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목)
한명희/이미시문화서원 좌장
지난 한 세기 우리 현대사는 말 그대로 파란만장한 격동의 세월이었다. 굵직한 사건만 돌아봐도, 한일합병과 3·1독립운동, 해방과 정부수립, 6·25전란과 남북분단, 4·19혁명과 5·16군사정권, 광주민주화운동과 88서울올림픽 등 그야말로 숨가쁘게 휘몰아쳐 간 격랑의 시대였다. 사회 풍조나 가치관 역시 상전벽해로 환골탈태돼 갔다. 전통적인 농본사회가 급격한 산업사회로 바뀌어 가고, 서정적인 농촌문화는 삭막한 도회적 일상성으로 환치됐으며, 인륜에 바탕을 둔 유교적 가치관은 자본주의적 물질만능의 풍토로 뒤바뀌어 갔다. 이 같은 격변의 소용돌이 속에서 동시대인들은 합당한 대안 없이 표류하며 삶에 대한 힘겨운 갈등과 회의에 빠지기 일쑤였으며, 물질적 풍요와 반비례하는 행복지수를 힘겹게 떠메고 살아야 했다.
바로 이 같은 시대 배경이 심소心韶 김천흥金千興 선생 무악예술舞樂藝術과 인생 역정의 무대이자 토양이다. 결코 태평연월의 호시절이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뚜렷한 가치관을 공유하지 못한 채 방황하고 고뇌하고 체념하는 시절이었다. 이런 세태 속에서 심소 선생은 소극적으로 ‘사의 찬미’ 같은 엘레지나 부르고 있지 않았다. 해금으로 무용으로, 아니 생불生佛 같은 자애로운 미소로 시대의 병통을 위무하며 구원해 왔다. 같은 시대를 동행한 많은 민초들이 심소의 청아한 가락에 시름을 잊었고, 단아하고 정갈한 심소의 춤사위에 너나없이 동고동락의 희열을 나눴으며, 세사의 달관으로 빚어진 심소의 온유한 미소에는 강퍅剛愎한 세상도 금세 생기를 띠며 봄볕처럼 화사하게 밝아지곤 했다.
시는 생각을 표현한 것이고[詩言志], 노래는 말로 표현한 생각을 길게 읊는 것[歌永言]이라고 했다. 하지만 사람의 생각이나 정서를 언어나 노래로 표현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 같은 한계상황에서 인간이 취할 수 있는 대안은 무엇일까? 바로 수지무지 족지도지手之舞之 足之蹈之의 몸짓이다. 어설픈 췌언贅言을 버리고 무궁한 침묵의 세계로 넘어가는 것이다.
무용의 세계, 곧 침묵의 세계는 상호 소통의 궁극적 묘책이자 대도大道이며 지고한 예술의 경지다. 염화미소拈華微笑의 경우처럼, 백 마디 설명이 필요 없다. 눈빛 하나 몸짓 한 동작으로도 만물을 수렴하며 천하를 설파해 낼 수가 있는 것이다.
이제사 돌이켜보니, 심소 선생의 해금은 음악이 아니었고 심소 선생의 춘앵전은 무용이 아니었다. 음악이되 음악이 아니고 무용이되 무용이 아닌 그 너머의 세계, 곧 심소의 인생이며 우주관이자 철학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달관의 체로 걸러지고 정제되어 순수무구한 동심의 세계로 응축된 화룡점정의 원형질이 곧 심소 선생의 미소 세계다. 분명 심소의 미소는 심소 예술의 이데아이자 메타포가 아닐 수 없다. 가섭迦葉 같은 지혜로운 후학들이 있어, 정재무악의 진수인 심소 미소의 정체와 미학 세계를 온전히 풀어내고 널리 펼쳐갈 수 있으면 우리네 삶은 한층 풍성한 살맛으로 싱그러워질 것이다.
‘손만 들어도 흥이다. 발만 옮겨도 멋이다.’ 심소 선생은 그렇게 무애無碍의 춤으로 풍진세상을 어루만져 주셨다. ‘눈빛만 닿아도 자애롭다. 표정만 보아도 화평하다.’ 심소 선생은 그렇게 천진무구한 자비심으로 곤고한 중생을 보듬어 주셨다. 이제 심소 선생은 이승의 소풍을 마치고 아득한 피안으로 떠나셨다. 하지만 심소의 사뿐한 춤사위와 동심의 미소는 파란 창공의 흰구름밭에 보허步虛의 춤으로 새겨져 청사靑史에 길이 빛나고 있다.
세월의 속도는 사람 따라 상대적인 게 맞는 것 같다. 인생 고래희라던 기로耆老의 구간을 넘어서니 젊은 날의 속도감보다도 더 빨리 황혼녘으로 가속이 붙는 걸 봐도 그렇고, 더구나 심소 김천흥 선생이 세상을 하직하신 지가 벌써 5년이 흘렀다는 사실 앞에 서고 보니 정녕 늙은 세대가 감응하는 세월은 백마과극白馬過隙처럼 훨씬 더 빠른 것만 같다. 심소 선생을 회상할 때마다 나는 으레 연상하는 선명한 심상心象이 있다. 바로 절대 자유인으로 서라벌 거리를 기인처럼 누비며 살다간 신라의 고승 원효와 그의 무애무無碍舞가 곧 그것이다. 신라의 원효가 종교적 해탈로 무애무를 추었다면, 20세기 한국의 심소는 영락없이 예술적 달관으로 절대 자유의 경지인 무애의 정재무를 추었다고 하겠다. 그만큼 그의 춤은 물 흐르듯, 춤이되 춤사위를 뛰어넘는 무위자연의 예술적 진경眞景이 펼쳐지고 있었다.
심소의 춤에 인위人爲가 없듯이 심소의 언행이나 섭세涉世 역시 상선약수上善若水같은 순리와 지혜와 노숙老熟이 자연스레 배어나고 있었다. 한마디로 예술의 궁극적 이상이랄 지예至藝의 경지에서 노니는 유어예遊於藝의 세계가 곧 심소의 생애요 삶이며, ‘심소무心韶舞’의 본질이자 미학이라고 하겠다.
내가 국립국악원장으로 있을 때였다. 어느 날 원로 사범으로 계시던 심소 선생이 원장방을 찾아오셨다. 아마도 국악원 뜰에 있는 국악계 명인들의 동상을 옥내로 옮겨서 안치하면 좋겠다는 제의를 하신 걸로 기억한다. 아무튼 당시 상황으로는 어렵다고 말씀드렸다. 그때 심소 선생은 섭섭한 표정은 커녕 오히려 활달하게 웃으시며 내가 민망해하지 않도록 선선하고도 자상한 어투로 위무의 여운을 남기며 방을 나가셨다. 짧은 독대에서 스친 소회이지만, 기실 아무나 쉽게 되는 일이 아니다. 천부적인 낙천성에 호쾌한 호연지기와 세상살이의 속 깊은 달통을 거치지 않고는 흉내 낼 수 없는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慾不踰矩의 화통한 경지임을 그때 강렬하게 느꼈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심소 선생은 평생 어린이셨다. 품성도 용모도 마치 동화 속의 선동仙童처럼 천진무구한 동심의 어린이셨다. 기예와 명성이 한 시대를 풍미했어도, 여느 소인들처럼 쓸데없는 허세나 거드름은 아예 발붙일 틈새가 없었다. 천성이 요산요수樂山樂水하며 세속의 속박을 초탈했으니 세상 공명인들 연연할 리 만무하셨다. 그러니 그분의 행적은 행운유수行雲流水와 같을 수밖에 없었고, 말년의 주름진 노안에서처럼 항상 자애로운 미소와 화평한 용색이 평생 떠날 리가 없었던 것이다.
진정으로 한때 우리는 심소 선생이 계셔서 따뜻했었다. 행복했었다. 5주기를 맞아 후학들이 선생을 더욱 그리워하는 속정도 이와 멀지 않은 연유에서일게다. 세상살이 살맛나게 해 주시던 심소 선생의 인자한 용안을 떠올리며, 선생의 방일영국악상 수상을 축하했던 졸작 시구의 일부를 다시 한번 음미하며 추모의 절절함을 공유해 본다.
늦가을 황톳빛 낙엽따라
툇마루 봉당에 내린 햇살보다
따스하다 그 표정
향교 마을 기와지붕 끝
창공에 헤엄치는 물고기 풍경보다
청징淸澄하다 그 심성
은진미륵불의 귓밥보다도
석굴암 보살님의 눈빛보다도
인자하구나 다정하구나, 그 웃음이
(중략)
방일영국악대상 동짓달 열여드레
심소心韶 선생 다시 한번
눈들어 웃으신다, 가락을 고르신다 춤을 추신다
구름 휘장 사이로 햇님 방실 웃으시듯
‘내가 무슨 상을 받아, 더더구나 큰 상을’
티없는 파안대소 함박 같은 너털웃음에
너와 내가 행복하구나
세상 살맛 솟는구나
인생살이 더도 덜도 말고 심소 선생
웃음만 같아여라
웃음만 닮아지여라.
(본 연재는 이지출판사 출간 '한악계의 별들'에서 발췌하여 게재한다. 이를 허락해주신 출판사와 필자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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