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금)
아직도 ‘생강 피리’를 못 잊어 하며 만지작거리는 사람들이 있다. 6ㆍ25를 전후해 시골 저잣거리나 고향 역 앞 행상한테 산 피리지만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그 소리와 품질은 흉내낼 수 없다는 찬사뿐이다. 그 당시 피리 파는 중년 남자 옆에서 벙거지를 눌러쓴 채 피리를 구성지게 불어 대는 ‘피리 부는 소년’이 있었다. 의심 많은 사람들은 10세 안팎의 소년이 부는 피리 소리를 듣고 나서야 꼬깃꼬깃한 쌈짓돈을 내놨다.
그때 피리 불던 소년이 바로 오늘날의 젓대(대금) 명인 이생강(李生剛ㆍ54, 1937년 3월 16일생) 씨다. 뒷짐지고 먼산 바라보던 중년 남자는 그의 아버지(壽德)로 역시 피리만 잡으면 흐드러지게 불었다고 한다.
"영락없는 비렁뱅이 행색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부끄러운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재일 교포의 아들로 한국말이 서투르다 하여 괜히 얻어맞는 것보다는 나았고 피리 자루 들쳐 메고 전국 산천 곳곳을 누비던 그 시절이 너무 좋았기 때문입니다.”
신라 임금 신문왕(681~691) 때의 ‘만파식적’에 뿌리를 대고 있는 우리의 민속 관악기 대금. 예로부터 ‘대금’보다 ‘젓대’로 널리 불리고 있다.
이 시대 최고의 젓대 주자 이생강 명인은 피리 행상으로부터 국악계에 발을 디뎠다. 해방 직후 우리말이 서투르다 하여 동네 애들한테 뭇매를 맞은 건 그가 동경의 아사쿠사(淺草) 출생이었기 때문이다. 경남 울주군 웅촌면 대대리 출생의 아버지는 3대 독자로 13세 때 일본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교포 딸인 어머니 김위선(金渭先) 씨를 만나 이씨를 낳았다. 생강씨 조부(경주 이씨)는 사헌부 감찰을 지냈으며 선대에는 신의 점지를 받아 뭇사람의 맺힌 한도 풀어 주었다고 한다.
그 피가 섞인 이씨의 젓대에 대한 천부적 감각은 5세 때인 194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아사쿠사 옆집 어른이 척팔(尺八, 사쿠하치ㆍ일본식 퉁소)을 부는 것을 얼른 빼앗아 손바닥으로 흉내내면서부터 비롯된다. 아홉 살에 해방을 맞은 이씨는 아버지를 따라 귀국하여 부산 보수동에 정착했다.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알거지가 된 이씨 부자는 ‘생강표’ 피리를 만들어 전국을 유랑하게 된다. 이씨의 파란 많은 ‘젓대 인생’은 참으로 우연찮게 맺어졌다.
1952년 여름, 전주 풍남동 전주역 앞에서 당대 젓대 명인 한주환(韓周煥, 1904~1963) 씨를 만나면서 본격 학습에 들어간다. 한명인은 피리를 팔며 멋지게 불어제끼는 이씨 부자의 가락에 반해 발길을 멈춰 섰던 것이다. 한명인은 전남 화순 능주 태생으로 젓대 산조의 초기 명인이었던 박종기(朴鐘基, 1879~1939)의 맥을 잇고 있는 대가였다. 박명인은 전남 진도인으로 무악 피리의 귀재였다. 진도 씻김굿 기능 보유자(인간문화재 72호)인 박병천(朴秉千)의 종조부가 된다. 이러한 연유로 ‘이생강제 젓대’는 박종기―한주환의 정통 맥을 잇고 있으며 이씨의 뒤는 아들 광훈(廣訓, 25, 중앙대 국악과 2년) 씨가 군말 없이 승계하고 있다.
젓대는 예로부터 오랫동안 쓸 수 있는 황죽(黃竹)을 최고로 쳐 왔으나 최근에는 쌍골죽(雙骨竹)을 주로 사용하는 65cm 안팎의 죽관악기다. 대통좌상의 취공과 밑의 청공에 갈대 속에 있는 엷은 막을 붙여 진동으로 소리를 낸다. 주법으로는 저취(底吹, 부드러움), 평취(平吹, 곧고 굳음), 역취(力吹, 가장 높은음)의 세 가지가 있으며 산조는 무속적인 살풀이춤 반주서 사용돼 온 시나위의 즉흥 합주곡 형식에 속한다.
젓대 산조로는 박종기(한주환ㆍ이생강)제와 강백천(姜白川, 1898~1982)제, 한범수(韓範洙, 1911~1980)제로 대별된다. 특히 이생강은 진양조ㆍ중모리ㆍ중중모리ㆍ자진모리의 4악장으로 구성되며, 사용되는 조격은 우(羽)ㆍ평(平)ㆍ계면조(界面調)가 고루 섞여 시나위 더늠 젓대산조에 비해 밝은 선율이 많다. 이씨의 젓대는 59년 경기 무악의 달인 지영희(池瑛熙, 피리 명인, 작고) 씨를 만나 피리 솜씨까지 붙어 금상첨화가 됐다. 한때는 임춘앵 여성 국극단 악사(1958~1959년)로 오진석(피리), 방태진(새납) 씨와 함께 전국 순회 공연을 다니며 약관 명인으로 날렸다.
이씨는 5세 때부터 배운 젓대 솜씨여서 나이는 어렸지만 나이든 제자들을 많이 가르쳤다. 60년 5월 처음으로 유럽 순회 공연을 나가 파리 공연장에서는 ‘수십만 마리의 벌들이 꿀 따 오는 소리’라는 등의 극찬을 받기도 했다. 당시 공연에는 강선영(姜善泳), 임승남, 김문숙(무용가 조택원 씨 부인) 씨 등이 약관의 이씨와 함께 갔다.
이씨는 20년 전부터 종로 쪽을 떠나지 않으며 전통국악연구소(서울 종로구 와룡동 태일빌딩 402호)에서 후학들을 가르치고 있다. 연구생만도 50명이 넘으며 전국 유명 상을 끊임없이 수상해 오고 있다.
김경애(金京愛, 대구, 김경애 국악원장, 1986년 전주대사습 기악부 장원, 1989년 신라문화제 대통령상), 박환영(朴桓永, 국립국악원 젓대 주자, 1987년 동아국악콩쿠르 대상), 이용구(李鎔九, 1990년 전주대사습 일반부 장원) 씨와 김종선(金鐘善, 워커힐 국악 연주), 이형표(李炯杓, 방송 출연), 김현임(金賢任, 1989년 전주대사습 학생부 장원), 김현재(金玄載, 국악예고 3년) 양 등 손꼽을 만한 전수자들이 수두룩하다.
아들 광훈 씨와 함께 조카 병금(炳金, 국립국악원) 씨도 젓대를 불어 든든하며 형 정화(正華) 씨는 현재까지도 일품 젓대를 만들어 내고 있다. 동생 성진(成鎭, 리틀앤젤스 농악부) 씨는 통영오광대놀이의 장재봉(張在鳳, 작고) 씨한테 습득한 타악 장단으로 꽹과리, 장구, 북 등 타악기에는 무불통지다. ‘토마스 박’으로 유명하며 세계 순회 공연도 많이 다녔다.
생강 씨는 중앙대와 국악예고에 나가 연구생을 가르치며 이씨를 거쳐간 제자들만도 4백여 명이 넘는다. 한주환제는 단전에서 복식 호흡으로 뽑아내는 특이한 주법이 ‘짐’ 넣는 방법부터 타제와는 확연히 구분된다.
이씨는 호주를 제외하고 4대주 70여 나라를 순회하며 한국의 명금 젓대를 불었다. 종래의 18분(박종기), 32분(한주환) 젓대 연주를 이씨가 90분으로 완성시켰고 레코드까지 내놓았다. 국위 선양 공로로 1973년에는 국민훈장을 받는 등 상패와 상장이 쌓여 있지만 이명인의 바람은 국악계의 올바른 평가와 예우가 바로잡히는 것이라고 했다. 아들 광훈 씨도 아들을 낳으면 반드시 젓대를 학습시켜 ‘3대 명인 가문’을 이뤄 놓겠다고 다짐을 보였다.
"인연은 기이하다는 생각입니다. 제가 박종기 선생제를 잇고 있는데 그 어른의 증손자인 환영 군이 저한테 학습한 뒤 다시 맥을 이어 주고 있습니다.”
출처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전통 예인 백사람, 초판 1995., 4쇄 2006., 이규원, 정범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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