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금)
한명희/이미시문화서원 좌장
1978년의 일이다. 한국 음악계의 지평에 번쩍 섬광이 하나 일었다. 신천지를 여는 개벽開闢의 신호였다. 개벽의 섬광과 함께 물방울이 하나 생기고 파란 새싹이 돋았다. 물방울은 모여 실개천이 되고 실개천이 모여 강물이 되었으며, 강물은 흘러 오대양을 이루며 도도한 파도를 만들었다. 새싹은 자라 초목이 되고 초목은 자라 우람한 거목이 되었으며, 거목은 밀림을 만들며 지구촌을 온통 싱그러운 초록 포장으로 뒤덮었다.
바로 사물놀이가 걸어온 ‘전설’같은 족적이요 역사다. 사물놀이가 고고성呱呱聲을 울린 곳은 서울 원서동의 ‘공간사랑’에서였다. 당시 공간사랑 소극장에서는 작지만 문화적 의미가 큰 행사들이 많이 열렸었다. 특히 무심한 사람들이 지나쳐 버린 전통문화를 수없이 발굴하고 기획하여 세상에 알린 공적은 한국문화사에 크게 남을 일이다. 앞서가는 문화 안목에다 전통과 개성을 존숭尊崇하던 고 김수근 건축가와 한창기 문화 딜레탕트dilettante의 시대 의식 덕택이 아닐 수 없다.
아무튼 민속학자 심우성이 작명했다고 하는 사물놀이는 출생과 함께 선풍적인 반향을 일으켜갔다. 잘 알다시피 사물놀이란 사물四物, 즉 네 가지 타악기를 가지고 신명나게 한판 펼쳐보는 공연물이다. 원래 사물악기는 농악農樂의 기본 악기다. 농악은 멀리 상고시대부터 한국인들의 삶과 고락을 함께해 왔다. 그만큼 역사도 깊고 환기시키는 감성의 스펙트럼도 다채롭다.
농악은 요즘 유행어로 말하면 융복합적인 마당놀이였다. 음악이 있고 춤사위가 있고 기예가 있다. 특히 농악은 리듬의 보고寶庫다. 한국인의 핏줄 속에 흐르는 리듬감은 다 그 속에 있다. 그래서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의 깃발을 앞세운 농악대가 저만큼 동구 밖에서 징소리를 울리며 다가오면, 이내 온 동리는 신바람의 파노라마로 술렁대기 일쑤였다.
그 후 시대는 상전벽해로 바뀌었다. 농본사회가 산업사회로, 농촌형 환경이 도시형 환경으로 환골탈태됐다. 농악놀이가 설 자리가 없어졌다. 마을마다 있었던 널찍한 마당마저 사라졌다. 전래의 야외 마당놀이가 고사枯死해 갔다. 궁여지책의 대안이 산업사회가 제공한 도시의 실내무대였다. 농악계도 지혜를 짜냈다. 농악의 핵심 악기만으로 음향의 균형을 잡아 사중주의 틀을 짠 것이다. 그것이 곧 오늘의 사물놀이였다.
사물놀이는 출생 당시부터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우레 같은 음향의 홍수가 듣는 이를 압도했고, 용출湧出하는 에너지는 고목에도 생기가 돋을 듯했다. 이 같은 이단아적인 음향덩이tone cluster는 당시 시대 상황과도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60, 70년대는 전통음악의 수난시대였대도 과언이 아니었다. 서구 음악에 밀리고 치이며 우리 음악은 대중의 안중에 없었다. 국악은 느리고 무기력해서 싫다는 것이 일반인들의 핑계였다. 이 같은 통념을 일신시킨 지렛대가 다름 아닌 사물음악이었다. 전통음악 중에도 발랄하고 싱그러운 음악이 있음을 확실하게 주지시켰다. 자연히 대중들의 관심도 높아져 갔다. 농본사회 때 각인된 아련한 추억의 향수와 함께.
사물의 등장 시기는 유신 말기였다. 온 국민이 속앓이하던 울분의 시기였다. 해머로 폐차를 두들겨 부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하던 시절이었다. 이때 사물이 적시에 등장했다. 무대에서 꽹과리며 북이며 장고며 징을 땀을 뻘뻘 흘리며 두들겨대는 사물놀이는 일시에 시대적 분노를 날려 버렸다. 리듬이 어떻고 가락이 어떻고가 문제가 아니었다. 지축을 울리는 음향과 신들린 듯 두들겨대는 연주자들의 모습만 봐도 스트레스가 풀렸다. 그들의 한판 놀이에는 십 년 체증이 뚫리고 시대적 공분이 희석됐다. 그러고 보면 사물놀이야말로 음악이되 음악의 범주를 뛰어넘는 다중적 의미가 응축된 역사적 산물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막중한 의의를 지닌 사물음악의 중심에 바로 김덕수라는 타고난 재질의 장인匠人이 있다. 알다시피 김덕수는 농악 집안의 후손이다. 농악적인 정서와 리듬감이 골수에 배어 있다. 게다가 유년기부터 무동舞童 역을 하며 놀이판을 누볐다. 뒤늦게 기교만을 익혀서 활동하는 연주가들과는 질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 감동적인 예술이란 숙달된 기교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몸 속에서 솟아나는 감과 끼가 받쳐 줘야 한다. 한마디로 기량 이전에 예술적인 유전질, 즉 토양이 비옥해야 한다. 김덕수는 그들을 두루 갖춘 명인이다. 거기에 남다른 추진력과 기획력도 돋보이는 인재다. 그러기에 사물음악 오늘의 튼실한 결실을 창출해 낼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곧 이변이었다. 놀람이요 감동이었다. 명맥이 끊겨 가던 농악이 사물놀이로 중흥되며 지구촌의 음악으로 확산되었으니 세상사 새옹지마랄까, 진실로 뭉클한 감격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새로운 문화 조류 하나를 조성해 낸 주역이 김덕수다. 마치 서양 고전·낭만시대의 현악사중주처럼, 한국의 타악사중주percussion quartet 음악을 국내는 물론 세계 만방에 ‘한류’의 효시를 이루며 확산시켜 간 이가 바로 김덕수다. 이 같은 관점에서도 김덕수는 문화사적으로 깊이 조명받을 인물이 아닐 수 없다.
(본 연재는 이지출판사 출간 '한악계의 별들'에서 발췌하여 게재한다. 이를 허락해주신 출판사와 필자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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