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금)
동지날 아침 러시아 동포들에게서 손수 만든 팥죽 사진과 팥죽 카드가 SNS를 타고 날아왔다. 고려인 이주는 150년이 넘지만 세대를 거쳐서 절기마다 절기음식을 잊지 않으려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먹고 싶으면 죽집에서 사먹거나 배달을 시키는데...그들은 어려웠던 시절 부모님이 해주신 음식을 기억하고 있다. 타국으로 강제이주를 당해서 살다가 해방을 맞이했지만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꿈에도 그리운 고향의 음식인 것이다.
"집에선 오늘아침 형제들이 하인을 시켜 두죽(豆粥)을 끓이겠지. 채색 옷 입고 부모님께 헌수하니 세상에 그런 즐거움 또 어디 어디 있으랴.” 고려시대 이제현이 중국에서 동짓날을 맞아 고향을 그리며 지은 ‘동지(冬至)’라는 시의 한 구절이다. 집을 떠난 이들에게는 두고 온 가족과 고향을 그리는 음식이다.
민간에서는 동지를 흔히 아세(亞歲) 또는 작은설이라 하였다 '동지를 지나야 한 살 더 먹는 것'이라고도 했다. 다음날부터 해가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기에 경사스러운 날이라고 인식해서 새로운 한 해의 시작으로 여긴다. 우리 속담에 ‘동지가 지나면 푸성귀도 새 마음 든다’ 하였는데, 이날 팥죽을 먹지 않으면 새로운 마음이 들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오늘날에도 "동지팥죽을 먹어야 진짜 나이를 한살 더 먹는다.”라는 말처럼 동지첨치(冬至添齒)의 풍속으로 전하고 있다. <예기>에서도 "동짓달에 우물물이 일렁이기 시작한다”는 말로 거대한 우주 기운의 태동을 표현하였다. 동서고금을 통해 동지가 새해의 시작이었고, 동짓달이면 태양의 재생을 축하하는 동지축제가 성행했다. 이처럼 동짓달을 한 해의 출발로 본 것이다.
동지에는 자신의 나이 수만큼 찹쌀로 만든 새알심 '옹심'을 넣어 팥죽을 먹는 풍습이 있다. 절에서도 동지팥죽을 끓여 나누어 먹는 보시음식이다. 고려후기 이곡(李穀)은 영원사 주지를 역임한 의선(義旋)스님과 동지팥죽을 먹었다는 시의 제목이 ‘순암(順菴)의 동지팥죽에 감사하며 아울러 박경헌에게도 증정하다’라 했다. 궁중에서도 원단(元旦)과 동지를 가장 으뜸 이 되는 축일로 여겨서 동짓날 군신과 왕세자가 모여 잔치를 하는 회례연(會禮宴)을 베풀었다. 이 날은 민간에서부터 절과 궁중에서 팥죽을 쑤어서 나누어 먹는 날인 것이다. 천민에서부터 임금님까지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한날 아침상에 다 먹었다고 보여진다.
"동지는 명일이라 일양(一陽)이 생하도다. 시식으로 팥죽 쑤어 인리(隣里)와 즐기리라. 새 책력 반포하니 내년 절후 어떠한고. 해 짧아 덧없고 밤 길어 지루하다.” <농가월령가> 11월령에 나오는 동지관련 구절이다. 밤도 길고 추운 날 밤이 길어 잠이 안오니 이 날은 술을 걸러서 술을 먹어야 하는 날인 것 같다. 또한 날씨가 춥고 일년 중 가장 밤이 길어 호랑이가 교미한다고 하여 ‘호랑이 장가가는날’이라고도 부른다.
팥죽은 색이 붉어 양색(陽色)이니 어두운 음귀(陰鬼)를 쫓는 데에 효과가 있다고 믿어서 다양하게 활용되는 벽사(辟邪)의 음식이다. 해가 짧아서 차거운 동짓날 음기가 성하니 양기 충만한 뜨겁고 붉은 팥죽으로 대응했다. 이웃집이 초상이 났을 때 팥죽을 쑤어 부조하고, 이사 할때나 개업 때 팥죽이나 시루팥떡을 이웃들에게 돌린다. 전염병이 퍼질때 우물에 팥을 넣으면 물이 맑아지고 질병이 없어진다는 것도 모두 팥이 지닌 벽사의 의미를 취한 것이다.
동짓날에는 며느리가 시부모님께 버선을 지어드리는 풍습이 있었다. <성호사설>에 동짓날 버선을 드리는 것은 ‘장지(長至)를 밟고 다니라는 뜻’에서 동지헌말(冬至獻襪)’이라 한다.
동지에는 해가 극남에 머물러 일년 중 정오의 그림자가 가장 길어서 긴 그림자를 밟으면 장수한다고 여겼던 것이다. 버선이 지닌 풍요다산의 상징성과 함께 동짓날 어른에게 버선을 손수 지어 바치는 풍습은 장수를 바라는 의미가 담겼다. (필자가 동짓날을 얼마 남기지 않은 러시아 축제의 마당에서 경로당 한인 어른들과 러시아인들에게 양말세트를 선물했다. 그런데 한국에 돌아와서 불만의 말을 전해 들었다. 러시아인들에게 양말 선물은 매우 불쾌한 것이라는 것이다. 한인협회에서는 한복과 양말을 선물로 보내달라고 해서 준비한 것이었는데....)
특히 동지날 며느리는 미리 술을 담아서 시부모님께 '귀밝기 술'을 올려야 했다. 귀가 잘 들리시라고 해서 귀밝기 술이다. 이날 술을 올리지 않으면 두고 두고 서운해 하신다. 이렇게 동지날 팥죽 먹는 날은 다음 세대에게 가족의 위계 질서를 다시 한번 확인시킨다. 그만큼 가족공동체 결속에도 기여한다.
동포사회에서 팥죽은 우리에게는 절기음식 중 하나이지만 "나에게도 두고 온 그리운 고향과 언젠가 돌아가야 할 조국이 있다"는 정체성을 입증하고,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기 위한 고향을 그리는 디아스포라(Diaspira)의 음식이다. 동지날 아침에는 3세대 가족들이 다 모여서 아침상에서 핕죽을 먹는다고 한다. 그날 하루는 모든 마을 사람들과 나누어 먹는다는 의미에서 마을공동체 형성에 기여한 음식이다.
위 팥죽 사진은 오늘 아침 러시아 동포들이 SNS로 보낸 사진 중 손수 지은 팥죽 사진 3장을 골라서 실어 보았다. 우리는 바쁘다는 핑계로 잊고 살아가는 절기음식 팥죽을 그들은 기억하고 잊지 않고 있다. 앞으로 우리 전통문화를 조사하려면 현지 동포사회를 방문해야 될지도 모른다. 스파시바! (기미양:국악신문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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