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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호규 - 국내최초 국악기 백화점 조남양 사장

2006-09-08 11:58:23, Hit : 80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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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최초 국악기 백화점 조 남 양 사장

창덕궁 돈화문 앞에서 종로 3가 네거리 까지는 예전에 대궐길이라고 불리었던 지역으로 조선시대부터 관혼상 제용 각종 도구와 북, 장구, 꽹과리 등을 빌려주던 세물전이 있었고 노래하는 가인, 춤추던 명인들이 인근에 많이 살던 곳이다. 일제 강점기에서 해방 과 더불어 창덕궁 앞에 새로 새긴 국립국악원, 국악학교을 중심으로 명인 명창들도 주변에 많이 기거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이 거리는 명실공히 국악 의 거리로 칭하게 됐다. 이후 이 거리는 국악로라고도 불러지는데 거리변에는 10여개의 국악기 상가, 국악학원 그리고 한복집들이 몰려있다.

국내 최초 국악기 백화점을 지향하는 양지국악기도 이 거리에 있다. 10여전 양지국악사을 설립하고 문을 열때도 다른 국악사에 비해서 매장의 크기와 다 양한 상품, 저렴한 가격으로 많은 학생들과 국악학원에서 찾았다. 특히 지리적으로도 좋은 가게 위치로 익히 국악계에 알려져 졌다. 그런 양지국악사 가 바로 옆에 있던 미스타리 의상실이 이사 가면서 빈 가게터를 인수하여 확장 오픈했다. 새로 단장하여 오픈된 매장은 국악기 전시장으로 사용된다.

그동안 양지국악사는 내, 외형적으로 엄청난 발전을 했다. 여기까지 성공 할 수 있었던 것은 조남양 사장의 장인정신과 부지런함, 그리고 저렴한 가격이 지금의 양지국악기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조남양 사장은 국악사를 개원하기 전에는 무대소품 일을 했다고 한다. 주로 국립극장에 소품을 납품했고,한국무용, 고전, 역사 드라마. 영화 등 쪽을 전문적으로 일했다. 소품에 중요도는 작품에 가치성을 좌우 할 수 있는 중요한 일로 매일 밤샘을 하기가 예사였다. 특히 역사물이 많은 것은 고증을 들어야 되고 지식이 있어야 하는데 일에 진행이 안되는 날에는 고증 선생님들을 찾아다니면서 낮에 소품에 대해 조언을 듣고 밤에 직접적으로 소품제작을 했다. 그렇게 하나 하나 정성을 들여 납품을 하고 작품이 무대에 올라가서 성공하면 그 기쁨은 그동안 고생하면서 소품을 제작했던 아픔을 잊는다고 한다.

조남양 사장이 악기사를 만들게 된 동기도 단순했다. 소품을 하는 동안 여러 단체 선생들에게 심부름처럼 악기를 조달하게 되고 여러 가지의 소품이나 악기 중에 반품을 받는 것이 나오면 그 물품을 고스란히 집에 보관해야 하는입장이었다. 조남양 사장은 소품작업장만 가지고 제작하면서 당시 문공부 산하에 관납을 병행했기에 물품을 반품받으면 보관이 곤란한 상태였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면서 쌓인 국악기로 인해 곤란했고, 국악기에 대한 관심이 생기면서 소품제작으로 쌓인 기술을 바탕으로 무엇이듯지 만들수 있다는 자신감 하나로 종로 3가 국악로에 국악사를 개업 할 수 있었다.

조남양 사장은 개업 후 우리의 옛 악기들은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그 악기에 대한 옛사람들의 생각은 어떠했을까. 우리의 전통 악기들은 대부분이 일상에서 구하기 쉬운 재료들로 만들어졌으며, 가능한 인위적 가공을 배제한채 자연스럽고 꾸밈없는 소리를 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국악기는 한국인이 자신들의 마음을 표현하는 문화매체이자 상징이며, 고유한 심미의식의 결정체로 우리의 악기를 이해한다는 것은 우리 문화의 특질을 파악할 수 있는 열쇠가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많은 날들을 고민했다. 이러한 고민들은 실천에 옮겨고, 고가였던 우리 악기들을 우리 국민이라면 누구도 가질 수 있고 배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악기가격을 낮춰서 판매을 하게 됐다. 이러한 가격은 금새 소문이 나 업계에 퍼졌고, 같은 업계에서는 가격 인하 관계로 많은 지탄을 했다. 그러나 악기를 현실적으로 많이 필요로 하는 국악을 전공하는 학생들과 고객들에게 좋은 평을 받았다. 그러나 이내 주위에서는 가격 인하로 물건이 하품이다는 악소문이 돌았다.

조남양 사장은 이러수록 악기에 대한 투자를 해야 한다면 2001년에 하남시에 종합적인 국악기 생산을 위한 공장을 설립하게 됐고, 악기제작에 필요한 연구와 실험을 통하여 오랜 기간 사용하더라도 습기나 온도 등 외부환경에 그 형태가 변형되지 않고 음색이 변색되는 것을 방지하고, 원래의 풍부한 음색을 지속적으로 유지시킬 수 있는 우수한 국악기를 제작하게 됐다. 이렇게 생산된 각종 개량악기와 북 종류의 대형악기들은 이번에 개장된 매장에 전시하여 누구나 보여 줄 수가 있다.

마지막으로 조남양 사장에게 그 동안 악기를 생산판매하면서 느끼고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질문을 하자. “우선 양지국악사를 사랑해 주시고 늘 관심을 가져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모든 분들을 찾아뵙고 인사를 드릴 수 없어서 이렇게 지면으로나마 인사를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양지국악사에서 제작한 악기는 국내뿐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서도 큰 호응을 얻고 있으며, 국악기의 전통을 고수하면서 한편으로는 양악과 어울릴 수 있는 악기들을 다양하게 연구 개발하고 있습니다. 국악에 대한 자부심으로 악기를 제작하고, 국악의 대중화, 더 나아가서는 국악의 세계화에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는 양지국악사가 되기 위해 항상 노력하고 있습니다. 항상 저렴한 가격, 좋은 품질,차별화된 악기로 고객분들을 찾아 뵙겠습니다.” 한편으로 조남양 사장은 악기에 대해서 너무 쉽게 생각하고 가격만 낮추기를 바라고 있는 점이 아쉽다고한다. 특히 우리국민 모두가 우리 악기에 대해서 자부심을 가지고 사용했으면 하는 바램을 전했다.

성악이든 기악이든 악기가 없으면 존재할수 없다. 악기는 음악의 바탕이라는 것이다. 판소리에도 ‘1고수 2명창’이란 말이 있듯 북의 역할이 중요하고, 민요에는 장구가 필요하고, 풍물굿에선 사물악기가 바탕이 되기도 한다. 김호규 기자 hg1411@kukak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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