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토)
한명희/이미시문화서원 좌장
전래의 마당놀이가 지니는 역사적 의미나 사회적 기능은 여간 막중한 게 아니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마당놀이만큼 연륜이 깊은 장르가 없다. 정악도 그렇고, 판소리도 그렇고, 제례악도 그렇고, 모두 후대의 공연물들이다.
그러나 마당놀이는 이미 삼국시대부터 생활화되어 왔으니, 역사적으로도 전통예술의 종가가 아닐 수 없다. 신라 말 최치원의 한시 대면大面이나 산예뼝猊 등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이미 당시에 사자놀이나 탈춤놀이 등이 신라 사회에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었다.
사회적으로도 전래의 마당놀이는 민중생활의 에너지요 생명소로 작용해 왔다. 묘기와 익살과 신바람으로 민중의 애환을 달래 왔고, 집단적 놀이를 통해서 분출되는 활력은 낙천적·긍정적 사회 발전의 추동력이 되었다. 그만큼 마당놀이는 삶과 문화와 동의어로 기능하며 전통문화의 원형질이 되어 왔다.
이처럼 전통예술의 중심 영역이었던 마당놀이가 20세기 후반에 와서는 서서히 주변 예술로 밀리며 빛을 잃어가고 있다. 무엇보다도 분석적 서구 문화의 유입 때문이다. 야외적·즉흥적 신명의 예술이, 실내적·규격적 서구의 공연 형태 속으로 편입되면서 생기를 잃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서양의 분석적 잣대로, 하나의 뭉뚱그려진 생명체라고 할 ‘마당놀이’를 음악적인 요소, 무용적인 요소, 연극적인 측면, 문학적인 측면 등으로 분해해서 접근하는 바람에 그 고유한 활력과 상호 통합적 생명력이 망실되고 만 것이다.
여하간 마당놀이 문화는 시대적 추이나 유행의 물결에만 내맡겨 놓을 일이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그것은 한낱 놀이와 예술 차원의 문제만이 아니다. 우리 민중적 삶의 에너지나 문화 발전의 잠재력과도 직결된 문제다. 대중적 안목도 이 점을 간과해선 안 될 것이고 국가적 정책도 여기에 착안해야 마땅한 일이다.
여러 가지 상황을 감안할 때 지운하池雲夏의 예인적 발자취는 여간 의미 있고 소중한 게 아니다. 명멸하는 마당놀이의 명맥을 묵묵히 지켜 오며 역사를 이어가는 이도 그이며, 남다른 소신과 열정으로 마당놀이 예술의 개화에 앞장서는 이도 곧 그이기 때문이다.
지운하는 이미 어려서부터 남사당패의 법구잽이로 뛰면서 마당놀이의 본질과 속멋을 속속들이 익히고 체화했다. 선천적 소양 없이 장성해서 기예를 익힌 재인才人들과는 본질적으로 연희演戱의 질이 다르다. 지 명인은 평생을 그 바닥에서 땀 흘린 사람이다. 누구나 남의 성취를 감상하기는 쉽지만, 그 성취가 있기까지의 세월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지운하의 공연 앞에서는, 우리 모두 무대 위의 성취와 함께 그의 족적에 배어 있는 인고의 시간들을 공유하며 공감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그늘진 분야의 예술을 지켜 온 뚝심 있는 예인들의 소중함을 이해하게 되고, 그래야만 수다한 전통예술의 뿌리며 모체라고 할 마당놀이 예술의 중흥이라는 시대적 현안을 실감하게 되겠기 때문이다.
지운하의 의미심장한 무대공연을 재삼 축하하며, 이번 공연을 계기로 국립국악원에 대중적 소망을 대변해 갈 어엿한 전통연희단이 태어나서 우리의 살맛을 좀더 높여 줬으면 하는 꿈도 함께 꾸어 본다.
(본 연재는 이지출판사 출간 '한악계의 별들'에서 발췌하여 게재한다. 이를 허락해주신 출판사와 필자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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