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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흙의 소리 6

특집부
기사입력 2020.10.15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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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흙의 소리

     

     

    이 동 희

     

    피리 소리 <5>

     

    "히야아 참 별천지네!”

    너무 신기하기도 하고 믿어지지가 않아 입이 딱 벌어진 채 다물어지지 않았다. 음률이나 음악에 대한 사무가 무엇이며 그것을 나라 관아에서 맡아 해야 할 일이 무엇이란 말인가.

    누구에게 물어보기 전에 생각해 보았다. 자신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아직 어리고 시골 강촌에 살고 있는 하동 산골짜기 소년에 불과하지만 알 것은 다 알고 또 궁금한 것은 한 없이 많았다. 또래 중에서도 의문이 생기면 매사 그냥 지나치지를 않았다. 아버지가 없는 그로서는 항상 스스로 해결해야 된다고 다짐했고 그렇게 하였던 것이다.

    "웬 놈이냐?”

    사무를 보고 있는 중년의 아전이 다가왔다. 몽둥이를 차고 있었다.

    도무지 두리번두리번 실내를 살펴보는 것이 수상하고 유난하였던 것이다. 좌판 같은 데다가 많은 악기를 진열해 놓았고 벽에는 여러 가지 그림과 설명이 담긴 걸개와 편액들이 걸려져 있었다. 소년은 그 양쪽을 번갈아 보며 정신없이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들어오는데도 어거지 떼를 썼던 것이다.

    "시골 촌놈이올시다.”

    "뭐가 어째?”

    "여기가 뭘 하는 곳이랑가요?”

    너무 태연하고 순진한 소년의 얼굴 청아한 눈빛에서 범상치 않은 기운을 읽을 수 있었다.

    아전은 씩 웃으며 표정을 바꾸고 천천히 얘기를 해주는 것이었다.

    여기는 음악의 교육과 연주활동을 관장하던 악학도감樂學都監으로 여러 관리들과 교육생들이 있는 관서였다. 뒤에 안 일이지만 장악원에는 음악 교육을 담당한 전악典樂(6) 전율典律(7) 전음典音 전성典聲 등 관리와 악사樂師 그리고 여러 명의 악공樂工 악생樂生을 두었던 것이다. 음악 활동은 주로 악공과 악생들이 담당하였다. 예조禮曹에 소속되어 있어 제례 연회 등에서 음악 연주 활동을 하였다. 가령 종묘 제례는 속부제악俗部祭樂을 그리고 사직 제례는 아부제악雅部祭樂을 연주하였다. 그리고 국왕이 문무백관과 조회할 때, 국왕과 왕비의 생일, 문무과의 전시殿試와 생원 진사과의 급제 발표 등에서 전정고취殿庭鼓吹를 연주하였다. 상상만 해도 휘황한 궁중 음악들이었다.

    "참 대단 뻑쩍합니다.”

    시골 촌마을 소년의 머리속에 다 들어갈 수 없는 얘기들이었다. 그러나 찬란하게 그려지는 그림이 있었다. 너무나 가슴이 벅차고 뭔가 철철 넘치는 기류가 곤두박질치며 폭포처럼 흘러내렸다. 걷잡을 수 없는 감정을 자제하지 못하고 있는데 은은히 울려 퍼지는 음률이 제압하고 있었다.

    어젯밤 듣던 소리였다. 잠을 이루지 못하였던 가락이었다.

    악사가 불고 있는 피리 소리였다. 그가 다시 듣고 싶은 간절한 소리임을 알고 있었던가.

    "아아……

    그립고 아쉽고 아련한 가락이었다.

    계속 그 소리가 귓가에서 맴돌았다.

     

    흙의소리6회차.JPG
    작화: 이무성 화백

     

    그 피리 소리는 그날 그의 가슴에 붉게 인쳐진 것이다. 운명의 소리였다. 그때 그 순간부터 피리를 불 때 그냥 불지 않았다. 피리든 퉁소든 거문고든 가장 곱고 아름다운 소리를 내기 위하여 아니 최상의 가락과 음률을 뽑아내기 위하여 할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의 노력을 다 하였던 것이고 그것을 하루 이틀 조금씩 조금씩 다듬어갔던 것이다. 천성이 손톱만치도 남에게 지기 싫어하긴 했지만 그 도가 달라졌다. 키도 훌쩍 크고 어른스러워졌다. 끈기는 더 대단해졌다.

    그냥 그저 남다른 소리를 읊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풀이면 풀 나무면 나무에 혼신의 힘을 다 불어넣었던 것이다. 어쨌든 근동에서 알아주는 재동이었다. 모두들 그의 소리에 감동을 하고 입이 마르게 칭찬을 하였다. 한두 번 한두 사람이 아니었다.

    퉁소바위가 있다. 고당리 마을 앞을 흐르는 고당개 조금 아래쪽 산 옆 강 속에 있는 길쭉한 바위를 그렇게 부른다. 모양이 퉁소 같아서가 아니고 박연이 퉁소를 불던 바위였다. 그가 피리를 불고 퉁소를 불면 산천초목이 다 반응하고 춤을 추었다. 앞에서도 얘기하였지만. 음악의 힘이었다.

    장악원에서 어린 촌뜨기의 뇌리에 박힌 또 한 가지가 있었다. 전정고취였다. 찬연한 미래에 대한 꿈을 꾸고 있었다.

    그로부터 몇 년째던가. 28세가 되던 태종 5(1405)에 생원과에 급제하였고 국왕과 문무백관이 보는 궁전 뜰에서 아부제악이 연주되었다. 그때 대낮의 꿈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정정-<피리소리4> 내용 중 박흥생이 박연의 4촌 동생이라고 하였는데 4촌 형, 영동군 심천면 면지편찬위원장 이규삼 선생이 연재소설을 읽고 연락하여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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