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토)

[아리랑칼럼] (13)밈(Meme) 아리, 아라리, 아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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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칼럼] (13)
밈(Meme) 아리, 아라리, 아리랑

기찬숙/아리랑학회 연구이사

  • 특집부
  • 등록 2020.11.28 07:30
  • 조회수 11,874

모방(模倣, imitation)을 통해 전수되는 모든 것 또는 문화적 진화를 이끄는 새로운 복제자를 밈이라고 한다. 영국의 동물행동학자 클린턴 리처드 도킨스(Clinton Richard Dawkins)는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생물학적 유전자 말고도 문화적 유전자를 갖고 있다고 했다. 그것을 문화 복제자 이라고 했다. 이 밈은 문화 전달의 단위 또는 모방의 단위라는 개념으로, 사람이나 집단에게서 다른 지성으로 생각 혹은 믿음이 전달될 때 전달되는 모방 가능한 사회적 단위를 총칭한다.

 

유전자(Gene)를 핵심어로 하여 진화론을 확장시킨 이론이다. 유전자는 DNA를 포함하는 하나의 기능적인 단위로 유전자에는 생물의 세포를 구성하고 유지하고, 이것들이 유기적인 관계를 이루는 데 필요한 정보가 담겨있으며 생식을 통해 자손에게 유전된다. 도킨스가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에서 이 세상의 주인은 유전자라고 하며 인간은 물론 모든 동물은 유전자가 만들어 낸 기계다.’라고 했다. 인간 역시 유전자가 자기 보호막으로 세포를 만들어 자신을 다음 세대에 온전히 전달하도록 만들 기계라고도 했다.

 

밈과 유전자의 연관성을 들어 밈이 생명의 진화 과정에 작용하는 자기복제자의 한 종류라고 한다. 유전자가 자가복제를 통해 생물학적 정보를 전달하듯이, 밈은 모방을 거쳐 뇌에서 뇌로 개인의 생각과 신념을 전달하는 것이다. 밈은 유전자와 동일하게 변이, 경쟁, 자연선택, 유전의 과정을 거쳐 수직적으로, 혹은 수평적으로 전달되면서 진화한다. 또한 가장 많이, 효율적으로 복제되는 밈이 숙주인 인간 입장에서 그 밈이 갖는 유용성과 관련 없이 전파된다는 점에서 유전자의 이기적 측면과 유사한 특성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밈은 유전자와 매우 비슷한 성격이다.

 

아리랑을 예로 든다. 미상의 어떤 작자가 곡을 만들었다고 전제한다. 작자는 같은 동네 친구에게 이 곡을 들려줌으로서 아리랑은 친구라는 매개체를 통해 자기 자신을 복제했다. 이 친구는 주위사람들에게 곡을 들려주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아리랑을 알게 한 것이다. 이로써 아리랑이란 곡을 만든 작자와 친구가 사망한다 하더라도 아리랑은 사라지지 않게 되었다. 세대를 뛰어 넘어 자기를 보전하는데 성공하였다는 뜻이다. 게다가 밈은 돌연변이도 일으켜 이 곡을 들은 밀양에 사는 친구는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 그 곡을 전하는데 그만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밀양아리랑 이란 제목으로 전파시켰다. 돌연변이를 일으킨 것이다. 이와 같이 밈이란 DNA와 같이 문화를 새로운 개념의 자기 복제자를 뜻한다.

 

다시 이 밈으로 아리랑에 접근하면 기존에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 지금까지 우리는 메나리 아라리가 강원도에서 통혼권(通婚圈)과 장시권(場市圈)에서 전파되었거나 한강 수로를 통해 전파되었으리라는 막연한 전파론을 믿어 왔다. 그러므로 이의 인과관계를 입증하지 못하여 그럴 것이라고만 되풀이 해왔다.

 

그런데 아리아라리또는 아리랑이 밈으로 퍼져나갔다는 것이다. 그 구체적인 자료가 불설명당경아리랑이다. 도광3(1823) 청석거사(靑石居師) 수고본(手稿本)으로 전해지는 불설명당경아리랑의 후렴에서 알 수가 있다. 충청도 민간신앙 앉은굿에서 아리, 아라리, 아리랑, 사리랑이 후렴사에 쓰인 것은 매우 비맥락적 결합이다. 결과적으로 음감 좋은 어구가 밈으로 작용한 것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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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설명당경 아리랑 [-佛說明堂經]은 도광 3(1823) 청석거사(靑石居師)의 수고본이다. 1986년 발굴, 공개된 자료인데 현재로서는 가장 오랜 아리랑 관련 기록이다. 이 자료를 통해서 알 수 있는 사실은 아리랑이 민간신앙과 유착되어 전파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하며 또한 민간에서 '아리랑마 마부적' 같은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진언'으로서 영험함이 있다고 믿었던 것을 알게 한다. 또한 주목하는 것은 이미 19C초에 오늘날과 같은 후렴 형태가 갖춰져 있었음도 알 수 있다. 이 자료에 대한 발굴 경위와 서지 사항은 김연갑의「팔도아리랑기행」(Ⅰ)을 참고할 수 있다.(사진=국악신문 소장본)

 

 "불설명당 신주경 안토지신 명당경/ 아라리 사라리 아리사리 아리랑

여시아문 일시불 천황대제 수명장/ 사라리 아라리 사리아리 사리랑"

 

 반드시 이런 음가의 어구만이 밈의 역할을 했다고 할 수는 없다. 메나리토리의 일정 부분도 밈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료상으로는 위의 불설명당경아리랑에서처럼 특정 음가의 어구만이 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