 박종기의 영향력이
중심에 있었고, 그 시기는 이르면 1920년대 초, 늦으면 음반 취입이  반드시 일본에서만
가능하여 음악인들이 도일한 최종 시점인 1934년이 된다.
그런데 이 형성 시기를 추정하는데 유용한 자료가 있다.
그것은 1930년 김지연이 조선총독부 기관지《조선》에 쓴 <조선민요 아리랑>
(상·하)이란 기사인데, 여기에서는 17종의 아리랑을 처음으로 정리, 특화 하였는데
여기에는 ‘진도아리랑’이 포함되지 않았다. 이는 적어도 1930년도 전후에는 진도아리랑이
형성되었다하더라도 유행은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록상으로 진도아리랑 상황은 1930년 중반부터 확인이 된다. 우선 방송 상황인데,
1934년 11월 10일 박종기의 대금연주로 ‘남도아리랑’이란 이름으로 방송되었고,
3일 후인 13일에는 ①아리랑 ②景福宮아리랑 ③元山아리랑 ④密陽아리랑 ⑤江原道아리랑
⑥江原道메나리아리랑과 함께 ‘全羅道아리랑’이란 곡명으로 방송(최수성 반주, 김학선 소리) 된 사실이다. 이는 남도아리랑·전라도아리랑·그리고 진도아리랑이란
동곡이명(同曲異名)으로 불려온 것이다.
그리고 1935년 7월에는 <조선일보> 주관의 <독자위안회>라는 공연에서 ‘名物 珍島아리랑 만장의 갈채가 끊일 줄 몰라’라는 제하로 알려지는데, 여기에서 ‘우리의 고전민요
무용인 진도아리랑’이라고 기술하어 있어 경성의 중요 공연에서 연주 될 만큼 명성을 떨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현상은 진도에서의 상황에서도 확인이 되는데,
<계몽극단>과 <신극단> 공연에서 항일적 소재로 기능을 할 만큼 공동체에 일반화 되었다.
예컨데 ‘신극단사건’(新劇團 事件/조선일보, 1935. 07. 14) 등에서 알려지기로는  
진도아리랑이 ‘거꾸로아리랑’과 같은 다음과 같은 ‘노가바’(노래 가사 바꿔 부르기)되기도
했다. 극단의 작품에서 불렸다는 가사는,

“일본대판 딸각바리 왜놈의새ㄲ ㅣ들/ 총칼을 찼다고 자랑을 마라
이순신 거북선이 두둥실 떠가면/ 죽다남은 종자 새ㄲ ㅣ들 몰살을 하리라”
이런 가사를 불러야 하는데, 당시는 일본인 형사가 임검석에서 감시를 하고 있어 부득이 가사를 거꾸로해서 불러야 했다.
“판대본일 리바각딸 들끼새의놈왜 /고다찼을칼총 라마을랑자
이선북거신순이 면가떠실둥두/ 들끼새은 남다죽 라리하을살몰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났네/ 아리랑 응 응 응 아라리가 낳네“

이 가사를 무대와 객석에서 합창을 하는데, 임석 경관은 멋도 모르고 후렴을 따라하며 ‘
조선 아리랑 참 재미있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무사히 공연을 마쳤는데, 며칠 후
이것이 발각되어 배우들이 피체되었다는 것이 이 사건의 진상이다.  
이런 진도아리랑의 여세는 남도의 여러 지역으로 확산되었다. 이런 확산 현상은  
새로운 각편(各篇·verion·딸림형)들도 확인되는데, 그 하나가 진도군 속도(屬島) 거차도의
이름을 단 ‘거차도아리랑’의 존재가 그것이다. <조선일보> 1939년 9월 29일자에는
다음의 두 수가 수록되어 있다.

“열두시에 오라고 우데마끼를 주었더니/ 일이삼사를 몰라서 새로 한시에 왔냐
아리랑리랑 시리시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 응 응 아라리가 났네

구장네 방에는 나지오(라디오)가 노는데/ 오는 말은 있어도 가는 말은 없다네
아리랑리랑 시리시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 응 응 아라리가 났네”

이 사설의 말미에는 박종기의 대금 연주가 ‘세계 제일 소리’라고 부기하고 있어
이것이  진도아리랑에서 영향 받은 각편임을 확인시켜 준다.
이렇게 진도아리랑은 전승아리랑을 진도 지역음악인이 재구성한 뛰어난 ‘창작된 민요’이다.
이런 사정으로 남도 특성인 육자배조의 전형으로 구성되어 남도적인 흥과 멋을 드러내고 있다. 이는 남도 지역 뿐 아니라 전국적인 분포를 갖게 하였다. 음악성에서 육자배기조의
흥과 멋, 우렴에서 ‘응-응-응’의 요소, 그리고 여성적인 사설이 진도아리랑의 정체성의
요소이다.  

●진도아리랑 대표 사설

  후렴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문경새재는 웬 고갠가
  구부야 구부구부가 눈물이난다
    
  문경새재는 왠 고갠가
  넘어올적 넘어갈적 눈물이로구나

  세월아 네월아 오고가지를 마라
  아까운 이내청춘 다늙어간다

  바람은 손없어도 나무를흔들고
  이몸은 팔이 있어도 님을못잡누나

  국화는 피어서 서릿발에 울고요
  가시낸 자라서 임의 손에우네요  

오라고 오라는데야 야밤에가고
동네라 술집은 대낮에나가자

중신애비 죽으면 청개구리가되고
요내 나는 죽으면 꽃배암될란다

씨엄씨 씨엄씨 강짜을 말거라
니 자식 여법하면 내가밤마실 갈까나

산천이 높아야 꼬랑도 깊으제
조고마한 여자 속이 얼매나깊으냐

알그닥 짤그닥 짜던 베는
언제나 다짜고 친정에럴 갈거나

야답세 두번걸이 열두폭 치매
신작로 다 씰고 임 마중얼 가네

노다 가소 노다나 가소
저달이 떴다 지도록 노다나가세

세월아 네월아 오고가지를 마라
아까운 이내 청춘 다 늙어간다

바람은 손 없어도 나무를 흔들고
이 몸은 팔이 있어도 님을못 잡는구나

국화는 피어서 서릿발에울고요
가시낸 자라서 임의 손에우네요  

저기가는 저 처녀 엎으러나 지거라
일쎄나 주는 듯이 보듬어나 보자

보고도 못 먹는 건 그림에 떡이요
보고도 못 사는 건 남의 님이로세

가는님 허리를 아드득이 잡고
하룻밤만 자고 가라 통사정을하네

오다가 가다가 만나는 임아
손목이 끊어져도 나는 못놓겠다

뼘가웃 이불비게 둘이 덥고자도
얼마나 다정하여 뼘가웃이 남았네

니가 날만치 자신이 있담사
가사덤풀 천리라도 맨발로 오니라

니가 잘라 내가 잘라 천하일색이드냐
내 눈이 어두워서 반달이로구나

논두렁 개구리는 뱜에 간장을 녹이고
밭고랑 저 가시나는 내 간장을 녹이네

담 넘어 갈 때는 강아지가 짖고
님에 품에 등께로 새벽 닭이우네

임이 얼마나 임 다움사
한비개 둘이 비고 등돌려 눌까

맹감은 고와도 가시덤풀에 놀고
유자는 얽어도 한량 손에 노네

빨래터 좋아서 빨래하러 갔더니
못된 놈 만나서 돌 비게를 비었네

한국 최남단 보배섬 진도
인심이 좋아서 살기가 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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