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토)

[장편소설] 흙의 소리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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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흙의 소리 7

  • 특집부
  • 등록 2020.10.22 07:30
  • 조회수 953


흙의 소리

 

이 동 희

 

빈 터 <1>

 

 

관로의 길로 들어서는 과거의 최초 시험을 통과한 것이다.

생원시生員試오경의五經義와 사서의四書疑의 제목으로 유교 경전에 관한 지식을 시험하였다. 그리고 합격자에게 생원이라는 일종의 학위를 수여하는 것이었다. 진사시進士試는 부와 시의 제목으로 문예 창작의 재능을 시험하는 것으로 3년에 한 차례씩 치러졌고 국왕의 즉위와 같은 큰 경사 때 별시別試가 있었다.

박연은 6년 뒤에 있었던 진사시에 다시 급제를 하게 된다.

시묘살이를 끝내고 집에 내려와서야 아내를 의식하게 되었다. 미안하고 송구하고 죄를 지은 것 같아 볼 면목이 없었다. 징역살이를 시킨 것이었다. 젊은 아내에게 그보다 더한 고통을 준 것이었다. 여산 송씨 판서를 지낸 송빈의 금지옥엽 같은 딸로 예의 바르고 심성이 고왔다. 신혼에 여막에서 6년을 지내도록 말 한마디 않고 속내를 드러내 보이지 않았다.

"당신이 싫어서 이러는 게 아니오.”

12년도 아니고 독수공방을 하고 있는 아내가 너무 애처러워 말하면 얼굴이 빨개져 가지고 어쩔 줄을 몰랐다.

"아이고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그러세유?”

"듣기는 누가 있어 듣는다고 그래요?”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했어유.”

너무나 사리가 분명했다.

아내와 같이 거처만 하지 않는 것이 아니고 방사라고 할까 전혀 관계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세상이 다 아는 효자를 집 사람이 모를 리 없지유.”

"한 번 안아만 주고 가리다.”

빈말이라도 한 마디 할라치면 오히려 어른스럽게 절도를 지키도록 하는 것이었다.

"천지신명이 내려다 보고 있어유.”

"내가 당신에게 졌소.”

"아녀자에게 지면 안 되지유.”

아내는 그러며 산에 갈 차비를 차려 주는 것이었다.

시묘는 남편이 하였지만 그 뒷바라지는 아내가 다 하였던 것이다.

 

난계-흙의소리7.jpg
작화: 이무성 화백

  산에서 내려온 후에도 좌정을 못하고 여기저기 떠돌아다니고 집에 마음을 붙이지 못하였다. 산으로 들로 다니며 피리를 불고 퉁소를 불며 슬픔을 달랬다. 향교에 갔다가도 바로 돌아오지 않고 산바람 강바람을 쏘이고 다녔다. 퉁소 바위에 앉아 지푸내(심천) 흘러가는 물을 바라보기도 하고 옥계玉溪폭포 아래서 하염없이 물소리를 듣고 있기도 하였다. 도무지 마음을 잡지 못하였다.

너무나도 컸던 애통과 아쉬움이 도무지 가셔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심정으로 소리를 다듬고 있었다. 마음을 가다듬고 있는 것이었다. 밤늦도록 강을 바라보고 조신스럽게 퉁소를 불며 부모란 무엇이며 자식이란 무엇이며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벼슬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사는 것이 참되고 가치 있고 보람된 삶인가, 혼자 묻고 생각하였다. 천문 지리보다 어렵고 노 젓고 짐 지는 것보다 힘들었다. 답이 찾아지지 않고 자꾸만 의문이 쌓이었다. 소리란 무엇이며 아름다움이란 무엇이냐 즐거움이란 무엇이며 예술이란 또 무엇인가, 조금은 알듯도 하고 점점 모르겠기도 하였다. 그럴 때마다 폭포 물 떨어지는 소리 아래서 득음得音이라도 하려는 듯이 목청껏 피리를 불었다.

소리가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는 마구 퍼대고 앉아 울기도 하였다. 실성을 한 듯 껄껄거리며 웃어대기도 하였다. 그가 생각해도 괜찮은 소리가 될 때는 혼자 무릎을 치기도 하였다. 그러나 소리가 됐는지 어쨌는지 사실 그로서는 그 경지를 알 수 없는 것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이 괜찮다고 좋다고 대단하다고 하는 얘기에 귀가 얇아지기도 하고 차츰 나름대로 느낌을 갖게도 되는 것 같았다.

따지고 보면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향교의 명륜당에서는 나무랄 데가 없는 서생이었다. 아주 모범생이었다. 시문을 짓는 사장학詞章學이나 유교 경전을 공부하는 소학과 사서오경 그리고 여러 역사서들을 꿰뚫었고 가례는 몸소 실천해 보였던 것이다. 몸과 마음을 닦고 또 닦았다.

그러나 집에서는 아내에게만은 믿음을 주지 못하였다. 철이 들지 못한 모습이라고 할까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남편이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명륜당에서 심경心經(송나라 때 진덕수陳德秀가 시경 서경 등 경전과 도학자들의 저술에서 심성 수양에 관한 격언을 모아 편집한 책)의 책거리를 마치고 오는 길이었다. 술이 거나하였다.

밤이 늦은 시각에 갈지자걸음으로 집 앞에 당도하였을 때 아내가 사립문 앞에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늘 밤늦을 때마다 이렇게 한없이 서서 기다리다 맞이해 주었던 것 같다.

"미안해요. 정말 너무 잘못했소.”

그는 아내를 와락 끌어안으며 울컥하였다.

"왜 이러세유. 어서 들어가셔유.”

"내가 수신修身만 하고 제가齊家는 못 하였소.”

마당으로 들어서는데 계속 눈물이 쏟아지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