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토)
모리스 쿠랑의 『한국서지(Bibliographie Coréenne)』와 마에마 교사쿠의 『고선책보』
박대헌 고서점 호산방 주인, 완주 책박물관장
지난 회에서 언급한 이야기는 쿠랑의 『한국서지(Bibliographie Coréenne)』 서론의 기록들이다. 서지(書誌)란 고문헌이나 희귀본의 체제·내용·가치·보존상태 따위를 조목 조목 밝힌 기록을 말한다. 따라서 서지 연구는 모든 분야의 학문 연구에서 가장 먼저 이루어져야 하는 중요한 기초 작업이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한국 고서의 서지 연구에서 가장 훌륭한 책을 둘만 꼽으라면 바로 쿠랑의 『한국서지』와 마에마 교사쿠(前間恭作, 1868-1942)의 『고선책보(古鮮冊譜)』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쿠랑의 『한국서지(韓國書誌)』는 모두 네 권으로, 1894년부터 1901년까지 프랑스에서 출간되었다. 프랑스의 동양학자 겸 외교관으로 1890년 5월 조선에 입국하여 조선 주재 프랑스 부영사 겸 통역사로 2년간 근무했다. 이 책의 편찬에는 1887년 조선의 첫 번째 프랑스 외교관으로 온 빅토르 콜랭 드 플랑시(Victor Collin de Plancy)와 프랑스 카톨릭 선교사 뮈텔(Mutel) 주교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이 책은 고려시대의 『고금상정예문(古今詳定禮文)』에서부터 구한말의 『한성순보(漢城旬報)』(*사진 4)에 이르기까지 3,821종의 도서를 교회(敎誨)·언어·유교·문묵(文墨)·의범(儀範)·사서(史書)·기예(技藝)·교문(敎門)·교통의 아홉 부로 분류하고, 각 문헌에는 불어로 해제를 붙였다.
책머리에는 장문의 서론이 있는데, 여기서는 조선 도서의 성격과 특징을 언급한 데 이어 언어와 문자, 유·불·도 사상을 비롯하여 역사·지리·전례(典禮)·정법(政法)·수학·천문학·병법·의술·점성술·예술 등을 문화사적 시각에서 개관했다.『한국서지』는 그 첫째 권이 출간되고 100년이 되어서야 한국어 번역본 『한국서지』(이희재 역, 일조각, 1994.)가 출판되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이희재 교수는 이 책의 번역작업에 평생을 매달렸는데 언젠가 나에게 "모리스 쿠랑을 짝사랑하다 시집도 못갔다”고 한 말이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마에마 교사쿠는 일본의 한국어학자로, 1891년 게이오기주쿠(慶應義塾)를 졸업한 뒤 유학생으로 내한하여 1894년부터 인천영사관에 근무하다가 1900년 시드니로 전임했으나, 이듬해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서 공사관의 이등 통역관이 되었다. 1910년에는 총독부 통역관으로 일하다가 1911년 귀국했다.
그는 한국에 머무는 동안 한국 고서의 수집과 연구에 전념했고, 수천 권의 고서를 수집하여 이를 바탕으로 『고선책보』(*사진 5)를 출간했다. 『고선책보』는 46배판 크기에 2천 쪽이 넘는 분량을 세 권으로 나눈 책이다. 첫번째 권이 1944년, 두번 째 권이 1956년, 그리고 세번째 권이 1957년에 나왔으니, 완간되기까지 12년이 더 걸린 셈이다. 첫번째 권은 일본의 도요분코(東洋文庫)에서 출간했으나 일본이 패망한 뒤 그 후속 권을 출판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러다 일본 문부성의 지원으로 완간을 보게 되었지만 저자는 생전에 자신이 쓴 책의 완간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이처럼 어느 분야의 서지를 정리하는 작업은 서지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자료수집, 열정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 학계에서는 이러한 공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들에 대한 평가가 매우 인색해 보인다. 서지작업을 업적이라 생각하기보다는 단순한 정보의 나열이라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다. 아주 고약한 마음이다.
우리나라 고서의 특색으로는, 첫째 오래된 고서가 많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지금도 고서점이나 골동품 가게에 가면 고서가 수북이 쌓여 있는 것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질과는 상관없이 수적으로는 대단히 많은 것이 사실이다.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외세의 침입이 많았던 나라다. 가깝게는 6.25전쟁을 겪으면서 이전의 전쟁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온 나라가 황폐화했다.
또 개화기부터 6.25를 전후한 시기까지 우리의 전적(典籍)과 고서화가 무차별적으로 약탈당하거나 또는 헐값에 외국으로 팔려 나갔다. 수없이 많은 전쟁의 참화를 겪고도 이만큼 고서가 보존되어 온 것을 보면 우리 출판문화가 매우 발달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1960-1970년대 새마을운동과 주택개량사업으로 인해, 수백 년 동안 집안 대대로 전해 내려오던 온갖 고서들이 막 쏟아져 나왔다. 이런 고서들은 전국의 유명 박물관과 도서관에 소장되거나 수집가들의 손에 들어가고도 아직도 심심찮게 나돌고 있다.
둘째, 한글은 우리 민족 고유의 문자로 이는 우리나라 출판 인쇄물에서만 볼 수 있는 특성이다.
셋째, 한국 특유의 활자본과 필사본이 많다. 물론 활자본이나 필사본이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고활자 본이 우리나라처럼 발달한 나라는 없다. 특히 우리나라 고서 중에는 필사본이 많다. 인쇄본을 찍어내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공이 들어가야 하므로 수요가 많지 않은 분야의 책들은 자연 출판이 어려웠다. 그러다 보니 다양한 분야에서 필사본이 만들어졌고, 그것들이 지금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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