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토)
피는 못 속인다. 진도 무당 박병천(朴秉千ㆍ58, 진도씻김굿 기능 보유자) 씨는 자신이 무업에 종사하게 된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며 이 일이 천하다고 여겨 본 적도 없을 뿐더러 어디서나 자신있게 나선다. 오히려 몸 속에서 우러나는 천부적인 몸통발림, 재기(才技), 목청을 놔두고 무얼 하겠느냐는 되물음이다.
"진도 입대조(入代祖)가 9대라니까 적어도 우리 가문은 250년 이상을 무업에 종사한 거여.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가 빌어 준 덕택에 숱한 사람들이 마음놓고 좋은 곳으로 갔을 거구먼.”
어려서부터 어정(굿)판을 좇아 다니며 몸에 익힌 박씨의 남도 풍물 가락은 귀신까지 감복시켜 버리고 만다. 특히 가(歌), 무(舞), 악(樂), 의식(儀式)은 물론 농악에까지 능해 가히 이 분야의 독보적 존재다.
박병천과 무악. 삼현육각(징ㆍ장구ㆍ대금ㆍ북ㆍ쌍피리ㆍ아쟁)으로 뒷바라지하는 씻김굿의 무악은 당연히 징이 발군이다. 잔잔한 파도같이 밀려오는 삼현육각의 소용돌이가 갑자기 멈춰버리고 대금과 쌍피리의 구성진 죽관음이 한 맺힌 망자의 넋을 위무할 즈음 난데없는 박병천의 징이 오장육부를 훑어 내며 마무리지어 버린다. 그의 징 소리는 일반 사물놀이의 징 소리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듣는 이의 마음가짐과 한의 두께에 따라 계면(界面, 슬프고 애원적인 것) 섞인 탄식음일 수 있고 우렁차고 씩씩한 미래성일 수도 있다. 박씨의 무악은 1985년 베를린음악제에 출전, 6개국 32개 지역을 순회하며 음악 선진국들을 놀라게 했고 LA올림픽 개막 축제 공연, 니카라과 세계민속음악제 등을 통해 진한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인간의 원초적 감성에 호소하는 무악의 기본음은 동서양은 물론, 유ㆍ무식, 종교까지를 뛰어넘어 버린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의 무업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요즘의 외국 유학보다도 힘든 당시 목포 유학(목포중, 6년제)을 마치고 한때는 딴 직업을 찾으려 했지만 무슨 일을 해도 되는 게 없었단다. 스무 살 때 어머니 김소심(金小心, 무가의 대가였음) 임종을 지켜보며 받은 충격이 오늘로 이어진다.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혼수 상태에서 잠깐 정신이 돌아오면 "아가, 오늘이 음력 며칠이제······. 내 건너 안서방네 성주굿 해 줘야 할 텐디······.”
순간 박씨는 자귀로 뒤통수를 얻어맞는 충격을 느꼈단다. 한평생을 ‘무당’ 이라 천대받으면서도 죽은 사람 좋은 곳으로 가 달라고 빌어 온 무업이 먹고살기 위해 한 일이 아니었음을 번개스치듯 깨달았다는 것이다. "어머니, 지가 한번 대신 해볼까요?.” 이 말에 김소심 씨는 벌떡 일어나 "배울테면 똑바로 배워야 한다. 어정판에 돈 조금 내놓는 건 가난해서 그런 게야······. 돈 적다고 슬슬 하다가는 신장이 노하는 법이야.” 이후 박씨는 굿판에 가 돈타령한 적 없고 돈 벌어 써 본 일도 없다.
일곱 살 때부터 부락 농악칠 때 무동을 서 인기를 독차지했고 국민학교 때는 학예회 콩쿠르에 나가 ‘끼’를 보여 줬다. 고교 시절 밴드부에 들어가 클라리넷을 불며 ‘요것이 바로 혈통 세습’임을 스스로 느꼈다는 것이다. 쉽게 손만 떼면 곡이 절로 나왔다고.
"한때는 내가 전라도 ‘번개’였지. 무당이라고 업신여기는 놈은 무조건 한방부터 내질러 버렸으니까. 도대체 남 잘되고 좋은 곳으로 가라 빌어 주는 게 뭐 잘못된 거냐는 생각이었지······.”
그의 주먹 솜씨는 전남에서 알아줬고 알 만한 사람은 대세 불리하면 박씨 이름을 팔고 다닐 정도였다고 회고한다. 그러나 지금 그의 손가락 마디엔 징채, 북채, 장구채를 쥐어 생긴 상수리만한 굳은 살들이 돋아 있다.
진도 무당은 박(朴)ㆍ함(咸)ㆍ노(魯)ㆍ채(蔡)ㆍ최(崔)ㆍ이(李)ㆍ김(金)의 칠성(七姓)받이가 있는데 이 중에서도 전통 세습무는 밀양 박씨가 뚜렷한 단일 계보를 이어오고 있다. 박씨 조부(대금 명인)가 타계했을 당시 (일제 때) "비록 천한 사람이 죽었지만 진도군장(珍島郡葬)으로 모셔졌다.”면서 세습무 집안을 떳떳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진도 신청(神廳) 계보는 박씨 가문 위주로 만들어진 것이다.
중ㆍ고ㆍ대학은 물론 대학원 강의까지 나가며 국문ㆍ민속학 교수들과 난상 토론을 전개하고 진도만가(挽歌), 북춤, 강강수월래, 다시래기(초상집에서 상주를 위로하는 놀이), 씻김굿 등을 다듬고 정리해 이 분야에도 일가견을 갖고 있다. 1971년 전국민속경연대회 국무총리상(남도 들노래팀), 1972년 국무총리상(강강수월래), 1973년 대통령상(강강수월래), 1974년 문교부 장관상(진도만가), 1975년 거문도뱃노래 발표, 1976년 진도다시래기 발표 등 민속학에 끼친 공헌도 만만치 않다. 그 자신 인간문화재 72호(1980년 지정, 진도씻김굿 기능 보유자)로 남도굿과 가락을 통해 17명의 중앙ㆍ지방 문화재 지정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지금도 박씨는 자신한다. 문명교(서양 종교 등 무를 업신여기는 종교를 그는 ‘문명교’라 불렀다.)를 믿는 집안에서도 객적은 일이 있으면 무(巫)가 혹세무민이 아님을 현장에서 보여 주겠다고. 이와 같은 맥락에서 박씨는 쓸데없는 피해 의식, 열패감 등으로 조상을 속이려는 재인 후손들을 경멸한다. 우리 민속악의 고향이며 연원인 무악을 잘 보존하고 되살려 맥을 되찾아야 할 책임이 오히려 뒤따르고 있다는 주장이다. 우리 민족의 원형을 담고 있는 무굿이 시절 인연을 잘못 만나 한동안 밀렸지만, 이제는 우리 것을 바로 보고 찾으려는 안목이 생겨 운세가 달라지고 있다고 내다본다. 다섯 바탕 판소리 장단 외에 ‘선부리’ 가락까지 들어간 무악은 서양 음악에만 심취된 사람들도 녹여 낼 수 있다는 것이다.
박씨는 지금 재인 가문의 단명과 손(孫) 귀함을 크게 염려하고 있다. 300년 가까운 가문의 세습무가 자신의 대에 와 끊어지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9가지 종류(한 가지만 9시간씩 걸려 81시간 소요)의 씻김굿을 제대로 전수받기도 힘들 뿐더러 아들 환영(桓永)은 국립국악원 대금 주자로 있어 더욱 걱정이다. 서울 종로구 창신동의 ‘박병천 문화재전수소’에 제자들은 많다. 그러나 그의 징 솜씨뿐만 아니라 북, 장구, 무무(巫舞) 등을 배우려는 사람은 많지만, 정작 씻김굿 한 바탕을 제대로 전수받으려는 후학이 없다.
박병천 문화재전수소를 통해 많은 제자들을 길러 냈지만 정작 씻김굿 한 바탕을 제대로 배우려는 후학은 드물다.
"저는 누구보다도 자랑스럽고 훌륭한 조상을 가졌습니다. 할아버지는 불던 대금에서 피가 떨어지며 운명하셨다고 들었어요. 어정판 시나위 속에 징채를 잡다가 여생을 마치고 싶습니다.”
• 박병천 세습 무가 계보도
출처: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전통 예인 백사람, 초판 1995., 4쇄 2006., 이규원, 정범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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