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토)
사람이 한평생을 산다는 것. 부모를 잘 만나 제대로 배우고 좋은 직업을 골라 남한테 존경받으며 살아 보았으면 하는 생각이 윤윤석(尹允錫ㆍ55, 1939년 4월 14일생) 씨의 가슴 속에는 언제나 맺혀 있다.
열 두 살 적부터 시작한 ‘광대 인생’이 하고 싶어서도 아니었고 좋아서도 아니었다. 때로는 자기 흥에 겨워 가진 자와 구경꾼들 앞에서 아쟁을 켜고 뜯으며 소리(창)도 질러 댔지만 생각해 보면 속이 뒤집힐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럭저럭 국악과 함께 해 온 세월을 돌이켜 보니 40여 년이다.
아쟁은 우리의 민속 악기 중에서도 일반에게는 매우 생소한 현악기이다. 거문고와 가야금의 ‘대중성’만을 취택해 놓았음직한 아쟁은 고려 때 유입된 당악기 중의 한 종류이다. 가야금을 개조해 8현으로 농현하지만 모양은 거문고와 같이 운두가 얕고 상자식으로 짜서 만든다. 별도로 머리 편을 괴는 발(足), 운족(雲足), 담괘, 담괘 뒤판의 모양, 줄 매는 법 등은 거문고와 전혀 달라 구분된다. 개나리 채를 말총으로 맨 활에 송진 가루를 문질러 연주하는 조현 기법이 매우 독특하다.
그런데 이 아쟁 소리가 사람을 잡는다. 경기민요에 피리 빠지면 헛것이듯 이 저 구성진 남도 가락에 아쟁 빠지면 ‘들으나 마나’라고 한다.
"거문고가 ‘선비 악기’고 가야금이 ‘규방 악기’라면 아쟁은 시정 민초들의 짓눌림을 토해 내는 ‘아낙네의 소리’입니다. 그래서 아쟁의 농현으로는 유일하게 연주자의 감정을 담아 낼 수가 있지요.”
선뜻 "많이 배우지 못했다.”고 기탄 없이 털어놓는 윤씨도 아쟁 연주 얘기를 하면서는 목에 힘이 들어간다. 애절한 감정 농도가 짙게 밴 비탄조의 선율은 평소 국악에 관해 무심했던 사람들조차 "바로 이 소리구나.” 하고 무릎을 치게 만든다는 것이다.
" ‘조선 사람’치고 여남은 가지 한도 없는 사람이 있간디요. 젊은 사람들한테도 우리네 할머니, 어머니 적 한이 골수로 전해 올 테니까요. 그런데다 민초들의 쓰린 앙금이 가라앉은 이 소리를 들으면 울적했던 심회가 왈칵 뒤집혀 버리고 맙니다.”
그러면서 윤씨는 아무리 악기가 명기라 할지라도 주자의 마음 이상은 표현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남의 초상집에 가 제 설움에 겨워 울듯 연주자가 살아 온 인생의 우여곡절 깊이가 아쟁 소리를 구슬프게도 내고 행복한 성음으로도 들려줄 수 있다는 것이다.
국악계에선 윤씨를 ‘아쟁 도인’이라고도 부른다. 그러나 그는 인간문화재도 아니고 생계를 지탱해 나갈 수 있는 연구소도 하나 없다. ‘따라지 인생길’이라고 스스로 자괴하면서도 개나리 활대만 잡으면 만사가 태평이다.
서울 종로구 누상동의 두 칸짜리 전세방에서 들려주는 ‘윤씨의 인생’은 우리 시대를 함께 살고 있는 예인 거의가 그러하듯이 참으로 참담하고 기구했다.
전북 익산군 여산면 태생인 윤씨는 아버지(영택)가 가야금 명인이었다는 것만 기억할 뿐 이름을 한자로 모른다고 했다. 가야금통 메고 삼남이 내 집이라며 동가식 서가숙하던 아버지 때문에 풀뿌리로 연명하고 메뚜기를 볶아 주린 배를 채우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할말은 아니지만 기왕 조실부모할 바에는 아버지부터 돌아가셔야 합니다. 풋보리를 절구로 찧어 멀건 죽을 쑤어 주시던 어머니가 굶주림 끝에 죽고 나니 3남매(1남2녀)는 결딴이 나고 말았습니다······. 남한테 덕 안 되는 소리는 해서 뭘합니까.”
부모가 팔자라던가. 이리시 갈산동으로 이사 와 살게 된 윤씨는 ‘나팔이라도 불어 먹고살자’며 국악원을 찾아갔다. 그 때 나이 열 두 살. 이리 국악원에서는 ‘아버지 얼굴’을 보아 찡그림 없이 거둬 주었다. 윤씨가 일생을 통해 부모 덕본 것은 ‘이것뿐’이라고 한다.
피내림, 그것은 무서운 것이었다. 윤씨는 가야금은 말할 것 없고 새납(호적), 설장구, 꽹과리, 장단북 등 잡기만 하면 척척이었다. 싹수있게 본 국악원의 이창선(李昌善, 명창) 씨가 싸잡고 단가와 흥부가를 가르쳐 목을 틔게 해주었다.
7~8년간을 온갖 궂은일 도맡으며 장단이라면 비껴 나가는 엇박까지 낚아채게 됐다. 아홉수가 원수런가. 19세에 다시 아버지 시신을 확인하고는 유랑길에 나섰다는 그는 "부전자전,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었나 보다.”며 모처럼 웃었다. 역마살 낀 기왕의 광대 인생 임춘앵 극단, 박후성(朴厚性)의 화랑극단, 진경단체 등을 전전하며 악사로 장단을 맞춰 왔다. 이 때 이골이 나버린 진양(느린 장단)에서 휘모리(아주 빠른 장단)의 박자 감각은 아직까지도 탁월하다.
이 기간 중 임춘앵 극단에서 만난 한일섭(韓一燮, 1972년 작고) 씨와의 인연으로 윤씨는 평생을 아쟁과 함께 살게 된다. 일제 유랑 극단 시절부터 아쟁의 명주자였던 한씨는 새납 연주에도 일가를 이뤄 생존 당시부터 ‘전설적 광대’로 불렸던 주인공이다. 그 한일섭 씨한테 아쟁 주법을 물려받은 윤윤석 씨다.
"종로 권농동에 살던 한선생님을 찾아가 밤늦도록 아쟁을 배운 때가 있었습니다. 짐짓 바깥 공기가 이상해 창문을 열면 동네 사람들과 길 가던 행인들이 골목을 그득 메운 채 선생님 연주를 듣곤 했지요. 남들도 신기에 가깝다고 늘 말해 왔습니다.”
현재 우리 국악계의 아쟁 산조는 한일섭제와 정철호(鄭哲鎬)제로 대별되는데 감정 표현 기법과 장단에서 약간의 차이를 나타낸다. 한일섭제는 진양,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로 박자가 구성되며 감정 표현법이 애절하기 비길 데 없다.
스무 살에 한씨를 만나 아쟁 활대를 잡은 이후 윤씨는 35년 동안 오로지 아쟁을 안고 살아 온 것이다. 한때는 놀음청에 불림 받아 목돈도 만져 보았지만 술로 날려 버렸다. 자신이 훑어 내는 아쟁 소리를 들을 때마다 사는 게 무엇인가 싶었고, 구차한 인생 푸념을 달래 줄 건 오직 술뿐이라 생각했다며 뼈아픈 후회를 한다.
윤씨는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예술 외에는 되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상복도 지지리 없는데다가 가정마저 평탄치를 못했다. 돈복은 아예 벗어 아직도 이 모양 요 꼴로 산다고 했다. 자신의 ‘밥줄’인 아쟁도 일반화된 지가 오래지 않았다 하여 무형문화재 지정 대상에도 못 오르고 있다. 요즘같이 명리 밝은 세상, 인간문화재 지정 가망이 없는 국악기에 일생을 걸 젊은이들이 없다.
요즘 들어서는 막내아들(윤서경, 청운중 3년)한테 아쟁 활대를 잡히고 있다. 이런 각박한 인심 속에서도 윤씨는 오직 아쟁과 운명을 같이하겠다는 조영제(調永濟, 33) 씨가 있어 천만다행이라고 한다. 윤씨만이 해낼 수 있는 지범질 주법(활대를 사용 않고 엄지와 검지로 뜯는 연주법)은 보존이 시급한 새로운 창제다. 아주 빠른 휘모리에서 엇모리, 엇박으로 넘겨 채는 주법이 까다롭지만 조씨는 무난히 소화해 내고 있단다.
"직업이나 직장은 농사꾼의 전답과 같은 것 아닙니까. 열심히 가꾸고 일군 만큼 소출을 얻겠지요. 흔히 내 처지가 불우하고 시원찮으면 남을 원망하지만 저는 마음 편히 삽니다. 내 대에 인간문화재가 안 되면 다음에라도 되겠지요. 다만 예술의 맥을 끊지 않고 이어가는 게 중요하지······.”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전통 예인 백사람, 초판 1995., 4쇄 2006., 이규원, 정범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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