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금)
기찬숙/아리랑학회 이사
이 땅 어디에든 아리랑은 있다. 그 곳이 우즈베키스탄(Uzbekistan)이나 사할린의 어느 골목이든 말이다. 한국인이 사는 곳에는 반드시 아리랑이 불려진다는 뜻이다. 그런데 하물며 제주도에 아리랑이 없겠는가. 필자가 답사하며 갖는 단견이다. 그런데 어느 음악학자는 아리랑이 있는 음악권과 없는 권역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제주도는 아리랑이 없는 음악권역이라고 주장한 때가 있었다. 의야해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과연 제주에는 아리랑이 없는가?
문화재청의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아리랑과 국가무형문화재 129호 아리랑 해설에는 아리랑에 대한 음악적 특징이나 각각의 아리랑 간 차이를 언급하고 있지 않다. 이에 대한 저간의 이유가 있겠지만 필자의 생각으로는 아리랑의 숫자나 음악성에 대해서는 다른 종목과 달리 누구도 명확한 지론을 내놓을 수 없다고 본다. 그 이유는 ‘아리랑’은 이미 민요(노래)의 권역에서 문화 영역으로 확대되어 누구에게나 받아들여지는 보편적 해석을 내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얻을 수 있는 결과는 ‘아리랑은 음악적으로 정의하거나 구분을 짓는 것은 유의미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필자의 단견을 전제로 할 때 ‘제주의 아리랑’과 ‘제주아리랑’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전자는 제주 지역에서 불려지는(소유한) 아리랑이고 후자는 제주만의 고유 아리랑을 말한다. 이는 광의 또는 협의의 개념이기도하고, 속지주의(屬地主義)냐 속인주의(屬人主義냐)로 구분할 수 있는데, 대체적으로 이 둘을 구분하지 않지만 제주에서 만큼은 필요한 체계이다.
이 문제는 1994년 ‘팔도아리랑기행’(김연갑, 집문당)에서 제주 우도지역 해녀들의 ‘잡노래’를 ‘제주화한 아리랑’으로 발표하고, 같은 해 제주 조천 조운선 할머니의 ‘조천아리랑’이 신나라의 ‘한반도의 아리랑에 수록이 되면서 논의되었다. 그리고 2005년 문화재청의 ‘지역별아리랑전승실태 조사보고서’에서 지역 아리랑으로 구체화 되었다.
이런 영향에서 최근 보도에 의하면 제주지역에서도 ‘제주아리랑보존회’가 법인으로 등록되었다고 한다. 어떤 아리랑이 보존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당연한 문화현상이아 본다.
이에 필자의 관심은 이들 아리랑의 기반 문제이다. 적어도 한 세대 이전의 기층에 아리랑적(?) 요소가 있느냐의 문제인데, 다음 두 가지 요소가 확인된다. 즉 속인주의로서의 ‘고권삼’이란 인물과 속지주의로서의 ‘꽃타령’ 존재이다.
고권삼은 우리 아리랑 역사에서 아리랑을 정치사상사 측면에서 주목한 인물이고, ‘꽃타령’은 ‘제주도실기’(탐라지보유,1936년)에 수록된 문헌 소재 아리랑 사료이다. 이런 자료를 통해 제주지역 아리랑은 기층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고권삼(高權三, 1901~1950)은 성산면 온평리<열운이> 태생으로 1927년 3월 와세다<早稻田>대학 전문부 정경학부를 졸업하고 동대학 연구실에 재직하였다. 광복 후 귀국하여 동국대학 교수, 서울대학 강사 등을 역임하다 1950년 6·25민족전쟁 당시 서울에서 납북拉北을 당하였다. 저서로는 1930년 일본에서 ‘조선근대정치사朝鮮近代政治史’, 1933년 일어판 ‘조선정치사강朝鮮政治史綱’, 그리고 귀국하여 1947년 한글판 ‘조선정치사’를 발간했다. 이들 저서에서 아리랑을 하나의 독립 항목으로 하여 논하였다. 요지는 이렇다.
"비폭력 비협동의 理想의 정치적 가치는 문화적으로 진보할수록 더욱 빛나는 것이다. 조선의 <아리랑主義>는 근본적이요 적극적인데 더욱 가치가 있다. 이 <아이롱主義>는 정치사상에 있어 위대한 존재요 또 조선의 정치사를 빛나게 하는 문화적 요소다. <중략> <아리랑主義>의 철학은 평화주의이다. 평화가 없고는 건설이 없고 건설이 없고는 문화가 없고 문화 없는 데는 행복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은 평화의 使徒요 인류평화의 指導者이다.”
매우 의미심장한 시각의 해석이다. 이 같은 논의 이후 아직 우리는 이런 시각에서 접근한 성과가 없다. 일제시대 일본 내에서 정치학자라는 위치에서 한계를 갖는 논의이지만, 접근 시각과 연구방법론에서는 오늘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 이런 주장자인 고권삼이 제주 출신이란 점에서 주목한 것이다.
다음 ‘제주도실기’ 소재 ‘꽃타령’을 보자. 이 자료가 수록된 ‘제주도실기’는 1887년 제주시 일도리 출생인 김두봉(金枓奉)이 1936년 오사카에서 펴낸 제주 향토지이다. 다른향토지와 다르게 문화분야를 주목하고 편집했는데, 서문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 즉, "어찌 이름 있는 곳에 실상이 없겠는가. 제주의 전모를 실상과 같이 그리고 삼신인이 태어났던 연혁과 고고학적 자료를 모아 유람자의 지침이 되도록 하고자 이 책을 발간한다”고 하였다. 결국 이 책에 담긴 내용은 나름대로 제주도적 근거를 갖는 것들이라고 전제한 것이다. 그리고 제22장 ‘한라산 별곡’중 ‘꽃타령’을 수록했다. 총 17연의 한문투 가사체 노래이다. 이 중 2연을 본다.
꽃타령아리랑
삼월 동풍 호시절에 먼저 피는 척촉화躑躅花야
춘광春光이 덧없어서 몇 등걸만 난달 만가
만화방창(萬花方暢) 방끗 만화방창 방끗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후렴)
영산홍 네얼골은 빗추어서 더욱곱다
낙근고기 꿔어들고 차문借問 주가酒家저杏花야
만화방창(萬花方暢) 방끗 만화방창 방끗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후렴)
살구꽃과 영산홍을 소재로 한 꽃노래이나 후렴에서 "만화방창 방끗 만화방창 방끗/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이다. 아리랑을 ‘후렴에서 아리 아라리 아리랑을 되풀이하는 노래’라고 규정한 문화재청 논리로만 본다면 분명 아리랑의 하나이다. 이를 수록한 편자 김두봉이 1887년생이고 대표적인 향토사가라는 점에서 이 자료 역시 아리랑의 기층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정황을 주의 깊게 살핀다면 우리가 미처 찾아내지 못하고 누군가에게만 전승되어 오는 ‘제주의 아리랑’과 ‘제주아리랑’이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어느 지역 보다 집단 이주가 빈번했던 근대사 속의 제주와 제주인의 문화를 더욱 관찰할 필요성이 아리랑학에서도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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