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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흙의 소리 13

기사입력 2020.12.03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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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흙의 소리

     

     

     

    이 동 희

     

    빈 터 <7>

    졸지에 박연은 큰 짐을 지게 되었다. 작정을 한 것도 아니고 느껴지는 대로 아악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말하였는데, 그 분야에 특별한 지식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피리를 불고 퉁소를 불던 기량과 관계없이 궁중음악 의식가 제례악 등에 매력이 있었던 것이고 관심이 갔던 것이다. 그것은 생원시 급제 발표를 하고 국왕과 문무백관 앞에서 연주하던 전정고취에 대한 감격과 짐승들이 화답하던 부모님 시묘 때 자신의 피리소리와 연결이 되는 것이었다. 꿈이고 착각일지 몰랐지만 그런 생각에서 주제넘게 소견을 내놓았던 것이다. 그리고 학관은 또 무슨 생각에서 그런 주문을 하였는지 모르지만 좌우간 그것이 박연의 운명을 좌우하는 아니 결정하는 사건이 되었던 것이다.

    그는 재로 돌아가지 않고 장서각으로 가서 시와 관련된 서적을 한아름 빼어 들고 선 채로 읽어 대었다. 서고에도 규정이 있고 시간이 있었지만 워낙 걸신들린 것처럼 정신없이 복도에서 탐독하고 있는데다가 뭐라고 하면 큰절을 하고 다시 뭐라고 하면 큰절을 더 여러번 하는 것이었고 갈망하는 눈빛 영롱하고 너무 간절하고 애절한 욕구가 얼굴에 씌어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몇 고비를 넘기고 혼자 남아 밤을 새워 책을 읽을 수 있었다. 뭘 먹지도 못하고 물 한모금 마시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볼일을 보지 않아도 되었고 잠도 오지 않았다. 날이 새는지도 모르고 다시 서고의 관원이 돌아오는 줄도 몰랐다.

     

    난계-흙의소리13-2 (1).JPG
    이무성 화백의 작화 : [장편소설] 흙의 소리 13

     

     시경의 시 3백 편을 다 읽고 시전에 풀이한 글 그리고 시경집주集註의 주석을 훑었고 닥치는 대로 이 책 저 책을 읽어재끼었다. 물론 읽는 대로 다 알지도 못하였고 머리에 들어가지도 않았다. 뭐가 뭔지 모르는 말이 많았고 뜻이 통하지 않고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 더 많았다. 한문 고문인데다가 중국 상고시대의 이야기를 직설적으로 기술한 것도 아니고 비유적이고 풍자적으로 표현하고 함축적이고 유연하게 노래로 읊고 있어 어렵고 해석이 힘들었다. 상고인上古人의 유유한 생활을 구가하는 시, 당시 정치를 풍자하고 학정을 원망하는 시들이 많았다. 농경문화가 발전하고 봉건제가 정착되고 사상과 예술이 꽃피던 주왕조에서 춘추전국시대까지 황하강 유역의 여러 나라 왕궁에서 부른 시가時歌였다.

    시경집주는 주희朱熹가 저술한 책으로 시전을 편집하고 주를 달아놓은 것이다. 그 서에 시에 대하여 말하였다.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시를 어찌 해서 짓느냐고/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人生而靜 天之性也

    感於物而動 性之欲也

    사람이 나서 고요함은 하늘의 성품이요/물건에 느끼어 움직임은 성품의 욕심이다.

    태극이 정하고 동하듯이 전자는 몸()이 되고 후자는 얼굴()이 된다. 이렇게 전제하고 시가 무엇이며 왜 시를 읽는가에 대하여 써내려갔다.

    무릇 이미 욕심이 있을진댄/곧 능히 생각이 없지 않고/이미 생각이 있을진댄/곧 능히 말이 없지 아니하고/이미 말이 있을진댄/곧 말이 능히 다하지 못하는 바가 있어서/자차咨嗟하고 영탄하는 나머지 발하는 자가/자연히 음향절주音響節族가 있어서/능히 그만 두지 못하니/이것이 시를 짓는 바이니라

    물건에 감동이 된다는 것은 성품의 욕심으로 곧 무엇인가 하고 싶어 발동이 되어 나오는 것이다. 이러한 욕심은 생각이 있는 것이고 말로 표현되어 나오지만 주역周易에서 공자가 말하였듯이 書不盡言 言不盡意, 글로서는 말을 다 하지 못하며 말로는 뜻을 다하지 못한다. 그것을 흥이다 부다 비다 하는 방법으로 표현한 것이 시라고 하였다. 그리고 아와 송은 주나라가 성한 시대 조정과 교묘郊廟에서 쓰던 노래의 말(樂歌之詞)이라고 하였고. 악시이다.

    주희는 서의 끝부분에서 시에 함유涵濡하고 체득하면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도를 거기서 얻으리라고 하였다.

    박연은 밤을 꼬박 새웠지만 시만 읽고 악은 터득하지 못하였다. 더구나 아악 정책에 대해서 개선 방향에 대해서 답을 찾지 못하였다. 어김없이 시간은 다가와 난감한 심정으로 수업에 임하였다. 학관은 고지식하게 밤새 시만 읽은 순진하고 질직質直한 박연에게 더 큰 과제를 안겨 주는 것이었다. 소견만 얘기할 것이 아니라 체계를 세워서 글로 작성해 오라는 것이었다. 논문으로 써서 발표하라는 것이었다.

    그 과제와 시의 공부는 물론 그 뒤에도 더 깊이 음악 예술에 대한 탐구를 더하였지만 뒷날 박연이 문과에 급제하여 집현전 교리에 배수되고 송나라의 음률이 우리 체제에 맞지 않아 악기와 악식樂式을 제대로 구비하지 못한 현실을 정책적으로 제안하여 복원하고 개선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종내에는 우리나라의 악성이 되었던 것이다.

    운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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