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금)
전통민요 중에서 가장 대중적인 노래는 아마 경기민요일 게다. 많이 회자되다 보니 우선 부르기가 쉽고, 가락이나 곡상이 살갑고 경쾌하며 청아하다. 경기민요의 늴리리야나 창부타령을 서도민요의 수심가나 남도민요의 육자배기 등과 비교해 보면 이내 그 차이점을 느낄 수 있다. 아무튼 만인이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민요는 경기민요가 아닐 수 없다.
한편 대중적인 노래는 쉽게 공명되는 정서적 감응이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자칫 진중한 감성의 여운을 잃기 십상이다. 경기민요가 갖는 태생적 한계랄까 속성도 바로 이런 점에 있다고 하겠다.
내가 이춘희 명창을 훌륭한 가객이라고 치부置簿하고 있는 까닭도 다른 게 아니다. 자칫 경박해지기 쉬운 경기민요의 취약점을 그만의 속깊은 내공으로 말끔하게 균형을 이뤄내기 때문이다. 요즘의 세태는 지나치게 경망하고 부박하다. 대부분의 예인들이 심금은 울리지 못하면서 표피적인 재주만을 팔기 일쑤다. ‘사람 됨됨이’라는 바탕은 닦지 않은 채 기예만을 익혀서 남에게 과시하려 든다.
수기修己를 해야 입신立身도 되고 이인利人도 할 수 있는데, 수신의 토대 없이 성급하게 과실만을 탐내는 세상이고 보니, 예술이건 학문이건 사상누각이요 일회성 거품에 불과할 때가 많다. 마음에 와 닿는 노래나 음악회가 드문 것도 이 같은 풍조 때문이다.
이춘희 명창의 소리 세계는 확실히 남다른 특장이 있다. 경기민요 특유의 신명을 끌어내면서도 진득한 무게감을 더해 준다. 낙이불류樂而不流의 품도를 느끼게 한다. 결코 숙련된 기교에서만 오는 게 아니다. 따라서 단성旦聲 이춘희 명창의 노래는 경기민요의 격을 한층 높이는 지렛대 역할을 하고 있음은 물론, 인품으로 균형을 이룬 진솔한 음악의 세계가 어떤 것인지를 명료하게 증언해 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본 연재는 이지출판사 출간 '한악계의 별들'에서 발췌하여 게재한다. 이를 허락해주신 출판사와 필자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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