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09 (화)

  • 맑음속초12.3℃
  • 맑음10.8℃
  • 맑음철원8.6℃
  • 맑음동두천7.5℃
  • 맑음파주6.0℃
  • 구름많음대관령5.4℃
  • 맑음백령도5.9℃
  • 구름많음북강릉12.5℃
  • 구름많음강릉13.7℃
  • 구름많음동해10.5℃
  • 구름조금서울7.3℃
  • 구름많음인천5.9℃
  • 구름많음원주10.8℃
  • 구름많음울릉도7.5℃
  • 구름많음수원6.4℃
  • 구름많음영월10.8℃
  • 구름많음충주9.3℃
  • 구름많음서산6.5℃
  • 구름많음울진11.7℃
  • 구름많음청주9.6℃
  • 구름많음대전9.9℃
  • 구름많음추풍령9.6℃
  • 구름조금안동11.5℃
  • 구름많음상주11.0℃
  • 구름많음포항13.3℃
  • 구름조금군산7.8℃
  • 구름많음대구13.5℃
  • 구름많음전주8.3℃
  • 구름많음울산10.7℃
  • 흐림창원10.5℃
  • 구름많음광주9.6℃
  • 흐림부산10.6℃
  • 구름많음통영10.5℃
  • 구름많음목포7.0℃
  • 구름조금여수10.1℃
  • 구름조금흑산도6.8℃
  • 구름조금완도9.3℃
  • 구름많음고창6.2℃
  • 구름많음순천11.1℃
  • 구름많음홍성(예)8.6℃
  • 구름많음제주9.9℃
  • 구름조금고산9.4℃
  • 구름조금성산9.0℃
  • 구름조금서귀포11.8℃
  • 흐림진주11.1℃
  • 맑음강화5.1℃
  • 구름많음양평10.4℃
  • 구름많음이천8.8℃
  • 맑음인제8.4℃
  • 구름조금홍천9.6℃
  • 구름많음태백8.1℃
  • 구름많음정선군10.2℃
  • 구름많음제천9.5℃
  • 구름많음보은8.2℃
  • 구름많음천안8.3℃
  • 구름조금보령6.6℃
  • 구름조금부여9.6℃
  • 구름많음금산9.9℃
  • 구름조금9.3℃
  • 구름조금부안7.0℃
  • 구름많음임실7.8℃
  • 구름많음정읍7.1℃
  • 구름많음남원9.5℃
  • 구름많음장수8.1℃
  • 구름많음고창군8.0℃
  • 구름많음영광군6.5℃
  • 구름많음김해시10.3℃
  • 구름많음순창군8.9℃
  • 흐림북창원12.0℃
  • 구름많음양산시10.8℃
  • 구름많음보성군10.7℃
  • 구름많음강진군9.3℃
  • 구름많음장흥9.5℃
  • 구름많음해남7.2℃
  • 구름많음고흥10.8℃
  • 구름많음의령군12.5℃
  • 구름많음함양군11.8℃
  • 구름많음광양시10.8℃
  • 구름조금진도군6.8℃
  • 구름많음봉화8.0℃
  • 흐림영주10.5℃
  • 구름많음문경10.2℃
  • 구름많음청송군9.5℃
  • 구름많음영덕11.6℃
  • 구름많음의성11.8℃
  • 구름조금구미11.8℃
  • 구름조금영천10.9℃
  • 구름많음경주시10.3℃
  • 구름많음거창12.1℃
  • 구름많음합천12.8℃
  • 구름많음밀양11.4℃
  • 구름많음산청12.8℃
  • 구름많음거제10.1℃
  • 구름많음남해10.0℃
기상청 제공
국악신문이 걸어 온 길 22
  • 해당된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악신문이 걸어 온 길 22

전문지로서의 편집진용 확립(3)


세계적 사진가 정범태

 

지난 회 편집고문 사진작가 정범태(鄭範泰)’는 국악신문의 편집진용이 갖춰지는 상황과 그 기여 인물의 한 분으로서 정범태 고문을 언급하였다. 그런데 한 독자로부터 "고문으로서도 기억될 분이지만 사진작가로서의 정선생은 세계적인 분이시다. 사진작가 정범태 선생에 대해 너무 소홀한 듯하다라는 아쉬움을 전해왔다. 이에 국악신문과 인연을 맺는 1990년대 이전의 초기 세계적인 사진가 정범태와 현장 에피소드를 통해 선생의 생애를 조명하기로 한다.

 

작품으로서의 사진이 있다면, 기록으로서의 사진도 있다. 때론 기록으로서의 사진이 사실의 힘을 발휘할 때는 작품으로서의 사진보다 더 강한 여운을 준다. 초기 작가 정선생의 기록 사진을 두고 하는 평가다. 사진작가 407개월, 1928년 출생에 1956년 사진가로 출발, 조선일보, 한국일보, 세계일보 등에서 보도사진을 찍었으니, 200073세까지 현역으로 활동 한 것이다. 그리고 어록도 작품만큼이나 많이 남겨 회자되고 있다.

 

"리얼리티야말로 사진의 본질이다"

"독자 마음을 움직이는 사진이 좋은 사진이다"

"순간, 순간이 변하기 때문에 처음 느꼈던 생생함을 독자에게 바로 전해야한다"

"화면에 인간이 없으면 생명력이 없다는 사진이다"

"셔터를 누를 힘이 있는 한 정년이란 있을 수 없다"

"사진이(글로 된) 기사와 중복되면 절대 안 된다. 편집자들은 '유족들이 오열하고 있다'는 기사를 실으면서 오열하는 유족 사진을 실으려 한다. 하지만 이것은 중복이다. 사진은 자체가 기사이므로 독립성이 있어야한다. 나는 이것을 갖고 40년 동안 싸워왔다."

"나는 스스로 '사진작가'라고 칭해 본 적이 없다. '사진작가'라는 말을 들으면 왠지 부끄러운 생각부터 든다. 사진은 암실에 앉아 만들거나 조작하는 것이 아니라 발로 뛰며 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이상의 지론을 증명이라고 하듯 국내외 유명 콘테스트에서 수상하고, 그에 따른 일화를 남겼다. 1961<아사히신문> 주최 국제사진전에서 10대 걸작으로 선정되고, 세계사진연감에 수록되는 것을 시작으로 많은 국제적인 상을 받고, 정년 후에도 두 번이나 한국기자상을 수상했다.

 

#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내가 걸어오고 기록한 일들이 격동의 한국현대사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일제 치하에서 유년기를 보냈고 해방과 함께 625를 맞았으며 지리산 밑자락에서 빨치산을 토벌하는 현장을 문관으로서 카메라에 기록했다.”

 

1955년 조선일보 입사 전의 활동을 보여준다. 이런 출발선이었기에 사실주의 사진의 진정성을 육화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내면의 이미지를 형성하고, 이를 다시 기억으로 떠올려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형태로 표현된 사진, 이는 스키마(Schema)’이다. 직관적이고 반성적 지능을 수반하는 이 강렬한 스키마가 리얼리즘 사진가 정범태를 형성시킨 것이다.

이에 의해 누구보다 치열한 역사 현장 사진가의 길을 걷는다. 곧 필화사건(筆禍事件)으로 362일간 징역을 산다. 1962416일자 한국일보 3면 톱 기사는 쫒겨난 관광'이란 제목의 사진이 수록된다. 이 때문에 계엄 고등군법회에서 재판을 받는다. 소위 강화도 전등사 보도 사건이다. 5.16군사정변으로 탄생한 박정희 정권은 폭력배도 철저히 단속하여 사회정화를 완수했다고 자랑한 터다. 그런데 "폭력배 난동에 상춘객 불편"이란 기사를 대문짝만하게 보도하자 군사정부의 실적을 훼손하여 북한에 이롭게 하였다며 연행한 것이다. 어처구니 없는 군사정변 직후의 상황이 빗은 사건이다.

 

# "피고는 강화도 현지 사건이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인근 파출소나 헌병대에 알려서 사건을 무마함이 옳은 줄로 아는데 기자라는 신분의 영웅심리가 작용해 적을 이롭게 할 목적으로 고무, 찬양하였으므로 징역 3년을 구형한다."

 

1962510일 경기지부 계엄 고등군법회의 첫 공판, 판사의 선고문 일부이다. (전 내무부 장관)김치열 변호사가 무죄 주장을 펼쳤지만 군 검찰은 정범태 기자에게 징역 3년을 구형했다. 이 사건으로 정선생은 365일간의 투옥 후 1963416일 형 집행정지로 석방이 되었다.

 

# "치기 어렸던 시절, 해외 사진 콘테스트에서 수상을 하며 내 사진에 대한 평가가 통했다고 자부했던 때가 있었고 '독침'이라 불리며 특종의 순간을 쫓기도 했다.”

 

정년후 노년의 한 인터뷰에서 초기 유명세를 회고한 대목이다. 이제 다음 5장의 사진을 통해 초기의 기록 사진과 활동상의 일면을 정리하기로 한다.


한국일보 1962년 4월 16일자 3면 톱으로 보도돼 필사사건을 불러일으킨 문제의 사진 '쫓겨난 관광'.jpg
[사진1] 정범태 작, ‘쫒겨난 관광’.(1962년 4월 16일자 한국일보 3면 톱 기사)

 

 

[사진1]은  한국일보 재직시 ‘쫒겨난 관광’으로 필화를 입은 사진이다.

 

 

30.jpg
[사진5] 서대문 형무소에서 362일만에 출소한 정범태 작가, 다음날 '빡빡머리 사진기자'로 복귀한다. 필화 사건으로 수감된 지 362일 만에  형 집행 정지로 출소했다. 마포교도소를 나서던 내 모습을 당시 한국일보 사진부 최정민기자가 찍어 주었다

 

 

[사진2]는 정선생이 1963416일 형 집행정지로 서대문형무소에서 석방되어 나오는 순간 웃는 모습을 한국일보 최정민 기자가 찍었다.



화면 캡처 2021-02-22 105641.jpg
[사진3] 정범태 작,  ‘열쇄장수’ 1958년.

 

[사진3] 은 남대문 시장 좌판의 ‘열쇄장수’이다. 1958년 일본 아사히신문 국제사진전과 미국 US카메라 콘테스트 입상, 1959년 영국 런던타임즈 국제사진전에서 여러 작품으로 수상한 이후, 일본 아사히신문 국제살롱에서 수상한 작품이다.

 

 

1961.jpg
[사진 4] 정범태 작,"결정적 순간"  1961년 

 

[사진 4] ‘결정적 순간’이란 작품이다. '사진가 정범태'를 세계에 알리게 된 사진이다. 1961년 경기고등군법재판소 공판장, 5.16군사 정권의 통치로 인해 누군가의 비위를 거슬렸다는 이유로, 또는 근거 없는 유언비어를 유포했다는 혐의로, 때로는 먹고 살기 힘들다는 푸념을 했다는 이유로 무고한 시민들이 군법 재판에 회부되곤 했었다. 이런 정황을 보여준 사진이다.

 

많은 에피소드를 담고 있는 만큼 세계적으로 알려진 사진이다. 선생이 박힌 정황이다."창문으로 한 줄기 햇살이 들어오고 판사가 막 판결문을 낭독하려는 긴장된 순간, 어디선가 자박자박 발자국 소리가 나더니 두세 살쯤 되어 보이는 어린아이가 방청석에서 걸어 나온다. 아기의 손을 놓친 방청석의 또 다른 여자는 어찌할 줄 모르는데 아이는 고개를 숙이고 있는 여인의 손을 꼭 잡고는 판사석을 바라다 본다. '우리 엄마를 살려주세요' 말은 없었지만 간절히 호소하는 듯한 이 장면을 라이카 3F를 꺼내 찍었다. 잠시 적막이 흐르고 판사는 여인에게 무죄를 선고한다. 그러자 아이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방청석으로 돌아갔다. '결정적 순간'이 찍힌 순간이었다.”

일본 평범사에서 발행한 세계사진연감에 수록 되어 시계적으로 인정받은 사진이다. 


217.jpg
[사진5] 정범태 작. "모정" 1965년

 

 

[사진5]는 선생 스스로가 내놓을 수 있는 사진으로 꼽은 파월장병 환송식의 모정이다. 1965년 조선일보사에서 사진부장 시절의 작품으로 동대문운동장 파월장병 환송식 장면이다. 선생 스스로의 설명이 매우 애틋하다.

 

"베트남을 향하며 등에 태극기를 꽂은 꽃다운 젊은이들이 가장 소중한 가족과 이별하는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시골에서 올라온 어머니의 모습, 비닐 가방을 손에 든 촌로가 애처로운 눈빛으로 아들을 바라본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질 것 같지만 애써 꾹 참고 있는 어머니. 그런 어머니를 보며 자식은 손수건으로 땀을 닦는 척하며 슬쩍 눈물을 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