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금)

[장편소설] 흙의 소리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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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흙의 소리 3

  • 특집부
  • 등록 2020.09.24 07:00
  • 조회수 1,029


 

흙의 소리

 

 

 

이 동 희

 

피리 소리<2>

 

민하는 호랑이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자랐다.

아랫말 안골에 쌍정문이 있는데 오촌梧村 박응훈朴應勳의 효자문 통덕랑通德郞 박수현朴守玄의 아내 선산김씨의 열녀문을 이른다. 효성이 지극한 오촌과 호랑이의 이야기는 근동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다. 아버지가 병이 나 약을 지으려고 밤중에 길을 나서는데 호랑이가 나타나 상주와 선산 100여 리 길을 호위하였다. 등에 태워 단숨에 갔다 왔다고도 하였다. 아버지가 죽자 묘지를 알려주었고 묘를 쓸 때도 호랑이의 보호를 받았다. 이런 감동적인 일화를 현감과 선비들이 왕에게까지 상달하게 한 것이다.

그는 오래전 충북 영동군 매곡면 수원리 박명근(19081983)옹이 세필로 쓴 호점산 실기를 취재하여 학회지에 싣게도 하였지만 답사는 이 글을 쓰는 기회에 하게 되었다. 실기라는 것은 말의 뜻대로라면 실제 이야기를 기록한 것이다. 호랑이를 타고 다니고 호랑이와 친교를 맺은 희한한 이야기이다. 오촌의 묘는 황간면 소계리 성주골 호점산虎點山에  호랑이 무덤 호총虎塚과 함께 있다. 이름도 호점산이라 붙인 것이다.

참 이상하게 연결되는데 그도 호랑이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초등학교 몇 학년 때이던가, 3 4학년 땐가, ‘바른말 하기 듣기시간이 있었다. 지금의 특활 시간 같은 것이었다. 특기나 장기자랑을 하는. 노래를 하기도 하고 묘기를 보이기도 하였다. 이윽고 그의 차례가 돌아왔고 별 특기가 없는 터라 팥죽 할마이 얘기를 하였다.

한 할머니가 산마을에 혼자 농사를 짓고 살았다. 어느 날 호랑이 한 마리가 어슬렁어슬렁 다가와 할머니를 잡아먹겠다고 하였다. 할머니는 팥 농사를 지어서 동지 팥죽을 쑤어 놓을테니 그때 와서 팥죽도 먹고 나도 잡아먹으라고 달래서 돌려보낸다. 동짓날 다시 온 호랑이는 할머니가 맛있게 쑤어 준 팥죽을 다 먹고는 어흥, 할머니를 잡아먹으려고 하는데……

들을 때는 참으로 재미있었는데 영 잘 안되었다. 어떻든 그는 그날 이후 팥죽 할마이라는 별명을 갖게 되었고 나중에는 팥죽은 떼고 할마이가 되었다. 사투리 억양을 상상해 보시라. 운명인가, 언제부터인가 이야기를 하는 업을 갖게 되고 줄곧 죽을 쑤고만 있다.

 

흙의소리3차.JPG
작화 :이무성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어떻고들 말한다. 오래전 옛날 옛적의 일을 말할 때이다. 동화에서는 지금도 호랑이가 많이 등장한다. 어린 아이들에게는 현실을 뛰어넘는 이야기라야 재미가 있다. 그도 그런 이야기를 실제 이야기처럼 듣고 울고 웃고 하였던 것이다. 팥죽 할머니에 나오는 호랑이는 악역을 하고 있고 거기에 대응하여 멍석이 호랑이를 둘둘 말고 지게가 지고 멀리 가버리는 것으로 인격을 부여하여 처리한다.

박연의 이야기는 그렇게 고랫적 이야기는 아니다. 나이도 스무 살이 넘고 성인이었다. 어머니 내간상內艱喪을 당한 때가 스물한 살이고 거려삼년居廬三年 우거려삼년又居廬三年 시묘를 하였다.

대개의 호랑이 이야기는 효행과 연관이 되어 있고 이 여막에서 박연과 함께 지낸 녀석의 경우도 지극한 효성으로 인한 것이지만, 그러면서 사뭇 다른 데가 있었다. 너무나 인간적인 면모가 있다고 할까. 상주가 괴로워하면 같이 축 처져 괴로워하고 졸면 같이 졸다가 잤다. 무엇보다 노래 곡조에도 심취해 있는 것 같았다. 박연이 피리를 잡고 불 자세를 취하면 자기도 들을 준비를 하는 듯 다소곳이 고쳐 앉아 앞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추임새를 넣듯이 입을 쩍쩍 벌리기도 하고 수염을 쫑긋 세우며 앞발 뒷발짓을 하였다.

피리 소리는 연일 이어졌다. 애절한 소리는 산천을 흔들었다.

그런데 하루는 어인 일인지 녀석이 보이지 않았다. 밤이 늦도록 발그림자도 하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는겨.”

궁금하다가 걱정이 되고 또 기다리다가 애가 탔다.

하루도 거른 적이 없었다. 한 번도 안 온 날이 없었다. 와서 박연의 여막을 같이 지키고 피리 소리를 들어주었다. 참으로 고맙고 가상한 녀석이 아닌가. 그런데 아무래도 이상하였다.

"정말 웬일이여.”

새벽까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눈이 붙여지지 않았다.

"몸살이라도 난 것인가.”

아니면 이제 안 올 셈인가. 어디로 다른 데로 간 것인가. 뭐 섭섭한 것이 있었던가. 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러다 새벽 동이 틀 무렵이었다. 막 잠이 들었는데 녀석이 나타나 죽는 소리를 하는 것이었다.

"상주님! 상주님! 살려 주세요. 함정에 빠졌어요. 여기 당재인데요. 정말 죽게 되었어요. 상주님 제발 살려주세요.”

"아니!”

 꿈속이었다. 박연은 벌떡 일어났다. 꿈같지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