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금)
한명희/이미시문화서원 좌장
몇 해 전 프랑스 아비뇽 축제 총감독인 다르시에가 방한했었다. 축제 기간에 한국의 전통예술가를 초청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비디오나 실연實演을 통해 정악합주며 무용이며 무속이며 여러 장르를 살펴봤다. 그때 그는 이매방의 승무를 보고, 저것이 어떻게 전통이냐고 했다. 미국의 전위무용가 머스 커닝햄을 능가하는 ‘현대’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진부하리만큼 늘 보는 승무가 아방 가르드적 현대성을 갖췄다니 놀랍기 그지 없었다.
문화가 다르면 미적 안목도 다르고 가치관도 다르다는 사실을 그때처럼 깊이 실감한 적이 없었다. 제 나라에서 홀대받는 국악이 나라 밖에만 나가면 생각외로 상찬賞讚을 받는 이유도 퍼뜩 알만 했다.
그때 일을 계기로 나는 학생이나 후학들에게 소신처럼 되뇌는 말이 있다. 나라 밖의 광활한 세계를 활동무대로 설정하라는 당부가 그것이다. 답답한 동굴 속에만 갇혀서 자기를 알아 달라고 칭얼거릴 일이 아니다. 밖을 보면 쌍수로 환영할 드넓은 무대가 있다. 마침 시대의 조류도 다채로운 개성을 존중하며 다원적인 가치관을 추구하는 세상으로 진입했다. 한국 음악 특성이 세계 속의 개성으로 자리매김될 수 있는 지평과 개연성이 그만큼 확대된 것이다. 야망을 품고 정진하는 이들에게는 정말 신나는 문화 환경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20세기 내내 인도 음악가들이 동양 음악의 대명사인 양 지구촌을 누비고 다녔다. 어려서부터 익힌 공용어인 영어로 자신들의 음악을, 서서히 동양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서구인들에게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다녔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좋은 타산지석他山之石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다기화 되어 가는 국제 상황과 국악의 함수관계가 새삼 머리에 맴돈 것은, 마침 범상치 않은 공연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튼실하게 내실을 다진 인재들의 모임인 ‘한국전통음악연구회’가 세밑에 선보일 창단 음악회가 그것이다.
우선 많은 분야의 단체들이 모여서 하나의 모임체를 구성했다는 점이 각별해 보인다. 중견 연주가들이 무언가 시대적 조류를 실감한 나머지 의기투합된 것만 같아 더욱 기대가 앞선다. 이들의 젊은 패기와 음악적 열정이 하나로 응집되면 국악계에 괄목할 만한 시너지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또한 이들의 예술적 의지가 세계로 분출되면 명실공히 한국 음악계는 새로운 전기를 맞을 것이다.
분명 이 단체는 그렇게 될 소지가 크다고 나는 믿는다. 연합체를 구성한 단체들의 면면을 보아도 그렇고, 또한 그들이 지닌 음악적 기량이나 예술적 의지 또한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뿐만이 아니다. 조직의 성패는 지도자의 역량이 관건인데, 이 연합체를 이끌 최경만 회장의 인생 경륜이나 음악적 성취는 세상이 다 인정하는 바이니 더욱 그러하다.
최경만 명인은 민속음악의 산실이라고 할 국악예술학교 출신이다. 한두 살 선후배 관계이긴 하지만 훗날 국악계 중진들로 활동하고 있는 박범훈 전 중앙대 총장과 최태현 교수, 김영재 전 한예종 전통예술원 교수 등이 모두 비슷한 세대의 재사들이다.
최 명인의 전공은 피리이고 경기토리의 대가였던 고 지영희 선생의 수제자인데, 민속악 계통의 피리 연주에는 군계일학으로 뛰어난 명불허전의 고수다. 내가 국립국악원장으로 재직 당시 중평衆評에 의해 특채를 한 단원은 마당놀이의 지운하와 피리의 최경만, 딱 두 사람 명인뿐이다.
한편 최경만 명인의 배필 역시 같은 국악원 연주단원인 서도소리의 대가 유지숙 명창이다. 그러고 보니 최 명인 부부는 경서도 소리의 합작품인 셈이다. 통일의 물꼬도 이곳에서 발원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본 연재는 이지출판사 출간 '한악계의 별들'에서 발췌하여 게재한다. 이를 허락해주신 출판사와 필자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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