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토)

[연재소설] 흙의 소리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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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흙의 소리 17

  • 특집부
  • 등록 2020.12.31 07:30
  • 조회수 938


흙의 소리


이 동 희

 

<3>

세자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스승의 말이고 또 성인의 가르침이며 현군의 실제 이야기인 것이다. 그런 말을 찾아 일러 준 스승이 참으로 고마웠다. 자신을 이롭게 해 주려는 얘기만은 아니었다. 현실이 그러하였다.

이제 와서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마음속에 있는 생각들을 다 들어내면 혼란만 일으킬 뿐 아무것도 달라지는 것은 없고 여러 사람 힘들게 할 뿐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사실이지만 스스로 그렇게 인정하고 깨닫기 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런 사실을 스스로 생각해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시간이 걸렸다기보다 어렵고 여러 고비가 있었다. 그렇게 해야 되었지만 마음대로 되지가 않았던 것이다. 자신의 내부에서 마구 소리치고 있었던 것이다. 정녕 그것이 옳으냐. 다른 사람들의 벽에 갇혀 솔직한 자신의 생각은 무시되고 있는 것이 아니냐. 자꾸만 망설여지는 것이었다.

"큰 길을 가는데 흔들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의에도 대의가 있고 소의가 있습니다.”

앞서는 인과 지에 대하여 얘기했었다.

"의는 무엇이고 소의는 또 무엇인가요?”

"의란 불의에 맞서는 정신이며 자기를 내세우는 주체성입니다. 말하자면 지금 세자가 겪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지요. 주변 사람들과 관계라든지 가령 권력에 맞서 싸우는 것 같은. 그런 것은 소의입니다.”

"내가 지금 싸워서 뭘 얻으려는 것이 아니지 않아요?”

"그 반대지요.”

"그런데

"그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백성을 위하고 나라를 위한 것이 대의입니다. 형들은 대의를 위하여 소의를 버린 것입니다.”

세자는 얼른 그것을 수긍하지 못하였다. 그 크나큰 대와 소의 차이를 몰라서가 아니었다. 스승 앞에서 승복하는 것이 내키지 않아서도 물론 아니었다. 그것을 알면 알수록 더 고통스럽고 견디기가 힘들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말할 수가 없어서 더 괴로웠다.

 

난계-흙의소리17-1.JPG
이무성 화백의 작화 : [장편소설] 흙의 소리 17

 

 

"그러나 의만 가지고도 안 됩니다. 예가 있어야 합니다.”

"?”

"인자인야仁者人也라 하였어요.”

맹자의 말이었다. 해석을 해 보면, 이라는 글자는 로 되어 있다. 두 사람이 마주 서 있는 것이 인간이요 인간성이다. 서로 사랑하며 서로 공경하는 것이다.

"질서의 원리는 남을 공경하는 데 있고 그것이 예입니다. 이것은 인간관계의 질서와 원활한 궤도 진행을 위해서 지켜야 하는 규범이고,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에 대한 분별이지요.”

"예에……

세자가 깊은 생각에 잠기는 동안 박연은 이번에는 퉁소를 허리춤에서 꺼내어 구성지게 불기 시작하였다. 말로 안 되면 음률로 감화를 시키려는 생각이었다.

축 늘어진 솔가지를 잡고 언덕을 내려다보며 마음이 편안해지는 가락에 젖어 있던 세자는 눈물을 글썽거렸다.

박연은 먼 산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마치 세상사에 통달한 도사처럼 큰 기침을 하였다. 자신이 스스로 생각해도 언제 그런 학문이라고 할까 이치를 이해하고 실천하는 논리를 터득하였는지 대견하였다. 맞는 말인지 틀린 말인지도 사실은 잘 몰랐지만 세자를 설득하기에는 충분하였다. 다른 사람이 다른 논리로 얘기한다면 그것도 맞는 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세자에게 틀린 말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제 예악禮樂에 대한 얘기로 넘어가 보지요.”

박연은 공부했던 사서오경을 다 동원하여 세자를 가르치려 하였다.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서 그동안 가르쳤다고 한다면 이제 정치를 어떻게 하느냐 백성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고 무슨 일을 해야 하느냐, 배운 대로 얘기해 보는 것이다. 아직 가르칠 때가 안 되고 자질이 안 되는 것 같지만 계제가 그렇게 되었다.

"예와 악으로 사람들을 교화하여 인을 실현하고 조화로운 사회를 이룩해야 하는 것입니다.”

공자의 얘기로 바뀌었다. 의례와 음악, 예악은 유가儒家사상의 알맹이다. 개인의 도덕적 완성과 사회의 도덕적 교화를 위한 수단이요 방법이었다. 논어의 태백편泰佰篇에 시에서 일고 예에서 서고 악에서 이룬다(興於詩 立於禮 成於樂)고 하였다. 시와 예가 합하여 악을 성취한다는 뜻인가, 인의 최상의 단계 경지가 악이다. 사랑 박애博愛 benevolence, 공자 또는 유교사상의 근본이념인 인을 실천하기 위한 요체가 악이라고 말하고 있다.

한참 예와 악에 대하여 침을 튀기며 설명하고 있는데 세자가 혼잣말처럼 말한다.

"음악이 그런 것인가?”

"춘추전국시대 얘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