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금)
정범태가 밝힌 사진 설명
정범태 선생이 남긴 국악계 에피소드는 끝이 없다. 지난 회에 이어서 이번에도 귀한 에피소드를 소개하기로 한다. 다음은 만정 김소희 선생의 등장에 대한 것으로 12세 때의 일이다. 승주군 낙안면 송만갑 선생 댁에서 소리 공부를 하고 있었다.
# "순천에 협률사가 들어왔다. 당시 협률사에는 정정렬, 이화중선, 박록주 등이 있었는데 순천에서 노래로 낙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그때 이화중선이 송만갑 선생에게 인사를 왔다.
이때 송만갑 얼굴에는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는 듯 회색이 만면했다. 그래서 이화중선이 궁금해서 무슨 말이라고 붙이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요즘 좋은 일이 있다. 보물이 하나 들어왔어’ 송만갑이 입을 열었다.
‘선생님 무슨 좋은 일인데요?’ 이화중선이 선생의 앞에 가서 조바심을 냈다.
송만갑은 말을 할 듯 말 듯 하더니 입을 다물었다. 이화중선은 선생이 그러면 그럴수록 궁금증이 더했다. 이튿날 이화중선이 다 선생에게 물었다.
‘보여주면 달라고 하지 마라.’라고 했고, 이화중선은 ‘절대로 달라고 하지 않을게요.’라고 했다.
선생이 옆방에 대고 누군가를 불렀다. 그러자 모깃소리로 예라고 답하며 나왔다. 볼이 발그레한 소녀였다.
‘아가 단가를 하나 해 봐라’
아가가 단가를 뽑았다. 이화중선을 몇 소절을 지나지 않아 타고남 목이란 것을 알았다. 이화중선이 말했다.
‘선생님 아까 그 약속 못 지킬라요. 내가 데리고 갈라요. 저 주세요.’
이렇게 하여 이화중선이 데리고 서울로 와 지도를 하게 된 애기가 바로 김송희였다.”
이렇게 이화중선의 눈으로 명창의 재목으로 선발된 김소희는 정정렬의 문하를 거쳐 한갑득, 한애순, 박동실 명인 명창을 거쳐 판소리를 취입하여 명창으로 섰다. 목이 좋은 제자를 두는 것이 얼마나 뜻있는 일인가를 알게 하는 에피소드이다. 김소희는 스승들의 소리 중에서 장점만을 자기 것으로 삼아 독특한 소리를 만들어 냈다. 이로써 그의 이런 특징을 ‘섞어제’라고도 하고 ‘만정제’라고도 한다. 제자로는 안숙선, 신영희, 박윤초, 박계향, 성창순, 오정혜 등이 있다.
다음은 일제강점기 동기(童伎)가 머리를 올리는 이야기다. 널리 알려진 이야기는 평양기생 영산홍의 사연이 있는데, 1930년 조흥은행 평양지점 민 두취(전무)가 영산홍의 머리 올린 값을 하기 위해 은행 지점을 냈다는 얘기다. 정 선생은 일반적인 머리 올리는 값을 간단히 정리하였다.
#"일제 때 동기의 머리를 올리는 사람은 대개 큰 부호나 토호, 유지, 조정의 친일파 대감, 도, 평의원 정도는 되어야 머리를 올린다. 동기는 권번에서 머리를 올려 줄 동기를 찾아야 한다. 서방을 얻으면 한 재산을 받는데 이때 그동안 빚진 것을 갚기도 한다. 동기는 서방을 정하고 요리집에 나가는 것이다.”
오늘날에는 이런 경우가 있을 수 없지만 1930년대까지만 해도 동기가 머리를 올리는 것은 다 이런 경우였으니 기생의 운명이었던 것이다. 1930, 40년대 동기가 있어 많은 에피소드를 낳은 요정은 남원의 명문장, 진주의 봉황각, 목포의 청수장, 나주의 영산관, 진주의 서울관이 알려진 곳이고 서울의 명월관, 국일관, 식도원, 천양각을 꼽았다.
1930년대 초 진주 촉석루에서 명창들이 사진을 찍었다. 이 사진은 장소와 시기 정도만 알려졌을 뿐 그 면면을 밝히지 못하고 전해졌다. 1930년대 진주는 한 집 건너 기생집이 많아 명창들이 모여들었다는 얘기의 배경으로, 또한 어떤 유명한 명창이 이 사진 중에 들어 있을 것이란 정도로만 설명되는 사진이었다. 그런데 정범태 선생이 바로 이 사진의 중요 면면들을 밝혀냈다. 조상선(창극), 송만갑(명창), 한성준(고수), 김창룡(명창), 이동백(명창), 오태석(가야금), 정정렬(명창) 등이 함께 찍었다. 이 사진 설명은 1998년 지상을 통해 알렸는데, 정 선생이 이 사진을 소장했던 명창으로부터 확인한 것이다. 이 렇게 정확하게 밝힌 것은 전공을 살린 업적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국악인들과의 교류가 있었기에 가능한 성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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