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금)

[장편소설] 흙의 소리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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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흙의 소리 14

  • 특집부
  • 등록 2020.12.10 07:30
  • 조회수 1,323

흙의 소리

 

 

 

이 동 희

 

빈 터 <8>

그러니까 박연의 나이 34세 태종 11(1411)에 진사과에 급제하고 옥당玉堂에 선입되어 포상을 받았다. 태종 5년에 생원과에 급제(문과 초시初試)하고 6년 뒤 식년시式年試 대과大科(문과)에 급제하여 2단계시험(복시覆試)을 다 거친 것이다. 그후 42세 세종 원년(1420)에 집현전 교리校理에 배수되고 또 사간원司諫院 정언正言과 사헌부司憲府 지평持平에 중임되어 직무를 수행하던 중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 문학文學으로 발탁된다.

문학은 조선시대 세자의 교육을 맡아보던 세자시강원에 속하여 세자에게 글을 가르치던 정오품 벼슬이었다.

세자는 충녕대군이었다. 후일 가장 다양하고 뛰어난 업적을 남긴 성군聖君 세종대왕이다. 태종의 셋째 아들로 휘(이름)는 도이다.

하루는 태종이 불러서 궁에 들어가 알현을 하였다. 몇 번이나 편히 앉으라고 하는 데도 박연은 도무지 전신이 떨리고 불안하여 좌정할 수가 없었다. 시골 서생 출신이어서인가, 무엇을 잘못한 것이 있는 것도 아닌데, 큰절을 올리고 엎드린 채 고개를 들지도 못하였다. 용상의 임금을 쳐다볼 수도 없었다.

"편히 앉게. 다름이 아니고

임금은 무언가 어려운 청을 하려는 듯이 가까이 다가와서 간곡하게 말하는 것이었다. 명령이 아니었다.

"세자를 잘 가르쳐 주시오. 부탁이오.”

세자시강원 문학의 자리를 맡아달라는 부탁이었다.

박연은 정말 몸 둘 바를 몰랐다. 더욱 떨리고 불안하고 말문이 열리지도 않았다.

그러고 있는데 임금은 이제 그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주리라 믿어도 되겠소?”

이제 더 떨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황공합니다. 제가 감당할 직이 아닌 것 같습니다. 뛰어나고 훌륭한 인재가 많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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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성 화백의 작화 : [장편소설] 흙의 소리 14

  

간신히 말하였다. 사양인지 겸양인지 알 수도 없었다. 그리고 덧붙이었다.

"저는 시골 강촌에서 자라 식견이 없고 도량이 좁아 왕도를 가르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임금이 재차 부탁하였다.

"아니오. 여러 사람에게 추천을 받았고 그만하면 충분하오. 잘 부탁하오.”

더 무슨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더 사양하거나 거절하면 불충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어떻다는 것이 아니라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이고 당한 일에 전력을 다해야 하는 것이었다.

"잘 알겠습니다. 신명을 다 바쳐 소임에 충실하겠습니다. 그러면 충녕대군의 학문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그럼. 물론.”

임금은 간단히 대답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의미심장한 웃음을 던지는 것이었다.

조선 3대왕 태종에게는 양녕대군 효녕대군 충녕대군 성녕대군 네 아들이 있었다. 성녕대군은 일찍 병사했고 양녕대군은 장자이다. 대개 장자가 세자가 되고 왕위를 물려받았지만 부왕 태종이 왕위를 물려받는 과정에서 있었던 두 차례 왕자의 난을 보면서 왕의 자리에 별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어려서부터 침착하고 인품이 훌륭한 충녕대군에게 세자의 자리를 양보하려고 일부러 미친 척하고 다녔다. 그리고 어느 날 열심히 책을 읽고 있는 효녕대군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였고 효녕대군도 형의 넓은 뜻과 동생의 덕을 인정하고 여러 과정이 있었지만 면벽 합장을 하고 불제자가 되기를 결심한다. 충녕대군이 세자가 되기까지 그런 두 형의 사랑과 양보가 있었던 것이다. 분수를 알고 욕심 내지 않고 성군의 자질을 인증해 주었던 것이다. 그만큼 회한이 따른 일이기도 하였다. 양녕대군의 주유천하周遊天下를 하며 한스런 생애를 보낸 얘기가 그 속에 담겨 있는 것이다.

박연은 지체 없이 세자 충녕대군의 시강원 문학의 자리에 임하였고 경서와 사적을 강의하며 도의를 가르쳤다.

두 번의 과거에 급제하고 몇 가지 직을 맡아 벼슬길에 오르면서 그리고 시를 배우고 제술을 하는 과정에서 하나의 의문이 생기었다. 삶이란 무엇인가. 벼슬이란 무엇인가. 결국 무엇을 하자는 것인가. 옥계폭포 아래서 지프내 강을 바라보며 되물었던 물음의 연결이었다. 참된 삶이란 무엇인가.

그러다 하나의 공간을 발견하였다. 고향집 앞 뜰과 같은 강가의 땅이었다. 봄이면 난초가 삐죽삐죽 돋아나고 사철 맥문동이 깔려 있고 그 옆에 푸성귀도 심을 수 있는 빈 터였다.

거기 답이 있는 것 같았다. 그곳에 돌아가 부모님 조부모님 모시고 아내와 아이들과 욕심 없이 살 때까지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바치며 곧고 바르게 휘지 않고 혼신을 다하는 것이다. 자문자답이었다.

그날부터 그의 이름도 바꾸었다. 은 고향 강가의 작은 빈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